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잔이 간절한 순간, 신용산 <키보>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2022.08.03.

문제. 아래 제시된 상황들에서 드링커 님이 방문한다면 가장 만족할만한 장소는?

(주관식, 3점)

상황1) 저녁 약속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야, 딱 한 잔만 더 하자. 가볍게 딱 한 잔만”이라며 제안하는 친구A. 그리고 A의 제안에 갈대같이 흔들리지만 어디를 가야할 지 모르는 상황.

상황2) 6시 약속인데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겼다며 1시간만 약속을 미루자는 친구 A.

커피는 회사에서 충분히 마셔서 카페는 싫고, 1시간 기다리기에는 배가 너무 고픈 상황.

정답. 신용산에 위치한 선술집 <키보>

그럴 때가 있다. 딱 한 잔만 더 하고 싶은데 안주 주문하고, 술 시킬 생각하니 너무 비쌀 것 같아 스스로 타협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에서 꺼내는 맥주 한 캔만이 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줬다. 이 곳 <키보>를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냉장고에서 꺼내는 맥주 한 캔처럼 가격 부담없이 가볍게 한 잔 더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키보>다. 가벼운 맥주부터 다른 곳에서는 한 병 단위로 시켜야하는 사케, 소츄도 한 잔 단위로 팔고 있어 가격 부담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키보>로 들어가보자.

여기가 1층인가 지하 1층인가 헷갈리는 공간에 위치해있다. 대학생 시절 눅눅한 반지하에서 자취하던 그 옛날의 기억을 안주삼아 한 잔 걸칠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어라? 내 기억 속 반지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당황했다. 비좁은 통로, 협소한 테이블은 나의 반지하와 똑같았지만 시무룩했던 그 시절 나의 표정과는 달리 모든 손님들은 자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손님들의 자유로운 미소와 함께 또 하나 신기했던 점은, 모든 손님들이 앉아있지 않고 서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 먹는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행복해보일까싶어 냉큼 자리를 잡고 서있어봤다. 뭔가 조금 어색한, 불편한 느낌이 든다 싶을 즈음 약간의 이질적인 자유로움도 올라왔다. 평소처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서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감정을 표현하는 몸 동작도 커지고 표정도 훨씬 자연스러웠다. 괜스레 외국 시트콤 주인공들이 바에서 편안하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오른다. “익스큐즈 미, 메뉴 플리즈”

키보의 주류 리스트는 취향껏 마실 수 있을만큼 다채롭다. 그 중 에디터의 추천은 리큐르와 사케다. 보통 이 두 가지 술은 식당에서 병 단위로만 팔아 한 잔 가볍게 먹고 싶어도 가격이 부담되어 시킬 수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술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주시는 직원분들도 계시니 평소 가격 때문에 도전하지 못 했던 술이 있다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주문을 해보자.

츠쿠시 우메슈*

도수 : 12.0%

가격 : 12,000원

“이 술 신기하다. 살짝 태운 꿀 맛이 나는데?” 기분 좋은 산미와 달큰한 매실향이 매력적인 술이다. 일반적으로 드라이한 주종을 먼저 마시고 달콤한 술을 마시기를 권하지만, 요즘같은 더운 날씨에는 이 우메슈의 달콤함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탄산수와 믹스해서 먹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차가운 얼음과 함께 온더락으로 기분 좋은 단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달콤한 맛이 얼음이 녹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 나오자마자 한 모금, 얼음이 조금 녹고 난 뒤 두 모금. 마지막으로 너무 묽어지기 전에 깔끔하게 세 모금을 마셔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우메슈 : 설탕에 절인 매실청에 술을 담궈 숙성시킨 주류. 우메슈라는 말 앞에 붙은 단어는 함께 숙성시킨 주류의 이름을 뜻한다.

아카부 준마이*

도수 : 16.0%

가격 : 15,000원

일본전국주조조합 기준 최연소 양조인이 만든 사케다. 장인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자처하는 일본에서, 젊은 양조인이 만든 사케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니 호기심에 보이자마자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

강렬하고 무거운 붉은 무사의 라벨을 처음 봤을 때는 알코올 향이 강하고 진한 사케를 예상했다. 그러나 라벨이 주는 인상과 달리, 맛은 경쾌하고 가볍다. 쌀과 누룩의 맛이 진한 여타 사케와는 달리 약간의 탄산감과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 과일의 향을 머금고 있다.

함께 나온 안주 중에서 유자 토마토 사라다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상큼하고 통통튀는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조합이다.

*준마이 : 사케를 분류하는 기준 중 하나이다. 쌀과 누룩으로 만든 최상품을 준마이라고 하고 양조알콜이 첨가되는 비율에 따라 중급의 혼죠조슈, 하급인 후츠슈로 나뉜다.

나나쿠보

도수 : 25.0%

가격 : 12,000원

호불호가 강한 고구마 소츄* 가운데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이 없어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이다. 일본 3대 소츄 명인 중 한 명이 젊은 시절 일했던 양조장으로 돌아와 만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이것 이상의 고구마 소츄를 만들 수는 없다’며 자부심을 가진 술이니 도전해봄직하다.

참ㅇㅇ, 처음ㅇㅇ과 같은 희석식이 아니라 안동소주나 화요같이 증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어 그 향이 고르고 은은하게 퍼진다. 일반적인 고구마 소츄는 입술과 만나는 첫 순간이 가장 강렬하고 뒤에 힘이 죽는 반면, 나나쿠보는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스트레이트보다 온더락으로 더 연하게 먹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하니, 더 가볍게 즐기고픈 분들은 온더락으로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소츄 : 일본식 증류주를 뜻한다. 쌀, 고구마, 보리 등의 원료를 증류시켜 만든 술이며 25도 전후의 도수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온더락이나 따뜻한 차와 함께 마신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증류주로는 화요, 일품진로 그리고 원소주가 있다.

술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곳인만큼, 안주들도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양도 적당하다. 가격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원하는 메뉴를 다양하게 시켜도 좋을 듯하다! 이곳 사장님이 용산을 주름잡는 베트남 식당 <효뜨>와 홍콩 식당 <꺼거>를 만드신 분이니 맛이야 걱정할 필요없다.

소금누룩 돼지고기 볶음

가격 : 12,000원

소금을 물, 쌀 그리고 누룩과 함께 숙성시킨 소금누룩으로 만든 음식이다. 고기를 소금누룩에 재워 육질을 연하게 하고 누룩의 감칠 맛이 잘 배어들게 했다.

나나쿠보와 함께 먹길 추천한다. 나나쿠보가 입술에 처음 닿을 때부터 목넘김까지 은은한 밸런스가 유지되는만큼 그 밸런스를 깨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안주가 잘 어울리는데 이 소금누룩 돼지고기 볶음이 적당하다.

유자 토마토 사라다

가격 : 7,000원

보기만 해도 상큼해지는 메뉴다. 유자 소스에 방울 토마토를 곁들인, 단순한 메뉴다. 하지만 가볍게 먹고 갈 수 있는 <키보>이기에 오히려 매력있다. 경쾌한 아카부 준마이와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아카부 준마이를 한 모금한 뒤, 열대 과일 향이 사라질 즈음, 이 사라다를 한 스푼을 먹으면 그 여운이 더욱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