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는 더 이상 젊지 않은 걸요


요즘 말버릇 중 하나는 “아저씨 특. 뭐뭐라고 함” 입니다.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계속 저 말을 하게 돼요.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누군가 걸쭉한 욕을 하거나, 갑자기 퀴즈 화법을 쓰거나, 냅다 사자성어를 읊조릴 때 “아저씨 특”을 외치게 하게 되는데요. 그건 즉 저와 친구들의 언어생활이 ‘아저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겁니다.

욕이나 사자성어가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욕입니다. 물론 욕을 한다는 게 꼭 ‘아저씨 화법’은 아니죠. 다만 젊은이들도 흔히 쓰는 욕 말고 진짜 걸쭉한, 들으면 깜짝 놀라는 그런 욕이 친구 입에서 나올 때면 너무 웃기고 “아저씨 특! #~~~##이라고 욕함!”을 말하게 됩니다. 변명하자면 그런 욕으로만 표현되는 상황이 있기는 해요. 정권을 욕한다든가… 썩어빠진 세상을 한탄한다든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죄송…

퀴즈 화법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뭐라고 했을 거 같아?”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 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질문을 던지지 않냐고요? 퀴즈 화법의 특징은 나도 답을 알고 싶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자기는 답을 알고 있는데 갑자기 상대방에게만 퀴즈를 낸다는 점입니다. 강요되는 흥미진진함이라고 할까요. 딴짓을 하고 있다가도 퀴즈 화법의 공격을 받으면 갑자기 “글쎄요~” 하면서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 강제 집중을 시키기 위한 수단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자성어도 흔히 쓸 수 있는 말이기는 합니다. 욕이나 퀴즈 화법과는 달리 한국 교육과정에서 비중 있게 배우는 어휘들이기도 하고요(지금은 아닐 수도 있음^^). 하지만 청천벽력이나 풍비박산까지는 무난한데 삼인성호, 회광반조까지 나오면 웃음과 “아저씨 특”을 참기가 어렵습니다. 왜 매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꼽잖아요. 꼭 거기 나올 것 같은 사자성어들이라 너무 웃기다고요…


아직 ‘견리망의’ 쓰는 친구는 없었음

그밖에도 ‘아저씨 특’은 많습니다. 역사에서 교훈 찾음, “요는”이라고 함, “위하여” 라고 함, “축구 찬다”고 함, “묘하다”고 함 등등등. (”왜요는 무슨 왜요야 왜요는 일본 요가 왜요고 임마”는 아저씨 특 아니고 작은아버지 특인 것 같아서 뺐습니다.)

수많은 ‘아저씨 특’ 화법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이 특징은 왜 생기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헉 이거 아저씨 특이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거라면 어휘와 화법, 억양 전반에 걸친 어떤 언어의 특징이라는 게 있을 텐데 말이죠. 대화의 양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쓰는 화법인 걸까요?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자성어부터 걸쭉한 욕까지 막 섞여 나오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말이 생각이 안 나거나(“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랑 “삼인성호” 둘 중에 하나를 떠올려야 한다면 후자가 더 쉽지 않나요) 상대방이 내 말을 너무 대충 듣는 것 같아서 집중 시키기 위한 걸까요? 그런 거라면 오히려 짠한 마음으로 ‘아저씨 특’을 놀리지 말아야 할까요?

사실 요즘 아저씨 특 화법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입니다. 저는 왜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퀴즈 화법 아니고 진짜 질문) 요즘 부쩍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나도 참 나이를 먹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 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친구도, 사회 생활을 늦게 시작한 친구도 다들 직장인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합니다. 보기만 해도 불안정해서 안타깝거나 답답했던, “너 언제 정신 차릴래”의 ‘너’를 담당했던 친구들까지 전부 다요. 그게 가끔은 대견하다가도 가끔은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도 참 나이를 먹었구나.’ 그러면서 아저씨 화법을 구사하게 된 걸까요? 그냥 아저씨 입맛이어서 혓바닥 자체가 아저씨화 된 것은 아닐지…

아저씨 화법 이전에는 ‘헐대박짱미친’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말 그대로 헐, 대박, 짱, 미친, 실화임? 등을 섞지 않고는 아무런 리액션도 할 수 없는, 화법보다는 일종의 질병에 가까웠던 그것. 그 시기를 간신히 지나오며 아저씨 화법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어휘가 다양해졌으니 기뻐해야 할지 이로써 젊은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슬퍼해야 할지 아직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표정부터 싫어서 미칠 것 같음

한 가지 혼란스럽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아저씨 특, 만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입니다. 바로 인맥 자랑인데요. 남천동 사는 느그 서장이랑 어쨌다는 이야기를 평생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제 친구가 대통령이어도, 제 사촌동생이 블랙핑크여도 이것만은 참아낼 거예요. 그렇다면 꽤 괜찮은 아저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귀여운 할머니 되기가 꿈이라던데 그 소망에 얽힌 정상성에 대한 욕망이라거나 이런 건 차치하고, 아무튼 전 지금도 귀엽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아저씨’ 정도로 소박한 소망을 빌어봅니다. 노력할게요.

여러분도 이런 장래희망이 있나요? 여러분이 요즘 자주 쓰는 말투는 어떤 건가요? 궁금해지네요.

  


쓰고 나니 깨달았습니다. 지난 레터 제목이 <말벌 아저씨 되기>였다는 걸요. 아저씨 유니버스… 아저씨 공화국… 벗어나고 싶다…

  
[추천합니다😎]
네모네모로직을 아시나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숫자+그림 퍼즐인데요. 주위에 물어보니 안다는 사람도 있고 모른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헉 말하고 나니 너무 당연해서 소름끼침). 저는 제 나이대에 유행했던 퍼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중독성이 엄청나서, 한번 잡으면 두 시간은 우습게 지나갑니다. 이번 레터가 이렇게 늦게 온 것도 네모네모로직 탓이 조금은 있습니다. (^^) 가끔 현생이 복잡할 땐 수학문제를 풀듯 퍼즐의 세계로 도피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이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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