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머스크는 어떤 정치 성향?
머스크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양 진영 간의 시각차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머스크가 그동안 뚜렷한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아서 더 그랬다. 머스크는 ‘Independent(무소속)’으로 등록되어 있다. 공개 석상에서 ‘사회적으로는 진보 성향이고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이라고 밝혔다.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거의 같은 금액을 후원한다. 후원금이 고작 인당 몇백만 원 수준이고,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합쳐도 10만 달러 수준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한때 머스크와 페이팔에서 함께 일했던 피터 틸이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에게 각각 1000만 달러씩 후원한 것과 비교하면 껌값이다. 지난 미 대선 때 머스크가 지지한다고 (구두로라도) 밝힌 후보는 민주당 경선 주자 중 공화당 성향 지지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앤드루 양이었다. (2022년 양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신의 당인 '포워드(Forward)당'을 만든다)
머스크의 정치 성향은 굳이 따지자면 자유주의(libertarian)다. 앤드루 양의 핵심 공약인 기본소득은 소득을 지급하여 국민 개인의 자율권을 높이는 대신 국가에서 실시하는 각종 복지 정책 등을 간소화해 국가의 관료주의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진보 진영에서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작은 국가'를 원한다.
머스크의 이런 성향이 극대화된 때가 바로 팬데믹 발생 이후였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해 캘리포니아 주가 대형 공장과 사업장에는 셧다운을, 주민들에게는 재택 명령을 내렸을 때 "파시스트냐"며 반발해 공장을 열었다. 머스크 자체가 코로나, 정부 주도 방역, 백신 접종에 대한 회의론자다. 대통령이 코로나의 위력을 깎아내려 많은 국민이 죽었고 코로나를 계기로 정치적 골이 더욱 깊어진 미국에서 82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머스크가 이런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거다.
전형적인 '가진 자' 트윗을 날리기도 한다. 머스크를 포함해 연방 세금을 내지 않는 상위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에게 조롱성 트윗을 날린 게 그 사례다.
하지만 머스크가 공화당 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는 공화당, 민주당에 두루 빅엿을 날렸다. 트럼프 당선 전에는 트럼프를 "미국의 지도자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공개 트윗을 했지만, 당선 후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트럼프의 이슬람 이민자 반대 정책과 파리기후협약 탈퇴 정책에는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머스크의 줄타기에 정치인들이 숟가락을 얹었다가 민망해지기도 했다.
미국 보수의 숙원이던 낙태의 실질적 금지 정책을 텍사스주에서 시행한 후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가 "(텍사스에 대규모 기가팩토리 공장을 연) 머스크는 (너무 진보적인 캘리포니아 대신) 여기의 사회적 정책이 마음에 든다고 내게 항상 말했다"라고 밝혔다가 머스크에게 점잖게 까였다. 머스크의 답변은 "정부가 자신의 의지를 국민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책을 펼칠 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정치 이슈에서는 떨어져 있겠다."
확실한 것 하나, "난 정부가 싫어"
머스크에게 일관성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뭔가 조처를 하는 것' 자체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예외가 있다면 기후위기 관련 정책 정도다. 머스크는 시장이 작동할 유인이 없는 분야에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머스크가 만약 어떤 형식으로든 트위터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면 본인 신념대로 "아무리 어리석은 트윗이라도 웬만하면 지우지 말고 그냥 놔두라"가 핵심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트위터가 머스크의 손에 넘어가면 트위터의 콘텐츠 조정(contents moderation) 정책은 대수술 될 가능성이 크다. 아예 그 팀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트럼프도 다시 트위터로 원대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콘텐츠 조정 기능이 약화한다는 건 공화당의 극우 성향 의원들이 "보수 의견은 취소 문화(cancel culture)의 피해자"라며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취소 문화'는 (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나 말 때문에) 소셜미디어상에서 매장당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취소 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도널드 트럼프다.
문제는 현재 미국 정치 지형 자체가 양당 갈등의 골이 매우 깊은데다 정치공학적 술수가 난무하기 때문에 트위터처럼 이용자 수에 비해 여론 형성에서 과대평가 되어 있는 (미국 언론들은 유명인들의 트위터를 인용해 매일같이 기사를 쓴다) 플랫폼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는 데 있다. 아주 적은 표 차이로도 총선이나 대선 결과가 갈릴 수 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 표 수는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트럼프가 이겼다. 즉 막판에 여론을 세게 형성해 표몰이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듬이 어떤가에 따라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콘텐츠 조정이 축소되면?
트위터에서 콘텐츠 조정 기능이 축소되면 트위터에서는 양 진영 간의 싸움이 더욱 심각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게 트위터의 수익에 좋은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다. 사실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콘텐츠 조정 기능을 좋아한다. 정치 음모이론이 계속 자신의 피드에 뜨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급성장하는 플랫폼인 틱톡이 콘텐츠 조정 기능을 대폭 강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용자들이 선호하니 매출이나 수익에도 당연히 긍정적이다.
머스크도 아마 콘텐츠 모니터링 기능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사기, 스팸 봇 계정들을 없애는 걸 우선순위로 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를 사칭한 각종 크립토 봇 사기 계정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머스크가 수익에 관심이 있었기에 트위터를 인수하려 드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사실 돈을 벌자면 그 돈으로 투자할 다른 회사가 얼마든지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