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머리 자르기 싫어서 교무실 끌려갔던 중학생, '유준'의 편지

🌞 :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던 그 청소년은 어떤 청년이 되었을까? 우리는 무엇이 되어, 청소년 활동 시즌은 과거 청소년 활동을 경험했던 당사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무엇이 되어간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청소년 시절도 떠올려보고, 지금 이 순간에 위치한 곳에서 일상의 활동가가 될 수 있는 즐거운 상상을 더해보아요. 여름의 초입, 우리의 첫 인터뷰이 유준님을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기에 부산에서 '청아재'와 '정세청세'를 통해 청소년 활동에 참여하였던 신유준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며 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유준님의 청소년기가 궁금합니다. 유준님의 청소년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저는 제 청소년기를 머리 자르기 싫어서 교무실 끌려간 중학생이었고 방학 보충하기 싫어서 페이스북에 글 썼다가 징계받았던 고등학생이었다고 요약하고는 해요. 중학생 때 머리 자르는 게 너무 싫었는데, 학교에서는 계속 자르라고 하니까 A4용지에 탄원서 비슷하게 써서는 학생들 서명을 받았었어요. 그러다가 들켰죠. 교무실에 끌려가서 혼나고서는 혼자 분해하던 기억이 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정세청세'를 경험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나 인권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삶의 태도도 되게 많이 바뀌었던 것 같구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야간 자율학습이 강제인 학교였어요. 제가 반장이었는데 소위 말하는 선동을 해서 친구들을 끌고 나간거에요(웃음). 다음날 선생님한테 피멍 들만큼 맞고, 수업도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무릎 끓고 있던 기억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뭐, 그게 훈장이기도 했던 거죠. 나름 자랑거리였고.

청소년기 활동 사진

2학년 때는, 음, 방학 보충수업을 하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 가서 보충수업 하는 게 부당하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땐 그냥 이야기가 잘 됐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보니까 진짜 방학 보충 수업이 강제가 아니게 된 거에요. 그때 제가 되게 신나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승리니 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었어요(웃음). 그런데 이게 저 하나 때문에 결정된 일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결정이 있었나봐요. 정확히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몇 학부모들이 제 페이스북 글을 접하고 어떻게 학생 말을 듣고 보충 수업을 안할 수 있냐, 그런 항의 전화가 학교에 있었나봐요. 제가 쓴 글이 교장 선생님 귀에 들어가기도 했고. 그래서 퇴학을 하네마네하는 이야기도 나왔다가, 결국 사회봉사 정도의 징계로 끝났던 사건이 있었어요. 사실관계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징계 사유는 교권모독이었어요. 사실 아직도 그게 어떻게 징계사유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와, 엄청 파장이 컸었군요.

되게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무섭기도 했고. 부모님도 학교에 오시고 퇴학을 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두려웠죠. 분명 부당하다고 느끼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맞서서 이런 부당함에 싸워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주변에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미래에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당한 일을 겪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그런 방법을 알려주거나 대신 맞서주는 어른이요.

학교 안에서 경험한 그런 부당함,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답답함이 학교 밖에서 청소년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유프' 행사는 유준님이 친구들과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프'가 어떤 행사였는지 소개해주세요.

유프는 청아재라는 저와 친구들이 만들었던 청소년 단체에서 개최하던 여러 행사 중 하나였어요. ‘청소년 토론 문화재’ 를 표방했는데, 청소년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성적이나 대학얘기가 아니라, 경쟁이나 사랑, 놀이와 같은 삶에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자신의 생각을 고민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은 되게 중요한 일인데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잘 없잖아요. 회차마다 100여 명 정도나 되는 참가자들이 모였어요.

청소년이 직접 기획한 행사에, 부산이라는 지역 안에서 청소년 100여 명이 모였다는 건 정말 큰 숫자인데요. 그렇게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모여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놀라운 숫자라고 생각해요. 지금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유프는 학교 행사가 아닌데다 마땅히 입시에 활용할 방법도 없었으니 자발적 참여자를 모으기 위해서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어요. 기획하는 저희도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하는 행사기도 했고요. 가령 게임이론의 죄수의딜레마를 본따서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어떤 선택을 할지 토론하게도 하고, 그에 따른 상품을 지급하기도 했어요. 레크레이션 시간을 따로 시간표에 배치해두기도 했었고요. 조별로 나누어져서 토론을 하는 시간에도 조별 팀장들이 분위기가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토론 주제에 대해 공부도 많이하고, 질문도 많이 준비해갔던 것 같아요. 청아재가 활동을 종료하고, 제가 유프 기획팀을 떠난 이후도 2,3년 정도는 지속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말 좋은 행사였는데, 이어지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이 고등학생 시절 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거든요. 비슷한 행사가 다시 생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청소년기 활동 사진

청소년 시절 활동의 경험이 유준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유프, 정세청세와 같이 청소년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자리에 참여하면서 항상 자극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나는 당장에 밤새서 게임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저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있구나'를 매번 느꼈어요. 그리고 그런 모임들을 통해서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보통 결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시작하자고 나거든요. 그러니까 자연스레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청소년 활동 중에서도 기획을 많이 했잖아요.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기에 직접 기획에 참여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끄집어내서 실현시키는 과정이 성취감도 많이 주고,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지점들을 제시해줬던 것 같아요.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볼까 해보고, 이렇게 하니 이런 새로운 문제가 생기네, 그럼 어떻게 해볼까. 하는 문제 해결 능력도 많이 키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해야하니까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어요.

이제 유준님의 청년기 이야기로 넘어가보려고 하는데요. 그 전에, 청소년기부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옛날부터 계속 이어지는 고민은, 음, 용기가 없다.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학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스탠스를 유지해왔으면서도 결국 입시에 뛰어들었고, 그래서 또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됐잖아요. 대학을 와서도 반수를 한번 더 했거든요. 이런 반복 과정에서 나는 왜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거랑 일치된 삶을 살지 못하지하는 고민을 계속 해왔던 것 같아요. 사회에 어떤 주류와 비주류의 삶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결국 주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비주류적인 삶에 용기있게 뛰어드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이 주류에서 제가 서 있는 곳의 안온함과 따뜻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제게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소수자의 문제를 고민하고 도울 수 있는 일들을 돕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고민이 지금 법학을 공부하고 계신 데 영향을 미쳤을까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변호사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하고는 하는데요, 그 분이 공익 변호사로 오래 일하시는 게 너무 대단한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시냐 질문을 하면, 그분은 자기는 용기가 없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분도 사회 참여 활동을 많이 해오셨던 분인데 자신은 사회운동에 완전히 뛰어들어서 활동가의 삶을 살아갈 용기도 없지만, 그걸 외면할 용기도 없다는거에요. 그래서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있을 수 있는 직업이 변호사인 것 같아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아마 저도 지금 비슷한 맥락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완전히 뛰어들 용기는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진짜 외면하고 살 용기도 없는 것 같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직업으로 변호사를 택한 것 같고 공부하다보니까 법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도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어서, 저에게 잘 맞는 학문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은 무엇을 하고 계세요?

이것저것 하는 게 많네요. 일단 지금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공익기금 회장을 맡고 있어요. 각 기수별로 펀딩을 받아서 그 기수에 전업 공익변호사가 나오면 그분께 후원이 가는 거에요. 그런 펀딩을 하는 동아리같은 건데, 거기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 곧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라는 곳에서 공익법률 조교 활동을 시작할 것 같아요. 여기서는 학내 구성원들 사건이나 센터에서 맞는 사건들 보조같은 걸 해요. 그 외에는 노동법 학회나 인권법 학회같이 학회 단위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 여름에 플랫폼 노동자 지원으로 라이더 유니온에 협력하기도 했었고, 겨울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일하기도 했었어요. 공익적인 활동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앞으로는 무엇이 되어가고 싶으신가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로펌 변호사를 하면서 공익 활동을 같이 할것인지, 아니면 공익 전담 변호사를 할 것인지같은 고민들이 개인적으로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저는 청소년기 경험했던 활동의 영향을 아직도 많이 받고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공익적인 활동을 기획하는 기획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법률적인 전문성을 갖추고 공공을 위한 행사를 열고 싶어요. 저는 제가 전문적인 소재를 대중들에게 잘 전달하는 일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운 것들을 기존에 사회 활동을 하시는 분들께 잘 전달해서 그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공익 법률가 또는 공익 기획자로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법률가의 모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편지를 읽는 구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첫 인터뷰이더라고요. 어떤 분들이 독자분들이 되실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청아재와 정세청세와 같은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 혹은 일상의 활동가들을 위한 뉴스레터가 표제이니 무언가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주 독자층이 아닐까 싶어요. 청소년 활동가 시절의 저와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만났던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고요.

혹시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다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감사를 전할 자리가 필요했어요. 제가 정세청세 활동을 그만두면서 인디고서원에서 발간하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잡지인 인디고잉에 글을 썼을 때 그런 표현을 썼더라고요. 닻도 내리지 못하고, 돛도 펼치지 못하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10대 때의 글인 만큼 감성이 넘치는 문구이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청아재와 정세청세와 함께 보냈던 활동가로서의 청소년 시절은 제 인생에서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에요. 삭막한 학교의 학생으로 살아가던 제게 색깔을 입혀준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많은 변화를 거쳐왔지만 당시의 감정을 바탕으로 삶을 설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 당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은 제가 기획했던 활동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후기를 접했을 때였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계시는 활동가 여러분들 역시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주시고 계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청소년 시절의 저를 기억해주시는 모든 분들 덕분에 그동안 분에 넘치게 행복한 삶을 잘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아 받은 것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온 힘을 다해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준 드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처음으로 공언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이고, 낡은 세계가 그 모든 현대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양산하는 일상적 지루함과 죽은 시간에 맞서 자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바로 젊은이들이다."- Mustapha Khayati

🌞 : 유준님과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언젠가 필사해두었던 튀니지 사상가 무스타파 카야티의 이 한 구절이 생각났어요. 사실 유준님이 기획하셨던 '유프'는 제가 청소년 때 직접 참여자로 참여했던 행사이기도 했는데요. 학교의 리듬에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리듬으로, 우리의 흥과 박자로 자기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던 작은 축제의 장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독자님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해요!

오늘 유준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저는 독자님의 청소년 시절도 궁금해졌어요! 독자님께서도 청소년 시절, 너무나도 거스르고 싶은 사회의 리듬이 있었나요? 작은 반항, 작은 혁명을 시도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너무나도 불만이었던 학교의 광경들이 있었나요? 아래 <답장 보내기>를 눌러 질문에 대한 답이나 자유로운 생각을 남겨주세요. 이번 시즌을 통해 만들어질 공익 메뉴얼, 아카이브에 독자님의 경험을 보탤 수 있답니다. 제 답장을 통해 소통하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ㅡ 무르익은 여름 안에서, 건강을 기원하며

미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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