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의 돈까스
  목요일 저녁이었다. 다음 날은 금요일이었고, 연차를 쓴 날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던간에 치솟는 화와 목요일 저녁 해프닝의 다음 시퀀스로 이어질 미래가 미리 던져준 약간의 불안과 짜증을 삭히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항정신성 약물의 도움을 받아 뭣같은 기분을 좀 풀어보고자 만남의 광장 같이 생긴 흡연의 광장으로 갔다. 항상 사람이 많은 곳인데 이상하게 아무도 없었고, 그 많던 흡연자들 대신에 경찰 아저씨가 계셨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혈관에 약간의 니코틴을 넣어주었고, 대충 샌드위치나 사가서 노트북 앞에 앉아 먹으며 오늘의 할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빵집으로 향하는 길에 평타는 칠 것 같은 프랜차이즈 돈까스집이 보였다.

  스트레스엔 탄수화물이 최고라는 연구결과로 성공적인 자기합리화를 이루어낸 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넣었다. 나를 제외하고도 혼자서 식사를 하는 분들이 계셨다. 저녁 8시에 여기서 혼밥을 하는 사람들의 하루와 생각이 궁금해졌다.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을지, 오늘의 돈까스가 루틴한 일상에 어떤 즐거움이 될지.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돈까스가 나왔다. 이 집 돈까스의 좋았던 점은 와사비가 함께 나왔다는 점이었다. 돈까스 소스 절반 정도에 와사비를 섞었다. 돈까스를 먹기 시작했다. 엄청 맛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아깝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평범한 돈까스였다. 하지만 돈까스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화와 짜증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돈까스를 먹으러 온 행위, 돈까스를 입에 넣는 행위가 중요했다.

  내가 홀린 듯이 (또는 충동적으로) 들어간 목요일의 돈까스 집은 밝고 즐겁고 긍정적인 내일을 위해 오늘의 그지같음을 털어내는 곳이었다. 목요일 저녁의 해프닝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끊어내는 곳이었다. 온 마음과 정신을 돈까스를 먹는 행위에 집중하므로써 부정적인 감정의 정화를 이루어내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매장에 울려퍼지는 자이언티의 '노 메이크업' 같은 기만적인 노래도 기꺼이 들어줄 수 있었다. 휴데폰을 보는 것은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에 나오는 인도 사원에서 주인공이 행하는 묵언수행을 깨는 것과 같았고, 돈까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 (아마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신성한 사원의 내부 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돈까스가 2-3 조각 정도 남자 아쉽고 조급했다. 나의 머릿속은 아직 그 일로 가득 차 있는데 돈까스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니.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닌데. 내면의 평안보다 식사의 끝이 먼저 찾아왔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무한정 돈까스를 먹을 수는 없다. 시원섭섭하게 다 먹은 그릇을 퇴식구 선반에 올려놓았다. 앙금은 남아있지만 기도를 올리 듯 돈까스를 먹은 이상 오늘의 그지같음이 밝고 아름다운 내일을 오염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믿음과 찬양으로 가득찬 발걸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돈까스.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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