<제이와 인식의 연애>
연애를 시작한 지 1년 차, 제이는 인식이가 머무는 자취방에 가서 정리 정돈을 하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정리를 해주면 인식이가 좋아하겠지?’ 정리 정돈은 제이가 인식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늘 정돈된 상태가 좋고, 누가 정리 정돈을 해주면 고마움이 느껴지는 제이였으니까요.
인식이는 제이가 자기가 없는 방에 와서 정리 정돈을 해주는 걸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까요? ‘나를 위해 애쓰고,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면 그 점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을 수 있지만 ‘정리 정돈’에 대해서는 제이가 상상한 만큼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물건이라도 찾으려면 정돈된 상태의 질서를 파악하기 어려워 ‘아, 내가 여기에 둔 파일 어디 갔지? 어디에 치워 둔 거야.’라면서 오히려 정돈되기 전 자신의 질서를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인식이는 늘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 있거든요.
제이가 보기엔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아무 데나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인식이 입장은 다릅니다. 오히려 조금 너저분한 상태의 방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너무 깔끔한 방은 경직되어 보이고 자신의 창의성이 숨 쉴 틈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그래도 연애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자신과 다른 상대의 면면이 장점으로 느껴질 겁니다. 상대에게 맞추고 싶어 자기를 내려놓는 일도 종종 발생하죠. 이렇게 계속 서로를 수용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좋은 점으로 해석해 주면 좋으련만, 같이 살아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이와 인식의 결혼>
제이는 인식이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남편과 신혼 초에는 정리 정돈 때문에 크게 싸운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부부 생활을 이어갔죠.
사실 제이의 마음엔 ‘왜 같이 사는 공간을 나만 신경 쓸까? 그때그때 치우면 될 일인데 인식이는 도대체 왜 그게 안 될까?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야. 내가 이 집 청소부도 아니고!’ 인식이의 마음엔 ‘오, 이번엔 실수하지 말자. 내가 벗은 속옷은 내가 빨래 통에 넣어야 해. 다 씻고 나와서 바로 빨래 통에 넣어야지.’ (샤워 후) 인식이는 자기가 벗어 놨던 속옷을 까맣게 잊은 채 금요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맥주 한 캔을 들고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한숨 푹) 자기, 이 속옷 뭐야?” 제이의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날카로운 말투가 인식이를 화들짝 놀라게 합니다. ‘아, 맞다. 속옷!’
<제이의 딸>
훌쩍 커버린 첫째는 중학교 2학년 딸입니다. 아들은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고요. 제이는 요즘 딸과 관계가 힘이 듭니다. 사춘기라서 그렇겠거니, 넘어가려고 해도 딸아이 방 꼴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이는 딸 방을 청소하면서 ‘지 아빠 닮아서 정리할 줄을 몰라 아주 그냥 어휴’ 이런 생각을 했죠. 딸이 학원까지 다 마치고 집에 와서 정색을 합니다. “엄마, 내가 치우지 말라고 했지! 내 방은 그냥 내버려 두라니까?” 딸도 큰 소리를 지르는 편은 아니지만 목소리에 힘이 단단히 들어갔습니다. 아들과 남편은 조용히 자리를 피합니다. 일촉즉발!
<제이의 마음>
제이는 서운합니다. 억울하기도 하고요. 기껏 시간 들여 힘들여 방을 깨끗하게 정돈해 줬더니 딸이 개념 없이 엄마한테 대드는 모양새가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제이는 딸의 방을 그냥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잠을 잔다는 말인가 딸을 이해할 수가 없죠. 그리고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엄마가 치워버린다고 번번이 예고도 했습니다. 기회를 여러 번 준 거 같은데 왜 자신을 원망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잘해주고 욕먹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 지칩니다.
<딸의 마음>
딸의 입장은 어떨까요? 일단 엄마가 방에 들어오는 게 내키지 않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쓰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그리고 자기는 늘 정돈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기준이 높은 것일 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죠. 아니 그리고 아빠는 정돈에 있어서 만큼은 아무 말을 안 하는데 엄마는 유독 정리를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돈된 상태보다 유연한 상태가 더 마음에 듭니다. 엄마가 싫어서도 아니고 엄마 말을 무시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엄마가 자기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내가 그냥 내버려 두라는데 엄마는 왜 그게 안될까?’ 딸의 마음입니다.
<제이의 가족>
제이는 판단형입니다. 제가 코칭을 진행했던 가족의 사례를 각색해 봤어요. 네 식구 중 어머니만 J, 판단형이었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아들과 딸은 모두 P, 인식형이었고요. 여행을 가기 전에도 어머니가 모두 계획하고, 짐 싸고, 아이들, 남편 다 챙겨서 여행을 떠납니다. 어머니가 참 애를 많이 쓰고 계시죠? 그런데, 놀랍게도 인식형인 가족들은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동안 힘드셨겠다 싶었습니다. ‘정리 정돈’과 자기가 다 책임지면서 떠나는 ‘여행’을 해왔던 부분에서요. 무엇보다 자신의 노력이 공으로 쌓이지 않는다는 게 속상한 포인트였을 겁니다. 애를 쓴 것에 대해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때때로 외롭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엄마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싶었던 게 아닐 겁니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아마도 자기 마음이 더 앞서지 않았을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건 이게 아닌데, 엄마는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꼈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모르고 오해합니다. 나를 무시한다고,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배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진정한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때 빛을 발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배려는 상대에게 자칫 불편함, 어려움,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거 같아요. 내가 나를 정확히 알고, 타인을 알아야 배려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요.
MBTI 강의를 진행할 때 제가 꼭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 여러 가지 과일이 나옵니다. 어떤 강연에서는 ‘용과’를 좋아한다는 답변도 받아봤습니다. 🤣 수박 좋아하는 분이 용과 좋아하는 분한테 “어휴, 무슨 용과 같은 과일을? 과일 맛을 모르시네요. 수박 드셔 보세요. 수박이 최고예요.”라고 한다면 수박 좋아하는 분이 좀 이상하게 보이시죠? 심리 선호라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서로 다를 수 있어요. “아니 도대체 왜 그걸 좋아해?”라고 반문하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아, 너는 그걸 좋아하는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선에 설 수 있습니다. “아,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걸 좋아해.”
제이와 인식이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합니다. 제이가 자신의 딸과 아들은 사랑한다는 건 말 안 해도 잘 아시죠? 사랑하니까 더욱 서로의 선호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내 마음도 상처 받지 않게 보호하면서 상대의 마음도 수용해 줄 수 있죠!
오늘은 판단형과 인식형 차이점을 이야기로 들려드렸어요. 다음 마음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요목조목 J와 P의 차이점을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한 주 라이프스타일이 서로 다른 가족들, 연인, 친구들과 서로의 방식으로 배려하고 수용해 보세요!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 질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