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소년이 'BDSMer'일 때

추적단불꽃이 지속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지금]

'가해자'들은 청소년을 노린다

추적단불꽃이 모니터링하면서 목격한, 청소년들을 노리는 가해자들의 대화를 재구성했다. ⓒ 추적단불꽃

추적단불꽃은 지난 2년간 디지털 성범죄 현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을 넘어 성 착취하는 가해자들을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한 온라인 불법 성매매 업체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자신들에게 돈을 보내면 청소년과 성관계를 하게 해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온라인 성 착취 현장에서 ‘청소년’이란 정체성은, 가해자들에게 ‘성적 취향’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청소년을 이용한 성 착취는 최근에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이전에는 ‘영계’ 문화라고 해서 10대와 성매매하는 걸 당연시 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성매매 현장에서 10대 여성과 성 접촉을 하는 게 굉장히 운이 좋다는 인식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을 사고파는 문화가 온라인으로 뻗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0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이후로도, 여전히 온라인상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트위터에서 ‘마왕’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30대 남성 박모씨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미성년자를 포함, 여성들의 성 착취가 의심되는 영상을 찍어 올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가출 청소년에게 유사 성행위를 시키고 성 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한두 명의 가해자가 잡혀도, 트위터에서 청소년의 성을 착취하려는 가해자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BDSM 관련 정보를 악용해, 성향자인 청소년을 노리고 있다. 그 중에는 ‘핀돔’(Financial과 Domination의 합성어), ‘핀섭’((Financial과 Submission의 합성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착취도 적지 않다. 경제, 재정을 뜻하는 '핀'(파이낸셜(Financial)의 약어)에, 통치, 지배를 뜻하는 '돔'(도미네이션(Domination)의 약어), 혹은 굴복이나 복종을 뜻하는 '섭'(Submission)을 붙여, 돈을 매개로 성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성향’과 ‘성 착취’가 분리되지 않은 무분별한 SNS 환경에서 ‘섭’ 성향의 성인 중에는, 청소년들에게 ‘돔’ 임무를 수행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이도 있다. ‘돔’ 역할을 수행한 청소년의 경우 상대에게 성적으로 가학적인 행위를 ‘시키는’ 입장이다 보니, 원하지 않은 행위를 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 동시에 ‘돔’ 역할을 수행한 이들이 성폭력 피해자일 수 있다는 인식 또한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 역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청소년들은 '핀돔', '핀섭'을 자청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추적단불꽃과 인터뷰한 한 성향자는 “(트위터에서) 아동·청소년을 노리는 성향자, 혹은 성향자인척 하는 ‘변바’(변태바닐라의 줄임말)들은 비교적 심리적 지배가 쉬운, BDSM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청소년을 노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청소년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

지난해 ‘갓갓’ 문형욱, ‘박사’ 조주빈 등의 가해자가 트위터를 통해 피해자를 물색했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가해자들을 규탄하는 여론과 함께 ‘피해자가 트위터에서 성적 표현을 했기에 범죄의 원인이 있다’는 식의 피해자 책임론이 피어올랐다. 언론에서는 ‘일탈’ 계정을 운영하는 청소년에게 주목했다. 청소년들이 ‘음란’한 영상을 찍은 것이,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칠 수 있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것이다. 청소년 성 착취 피해자 중에는 온라인 그루밍 피해를 입거나, 계정이 해킹당해 협박에 못 이겨 성을 착취당한 경우도 있었다.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가 제공했다는 등 사회에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추적단불꽃이 모니터링하면서 목격한, 청소년들을 노리는 가해자들의 대화를 재구성했다. ⓒ 추적단불꽃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 착취가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은, 청소년의 ‘성적 행위’가 아니라 청소년이 ‘성적인 행위를 하다 피해를 입은 사실’을 침묵하게 만든 사회다. 추적단불꽃에게 연락한 성 착취 청소년 피해자 중에는 “성적 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신고를 못했다”고 증언한 이들이 있다. 피해자 E씨는 만 13세 때 성 착취 피해를 입었다. 1년이 훌쩍 지나서야,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피해자가 트위터에 올린 고발 글을 보고 본인도 성 착취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가해자는 본인의 자위 영상과 사진 등을 E씨에게 전송하면서 ‘너도 성기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강요했다. E씨는 “협박에 못이겨 사진을 결국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가해자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BDSM’ 자세 표의 동작을 취한 사진을 E씨에게 보내주면서,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서 보낼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E씨는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 채팅 대화방에서 익명으로 벌어진 일이라 가해자를 잡을 수 없을 거란 막연함에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못 했다. 설령 신고를 한다 해도 경찰에 의해 가족에게 피해 사실이 여과 없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피해를 입고 수년을 혼자 끙끙 앓았던 E씨는 2년이 지나서야 지역 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심리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경찰 신고는 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내 성폭력 전문수사관 중 유일한 '마스터'(성폭력전문수사관 자격인증 후 5년간 성폭력 수사와 교육, 연구 실적이 두드러져야 부여되는 직책)인 곽미경 경감은 “수사관들이 청소년의 성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범죄를 다루는 수사관들이 막연하게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은 물론 성적인 활동에서도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경감은 본인도 “지난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되고서야 ‘일탈계’ 하는 청소년을 이해했고,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바라볼 수 있었다”며 “이전에는 비슷한 사건을 만났어도, 청소년이 성적인 표현을 한다는 사실을 제 자신도 인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향자’인 청소년 역시 사회적인 인식에 부딪힐까 봐 범죄를 당하고도 수사기관에 말하기 두려운 심정이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미성년자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

-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성’을 금기시하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가 청소년을 성적인 모든 것에서 보호해야 하거나 결정권이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부모나 친구 등 아무리 친밀한 사이일지라도, 본인의 욕망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싶은 건 당연하다. 다만 우리 사회는 청소년에게 ‘공부’에 관한 욕망만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며, 청소년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성에 대해 탐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양지혜 위티(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활동가는 “‘성교육’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다. 성은 청소년에게 위험한 것, 그래서 멀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 청소년은 너무도 쉽게 성적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BDSM 등 다양한 성적 실천과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트위터’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추적단불꽃은 특히 BDSM을 자극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SNS인 ‘트위터’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온라인 성 문화 조사; BDSM 문화를 중심으로>(전체 응답자: 총 280명, 응답 기간: 21.11.09.~21.11.14.)를 진행했다. 본 설문조사를 통해 트위터 이용자들의 ‘BDSM과 합의의 관계’에 관한 인식을 살펴봤다. 그 결과 청소년(14세 이상 20세 미만)과 성인(20세 이상)의 인식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총 58명) 중 세이프 워드를 안다고 답한 이는 53명(91.3%), 모른다고 답한 이는 5명(8.6%)이었다. 성인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설문에 참여한 성인(총 212명) 중 세이프 워드를 안다고 답한 이는 194명(91.5%), 모른다고 답한 이는 18명(8.4%)이었다. 단, BDSM 플레이를 해본 청소년과 성인 97명은 전부 ‘세이프 워드’를 알고 있었다. 이처럼 ‘BDSM과 합의의 관계’를 인식하는 데 청소년과 성인이 비슷한 양상을 띈 데는, 나이와 상관없이 BDSM 성향자들이 주로 인터넷에서 BDSM 관련 정보를 얻고, 관계를 형성하는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윤세진 성문화 활동가는 “성적 자기 탐구나 욕망에 대한 인지, 그리고 실천에 관한 탐색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함에 있어서 청소년과 성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6년간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에게 성과 인권교육을 해 오면서, ‘BDSM’이란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청소년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BDSM에 관한 지식이 ‘빠삭’해 보이는 청소년이더라도, 그들 역시 관련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또 청소년들이 자기를 탐색할 수 있는 안전한 자원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향자를 포함한 청소년 성 착취 문제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어 윤 활동가는 “한국에서는 성인과 청소년을 떠나, 여성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BDSM을 포함한 다양한 성적 실천에 대한 ‘정보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청소년들이 성적 피해를 보거나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관계망’ 등 여러 가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