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3호를 발행합니다.

재단은 지난 4월 6일 심층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를 열었습니다. 발제자인 정욱식 소장은 지금의 한국과 미국,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누가 만들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 규칙을 지키고는 있는지 묻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불법침공에 대해 여태까지도 사과 한마디 없고,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전쟁범죄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남기정 교수와 정욱식 소장 두 발제자는 '글로벌 사우스'로 말해지는 것의 기원적 성격을 갖는 1955년의 반둥회의를 언급했습니다. 
리영희의 1985년 하이델베르크 FEST 시절 자료를 찾기 시작한건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그의 책 <대화>에는 당시에 관한 언급이 꽤 있는데 자료는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대화>에 나오는 당시의 FEST측 상대 연구원이 리네만이었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FEST 홈페이지의 과거 연구자 리네만의 연구영역이 평화라는 점, 재직기간이 리영희 체제기간과 겹친다는 점을 통해 실재인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범구 선생의 도움으로 메일주소를 확인하고 리네만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드디어 38년 전의 기록을 받았습니다. 두 권의 책을 출판하는 바쁜 와중에 본인과 FEST의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재단이 리네만 선생에게 받은 자료는 7통의 편지와 리영희가 작성해 제출한 19페이지 분량의 논문 한 편입니다. 7통의 편지는 이번호 아카이브에 싣고 논문 ‘한국에서의 전쟁위기와 평화의 전망’은 다음호에 싣겠습니다. 리네만 선생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리영희와의 기억을 짧은 글에 담아 보내주셨고, 당시 한국 유학생이었던 어수갑 선생이 해제글을 보내주셨기에 그 두 편의 글을 싣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보와 맥락을 짚어줌으로써 85년 하이델베르크 기간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정범구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재단은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프레시안에 <다시! 리영희>란 제목으로 매달 두 번씩 연재합니다. 널리 읽힐 기회를 준 프레시안에 감사합니다.
  
재단 소식

<심층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

4월 6일, 리영희재단이 한겨레평화연구소 및 평화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가 있었습니다. 재단의 김언경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이 발제자로,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과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현장 스튜디오의 방청석에는 십여명의 각 단체 회원들이 참석해 토론회를 방청했습니다.
남기정 교수의 발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의 흐름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짚어보았습니다. 그는 지정학에서 역사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재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부적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정욱식 대표의 발제에서는 대서양의 서유럽 국가들과 한국, 일본, 호주 등의 태평양 국가들이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는 현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의 편에 밀착해 러-우 전쟁이라는 대서양 국제정세에 군사적 개입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기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리영희 아카이브

리영희 교수(1929-2022)와 함께했던 연구의 기억 

 크리스티네 리네만-페린(Christine Lienemann-Perrin) / 전 바젤대학교 신학부 교수

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그립다

어수갑 /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사료위원
편지는 리네만이 FEST 이사회에 보내는 리영희를 초청하겠다는 내용의 글, 리영희와 리네만 사이에 오간 편지, 리영희가 FEST에 제출한 짧은 베를린여행 보고서가 있다. 이 편지들을 종합해 보면 리네만은 독일에 번역 출판된 리영희의 글 "한반도 주변 정세의 질적 변화와 우리의 과제"를 알고 있었고, 서독에서 평화운동이 한창이던 1983년에 이른바 “하이델베르크 평화보고서”가 핵억제 전략과 그것이 분단된 유럽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발표된 점이 리영희를 초청한 배경이 된 듯하다.
  “이제 우리는 유럽의 관점을 극동지역과 같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군사적 수단을 통해 평화를 보장하려는 전략과 연관시키고자 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갈등이라는 주어진 상황에서 유럽과 극동 평화의 연계성에 대해 FEST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지85.4.4.”
 리영희가 머물렀던 FEST((Forschungsstätte der Evangelischen Studiengemein-schaft)의 번역에 어려움이 있었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 라고 칭했다. 그런데 독일어 원문에는 ‘연방교회’나 ‘사회과학’이라는 표현이 없다. 리네만은 FEST를 ‘개신교 연구소’ 또는 편지본문 중에는 ‘학제간 연구를 위한 개신교 연구소’라고 적고 있다. 어수갑 선생도 ‘개신교 연구소’ 라고 썼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독일의 교회 성격을 설명하면서 '연방교회'라는 표현을 이어가는데, 여기에는 ‘교회세’로 운영되는 독일교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화>의 표현은 흥미롭다.
지금 리영희의 영어철자는 재단을 포함 Rhee Yeung-hui를 쓴다. 그런데 1985년의 편지에는 본인의 영어철자를 Lee Yueng hee 로 써달라고 하고 있는 점 또한 새로운 사실이다.
번역과 번역교열을 봐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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