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포터와 건배를, 이태원 <로즈앤 크라운>

2022.10.12.

누구나 버킷리스트는 존재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정도의 수준이라도 말이다. 에디터에게는 그것이 영국에 방문해 보는 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본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드라마 <셜록>에 등장한 런던 거리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런던 아이를 방문한 뒤 늦은 저녁 펍에 들어가서 축구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

이렇듯 영국은 에디터에게 낭만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로즈앤 크라운>을 처음 보았다. 이름부터 장미와 왕관, 영국 그 자체다. 인테리어며 메뉴 그리고 축구를 볼 수 있는 TV까지! 영국인이 인정한 영국 느낌의 펍, 참을 수 없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나와 지도가 안내해주는 골목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핑크색으로 뒤덮인 건물 외관의 ‘Rose and Crown’ 간판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피쉬앤칩스가 지글거리며 튀겨지는 소리와 냄새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고개를 들어 천장과 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분홍빛 장미가 가득하고 조명이 비는 붉은 나무벽은 미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태원답게 스트릿한 패션의 청년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맥주를 마실 것 같은 공간이다. 뒷자리에선 언어교환 스터디를 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보인다.

2인석이 창가를 따라서 줄지어 있고 단체 손님을 위한 자리가 두 테이블 정도 준비되어 있다. 입구에는 다트 게임이 준비되어 있고 매장 안에 설치된 2대의 TV에서는 축구 경기가 나온다. 테이블이 얼기설기 배치되어 있어 풍채 좋은 어떤 이에 가려 TV가 가려지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 축구 리그(EPL)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함께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이벤트를 준비해준다. 자세한 사항은 로즈앤 크라운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자.

영국 하면 떠오르는 메뉴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다. 버터 맥주부터 각종 맥주들, 빠지면 섭한 피쉬 앤칩스는 물론 영국의 흔한 가정식 중 하나인 커리까지, 영국 종합선물 세트가 메뉴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비주얼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맥주부터 영국하면 떠오르는 안주들까지 주문해보았다.

버터맥주
도수 : 약 3%

가격 : 8,900원

영화나 만화를 보고 ‘와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메뉴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만화 <원피스>의 주먹만 한 고기고 또 하나는 <해리포터> 속 버터맥주다. 🍺 이모티콘처럼 노란 맥주와 하얀 거품이 명확하게 갈라진 비주얼을 보고 있자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 같다. 이태원 속 작은 런던에서 해리포터와 한 잔하는 기분으로 마셔보았다.

첫맛은 정말 혀가 짜릿할 정도로 달았다. 호그와트 속 아이들이 파티를 그렇게 신명 나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슈가 하이(Sugar High)때문인가 싶었다.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시럽을 확인한 뒤 빨대를 이용해 휘휘 저은 뒤 마셔보니, 마치 배스킨 라빈스에서 판매하는 체리쥬빌레 맛이 났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상상한 버터스카치의 맛은 아니겠지만 휘핑크림 위에 있는 시나몬 가루부터 찐한 시럽 맛까지,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순수한 맥주의 씁쓸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순 있지만 호그와트 학생들이 수다를 떨며 마셨던 맥주를 상상하며 캐쥬얼하게 마시기엔 적당하다.

런던 프라이드
도수 : 4.1%
가격 : 450ml - 9,900원 | 290ml - 7,900원

이름부터 영국의 자존심이다. 이태원의 작은 영국에 온 만큼 꼭 마셔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영국 뒷골목의 투박한 맛일까 왕실의 우아한 맛일까 궁금해하며 마셔보니 후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 프라이드는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Fuller’s 양조장에서 제조된 페일 에일 맥주로 쓴맛보다는 산뜻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라 에일맥주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추천하는 맥주다. 창백함을 뜻하는 페일(Pale) 에일인 것에 비해서는 진한 색을 띠고 있어 ‘이거 페일 에일 맞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맛은 보장하니 일단 입 안으로 넣어보자.

약간의 달콤한 꿀 향과 오밀조밀한 탄산감이 입안을 부드럽게 덮어준다. 낮은 도수처럼 알코올 향도 강하지 않다. 라거처럼 청량한 맛으로 먹는 맥주는 아니지만 부담 없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텍스처가 부드러워 어떠한 안주들과도 잘 어울리겠지만 아래에 소개할 커리와 정말 잘 어울렸다.

테넌츠 위스키 오크 에이지드 비어
도수 : 6.0%
가격 : 330ml - 9,900원

드링킷 최초로 소개하는 스카치 에일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위스키를 보관한 오크통에서 맥주를 발효시켜 위스키의 향을 입힌 특이한 맥주다. 검은색으로 유려하게 덮인 병 디자인만 보면 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떠오른다. 지체할 시간 없이 향부터 맡아 보았다.

정말로 위스키 향이 나는데, 약간의 젖은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온다. 이 맥주는 뭘까 만족스런 궁금증을 품은 채 한 모금 마셔보니 위스키 오크에서 보관했다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위스키 향이 올라왔다. 바닐라 향과 나무 장작 향이 맥주에 들어간 밀과 만나 잔잔히 오래 입 안을 맴돈다. 실제로는 향을 더 돋우기 위해 상온에 두어 도수를 8도 정도까지 높여서 마시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위스키와 맥주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만한 술이 없다.

새로운 맥주에 정신을 쏙 뺀 채 더 마시다 보니 함께 간 에디터 청하가 “포터의 피부색은 알코올 탐지기 그 자체다.”라는 평을 남겼다. 도수가 절대 약한 술은 아니니 신기한 맛에 취해버리지 않길 바란다.

*임페리얼 스타우트 : 기네스로 대표되는 스타우트는 검은 맥아와 볶은 보리를 섞어 만든다. 러시아 황실에서 긴 이동에도 맛이 변하지 않도록 다량의 홉을 넣고 도수를 올려 만든 스타우트를 임페리얼 스타우트라고 부른다.

피쉬앤칩스

가격 : 15,900원

영국인이 인정한 피쉬앤칩스니 영국스럽다고 칭하겠다. 감자튀김은 알이 굵고 바삭바삭해서 좋았다. 타르타르 소스와 하인즈 케첩이 함께 나오는데 생선가스가 타르타르소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지는 않았다. 신맛이 존재감을 많이 드러내 피쉬보다는 칩스와 하인즈 케첩에 더 손이 갔다.

어쩌면 한국인 입맛에 조금은 맞지 않는 이 맛조차 영국을 구현한 것 아닐까.

커리와 티머리 라이스

가격 : 9,900원

한국과 영국의 공통점을 하나 찾은 것 같다. 바로 커리가 자주 먹는 가정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까만 흑미밥 위에 오뚜기 3분 카레를 얹은 한국식 카레와는 다르게 강황이 들어간 노란색 밥알 위로 윤기 가득한 주황색 커리가 덮여있다.

가정식으로 먹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실패하지 않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빼어난 맛은 아니지만 언제 먹어도 한 그릇은 비울 수 있는 무난한 맛. 약간의 코코넛 향이 나지만 커리의 맛을 해치지 않는 정도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식사하지 않고 1차로 로즈앤 크라운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커리를 꼭 주문할 것이다.

짧은 영국여행이 끝났다. 비록 방문했을 당시엔 라이브로 진행하던 축구 경기가 없어 아쉬웠지만 다음엔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한번 방문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태원 속 작은 런던을 구현해놓았다. 영국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다양한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방문 가치는 충분하다.

editor_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