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ice

안녕하세요. 님,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채팅방(육아 백과사전)을 오픈했습니다! 

Fathers’ Note

아이가 자라기 좋은 동네는 어디일까요? 아마도 대부분 '학군지'를 떠올리실 것 같아요. 강남, 목동, 중계동, 평촌 같은 대표적인 학군지도 있고 지역마다 유명한 학교, 학원가도 있죠. 그런데 정말 '학군지'에 사는게 아이에게도 좋은 일일까요? 이번 편지는 얼마전에 이사를 마친 정민님이 보냅니다. 정민님은 과연 학군지로 이사 했을까요?

1.

이사를 했다. 새 집은 아니고 헌 집으로. 요즘 신조어가 ‘얼죽신’*이라는데 세태를 따르기엔 자금 사정이 따라주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늘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부모는 늘 주머니가 빠듯하다. 

*'얼어 죽어도 신축'의 약자로 신축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의미

첫째가 커가면서 고민도 커졌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업무지구 성격이 강해서 아이가 갈 만한 학원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꽤나 오래 살아서 구석구석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단점은 단점이었다. 예전 레터에서도 한 번 고민을 다뤘던 적이 있다. (9화 대치동에 꼭 가야 할까?)

결정적인 임팩트가 온 건 첫째 4학년 때였다. 3학년 때부터 슬슬 학원이 주변에 별로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4학년이 되니 그동안 네 개였던 반이 세 개로 줄어들었다. 한 반에 20명 남짓으로 구성되는 초등학교니, 고학년이 되면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다른 동네로 떠나버린 것. 운동회 때 같은 학년 반별로 청군과 백군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우리 동 x층 ○○네 있지? 딸 데리고 결국 대치동으로 갔대.”

“○○네도 목동에 갔다고 하더라. 학원 많아서 편하다고.”

퇴근 후 식탁에서 아내와 맥주 한 캔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결국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각각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겠지. 부모로서.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같은 유치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동네마다 지정된 다른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한 번 또래 양육자들과 헤어짐을 겪은 적이 있었다. 개중에는 사립 초등학교를 지원해서 더 먼 곳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동네를 떠나는 아이가 많다고 느끼진 않았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서일까. 지금의 감정은 그때와는 또 조금 다르다. 

본격적으로 이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중고생들을 키우고 있거나, 대학에 보낸 육아 선배들은 학군지로의 이사를 권했다. 어차피 결국 끝판왕은 대치동이니 중간에 또 고생하지 말고 대치동으로 가라고 조언해주는 분도 있었고, 목동도 충분히 학원들 많고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라고 추천해주는 지인들도 많았다. 다들 각자의 경험에 기반하여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셨고, 아내와 나는 감사히 그 노하우들을 전달받았다. 

그래… 이사를 가야겠지 아무래도. 

주말을 이용해서 새로 이사갈 곳 후보들을 몇 군데 돌아보고 왔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다녀온 후 아이들에게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중학교 진학도 생각해야 하고, 학원도 걸어다니고 하려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게 좋겠다고. 

“꼭 가야 해?”

“?”

“나 때문이라면 안 가도 돼. 여기서도 잘할 수 있어.”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아빠, 나를 믿어 줘.”

한 해 한 해 커갈수록 점점 말을 안 듣는 정도가 강해지는 중인 고학년 수현군이 예상보다 더 강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너도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수 있고, 학원 버스 덜 기다려도 되고 하니 좋을 거라고 설득했지만 모두 허사. 

가만히 속내를 보니 동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은 거다. 학교와 학원에서 한껏 친해져서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같이 뛰어노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건 너무나 섭섭한 일일테지. 

주변 사람들은 '애들이 그렇게 말해도 막상 이사가면 다 금방 적응한다'고, '그나마 고학년 때 이사가는 게 낫지 중학교 가면 더 옮기기 힘들다'고, '부모가 애들을 위해 잘 선택해야지 도리어 애들한테 휘둘려서야(!) 되겠냐'고 또 한마디씩들을 보탰고, 마음은 그럴 수록 더 갈팡질팡했다. 

‘아버지였다면 어땠으려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무렵, 스스로 제법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는 좀 멀었지만 다니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 일반고로 가는게 좋을까, 썩어도 준치라고 지역 명문고라 불리던 학교를 쓸까, 아니면 그래도 특목고 한번 도전이나 해보는 건 어떨까.

아버지는 그랬다. 아빤 다 괜찮으니 네가 가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투는 무심한 것처럼 들리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부친의 표정은 무심하지 않았다. 아직 십 대에 지나지 않는 아들이지만, 그럼에도 내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하겠다는 마음이 읽히던 그 얼굴. 

평소답지 않게 아직은 앳된 수현의 얼굴에 삼십여 년 전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2.

이사를 했다. 대치동도, 목동도 아니고, 바로 옆단지로. 수현이가 다니게 될 중학교 바로 코앞으로. 친구들과는 살짝 멀어졌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 이정도는 괜찮단다. 여전히 학교 끝나고 같이 축구도 하고, 피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칠 수 있어 좋단다. 

결국 첫째의 믿어달라는 말 한 마디에, 꽤나 큰 의사결정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누구 말마따나 중요한 시기에 실수한 것일 수도 있겠지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믿어보고 싶었다. 믿다가 발등 좀 찍히더라도 어떤가. 아이에겐 어쩌면 부모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믿어주었다는 그 느낌 하나가, 이후의 삶을 적잖이 지탱해줄 수 있는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 돌아가신 부친이 남긴 한마디가 여전히 내게 그러한 것처럼. 

새로 이사온 집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간신히 몸을 뉘일 정도로 짐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아직 새 집이 익숙하지 않은지 잠옷입은 둘째가 품을 파고든다. 

“어디가 더 좋은 것 같아?”

“…옛날 집.”

“왜? 여기도 좋은 거 많은데.”

“옛날 집에는 추억이 더 많으니까…”

언젠가는 이 집과도 정들 날이 오겠지. 아이들과 오래 되뇌일 추억들을 새 보금자리에서도 하나씩 하나씩 계속 쌓아가고 싶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08화 아이와 함께 집에 갑니다)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다급한 저의 하원길과 상반되는 여유로운 하원길이라 부럽더라구요! 그리고 따끈따끈하고 참신한 질문이 아닌 무슨 놀이했어? 뭐 먹었어? 만 묻게되는 제 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회사를 칼퇴하고 부랴부랴 뛰어가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딸내미의 하원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아빠 뛰지마, 걸어와" 하는 딸내미의 모습과 땀 흘리다가 급하게 병원을 가야하는 날 안고가는 와중에 작은 그 손으로 "아빠 땀 닦아줄까"하며 퐁퐁 두드리는 모습이 참 많이 크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원길의 딸내미 친구 엄마와의 어색함도 아직 여전하지만, 이 순간이 계속해서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아. 아빠는 딸내미의 하원을 위해 계속해서 달리려고 합니다ㅋㅋㅋ (지아빠)

💬 글도 좋았지만 파카님의 일러스트가 정말 멋져요! (버터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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