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을 하는 일잘러들의 참고서 8월의 첫 번째 레터입니다.
8,9,10,11,12... 이제 26년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밤 8시여도 환했던 하늘이 이제는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는데요.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가끔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죠.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과 함께요.
우리는 너무 자주 정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말이죠.
때문에 오늘의 레터에서는 '낙관적 허무주의'를 다루고자 합니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한마디로 '삶에 정해진 의미는 없지만 그렇기에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갈 자유가 있다는 것'인데요.
오늘의 글이 잠시나마 미라클러님들께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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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터 읽는 법 ※
볼딕, 밑줄, 단어에는 URL이 포함되어 있어요. 클릭을 하면 세부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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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f6, 낙관적 허무주의 플레이리스트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 레터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영상입니다. 리스트업 된 노래들이 굉장히 차분하니 생각에 잠길 때 한 번씩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허무주의
그리고 낙관적 허무주의
[허무주의(Nihilism)]란 '삶, 존재, 우주에 내재적, 본질적, 객관적인 의미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반면 [낙관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는 '인생에는 정해진 의미가 없으니, 오히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갈 자유가 있다'라는 관점이죠. 두 개념 모두 여러 시간들과 사람들의 흐름과 사상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특정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은 아닙니다.
허무주의는 프리드리히 니체에 의해 철학적 개념으로 정립되었는데요. 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니체가 말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죠.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이 말은 그가 신을 부정한다는 것에 대한 선언이라기보다는, 기독교를 비롯한 기존의 절대적인 가치 체계 위에 의미를 세워왔던 유럽 문명의 토대가 과학과 계몽주의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함으로써 무너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종교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졌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믿지 않게 되면서 '왜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이 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때문에 기존 가치를 대신하여 채울 새로운 가치가 없는 공백 상태가 생긴다고 보았고, 그 공백을 '허무주의'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그는 허무주의를 단순히 인생이 의미가 없다는 관점을 넘어서서 극복해야 할 시대적인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개념들을 제시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자신을 넘어서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근본적인 생명의 의지
- 초인(Übermensch): 기존의 절대적 가치(신, 전통 도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려는 이상적 인간상
-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는 사고실험
언뜻 보면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의 현상과 낙관적 허무주의의 현상이 비슷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허무'라는 개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요. 니체가 생각하는 허무주의는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것'인 반면, 낙관적 허무주의는 그 자체를 외부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해방'으로서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낙관적 허무주의와 매우 가까운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 인물로 자주 언급이 되는데요.
그는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려도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굴러떨어지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를 인간 존재의 비유로 들면서, 삶의 의미를 원하는 인간과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 세계 사이의 어긋남을 '부조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했죠.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가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계속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을 카뮈는 '그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의식적으로 반항을 한다(=굴복하지 않는다)'라고 보는 것이죠. 즉, 삶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삶에는 의미가 없기에 자유롭게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는 낙관적 허무주의와 연결됩니다.
*니체의 허무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이곳>을 클릭해 주세요! 개념 설명에 대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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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urzgesagt - In a Nutshell, 위의 영상이 '낙관적 허무주의'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시킨 대표적인 콘텐츠입니다.
낙관적 허무주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는 "우주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정해진 목적도 없다면, 인간이 저지른 실수나 수치스러운 기억들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우주 자체에 정해진 목적이나 규칙이 없기에 삶의 목적과 가치를 결정할 주도권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있다. 고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 뿐이라면, 중요한 것도 우리의 삶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에서 해석하는 '낙관적 허무주의'입니다.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낙관적 허무주의를 대중적으로 알렸죠.
허무주의와 낙관적 허무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시험에 떨어졌을 때
- 허무주의: "떨어졌네. 이렇게 노력한 게 무슨 의미가 있지?"
- 낙관적 허무주의: "떨어졌네. 아쉽지만 이 시험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건 아니야."
2.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 허무주의: "회사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애쓰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지?"
- 낙관적 허무주의: "아쉽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면 되지. 승진이 다는 아니야."
3.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낄 때
- 허무주의: "결국 늙고 죽을 텐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 낙관적 허무주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경험을 지금부터 해봐야겠다!"
현대인들에게 낙관적 허무주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삶의 기준은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자유성'과 그로부터 오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가능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
-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 SNS 등으로 인해 비교 군이 많아진 이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기준에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는 여유로움을 지닐 수 있고,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인드와,
-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번아웃과 무기력함에 대한 마음의 완충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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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식은 날리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요?
의미를 찾는 삶보다는
의미를 만드는 삶
낙관적 허무주의의 문제점
낙관적 허무주의는 분명히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자유를 제공한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당연히 몇 가지의 한계 또한 존재합니다.
-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핑계로 쓸 위험: 이는 니체가 경고했던 수동적 허무주의 - 의미의 부재를 인정하지만,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 삶에 대한 무기력/체념/냉소 등으로 나타남 -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 개인이 의미를 만들기에는 부담이 있음: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의 부재가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이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압박이 되거나, 어쩌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윤리를 세우기 어려움: 낙관적 허무주의를 극단으로 몰게 되면, '내가 왜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가', '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등 기본적인 윤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낙관적 허무주의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서는 상황이 아니기에 편안함만 취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고, 철학적인 깊이가 얕기에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관적 허무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인생을 즐겨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삶이 무의미하고 지겹게 느껴진다면, 니체의 사상을 꺼내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위의 영상에서는 니체의 '인생을 즐기는 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짧게 요약해 드릴게요.
-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고독을 즐기기: 타인과 비교하고, 무리에 속하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하루 15분 동안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고독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 허무함을 인정하고 삶의 주체가 되기: 삶에 정해진 특별한 목적이 없는 허무주의를 그대로 인정하고, 내가 스스로 의미를 정해 내 삶의 중심이 내가 되어 살아보세요.
- 매 순간을 긍정하고 즐기는 '초인'의 태도 갖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른바 '디오니소스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삶은 유한하기에 매 순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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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 허무주의 (맨 위) 더빙 영상에 달린 댓글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향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향을 선택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 쉽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값질까요.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는 것도
용기입니다
대충 살자와 가볍게 살자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삶을 너무 가볍게 여기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삶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자는 것입니다. 인생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일수록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있죠.
이 사회는 너무나도 이분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많습니다.
- 실패한 사람 vs 성공한 사람
- 생산적인 사람 vs 게으른 사람
- 좋아하는 일 vs 돈이 되는 일
또한 정답이 정해져있는 듯한 분위기도 있죠.
좋은 대학을 나와서 ➡️ 안정적 취업을 하고 ➡️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 내 집 마련하고 ➡️ 출산과 양육을 거쳐 ➡️ 안정된 노후를 즐긴다
위의 트랙이 정답이라는 것도, 오답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굉장히 값어치 있고 이상적인 삶이기도 하니까요. 단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충실해 보세요. 삶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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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되게 하는 것. 사실 말이 쉽지 행동하기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린 건가. 이 방향으로 가도 되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80억 명의 인구가 있다면 80억 개의 삶이 있는 법이죠.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애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삶은 실험이다. 실험을 많이 할수록 더 좋다(All life is an experiment. The more experiments you make the better)"
인생엔 정답이 없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시도해 보라는 것인데요.
오늘 하루만큼은 정답과 오답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선택으로 '실험'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그럼, 저희는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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