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덥다"로 시작하는 남지원 젠더데스크의 칼럼입니다. 지난주와 이번주 전국 곳곳에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는데요. 요즘은 가만히 있어도 '기후 위기가 정말 재난이구나. 이 재난이 이미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폭염중대경보 단계에서는 건강한 사람도 열사병, 탈진 등 온열질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야외활동 자제를 권고하고 있어요. 어르신, 장애인, 임신부, 어린이, 기저질환자 등 폭염에 더욱 취약한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겠죠. 야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지만 사회는 '야외활동을 자제할 수 있는 사람들' 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폭염과 기후위기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닥치는 재난이지만 그 영향은 차별적이다. 정확히는 나를 관통하는 취약성(들)을 재난은 더 극적으로 끄집어내 공격한다'
모두에게 힘든 무더위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땀 범벅이 되고 더위는 모두 비슷하게 느낄겁니다. 그러나 숨막히는 야외를 거쳐 회사로 들어오면 사무직 노동자인 저는 적어도 일하는 동안에는 더위와 무관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지난주 '재활용 선별장의 5060 여성들' 이야기에 많은 입주자 분들이 분노와 걱정의 답변을 남겨 주셨는데요. 선별원처럼 폭염에 더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사무직 노동자의 '너무 덥다'는 한가로운 불평일 겁니다. 이렇듯 같은 폭염을 겪어도, 영향은 차별적입니다. 사회 안전망에서 멀어져 이미 취약한 이들은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울 때 밖에서 더위 피하는 건) 다 남자야. 여자들은 너무 더워도 집에 있지. 샤워하고, 선풍기 틀고.”
쪽방촌 주민은 폭염에 가장 위협받는 집단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성 주민들은 더 고통받는다고 해요. 쪽방촌 거리에 스프링쿨러를 달고, 지자체가 무더위 쉼터를 운영해도 모든 주민이 동일하게 시설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쪽방촌의 여성 주민들이 남성과 함께 있는 공간에 섞이기 위해선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더위'와 '혹시 모를 위험' 중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공용공간에 에어컨을 설치해도 여성들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방문을 닫고 지낸다고 합니다.
칼럼은 '‘여성이 폭염에 더 취약하다’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폭염에 취약해지는 상황과 환경이 있다'고 말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작은 사업장에 있거나, 고령자거나 하는 환경과 조건들이 그렇습니다. 당연히 이 취약성에 교차적으로 노출될수록 위험도 커질겁니다. 여성이면서 거동이 어려운 쪽방촌 주민은, 남성이면서 거동이 자유로운 쪽방촌 주민보다 더 취약하겠죠.
'계급과 젠더,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연령, 지역과 빈곤과 장애가 얽혀 위험을 키운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기후위기에도 일상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 것이다.'
훨씬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사람이, 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되는 이 아이러니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대응책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후위기를 늦추는 방법만큼이나 '차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가중되는 기후위기, 여성이주농업노동자, 쪽방촌여성’을 쓴 정은아 연구원은 2022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과학적 해결책뿐 아니라 사회를 덜 차별적이게 만드는 것도 기후위기 대응책”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이 공용 공간에 있어도 '혹시나 하는 위험'이 없는 사회라면, 적어도 더운 날, 방문을 열어놓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주민의 권리가 더 보장되는 사회라면 야외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너무 덥다. 조금 쉬었다가 일하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