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구독자 님께,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어 당황하곤 합니다. 작가들이 종종 이야기를 만들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고 말하던데 그게 바로 이런 건가 싶다가도 내가 쓰는 건 그런 글이 아닌데 싶어 다시 한번 당황하고 맙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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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을 기다리며
대학 기숙사는 사각형 모양으로 가운데에 중정이 있었다. 그곳은 기숙사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쉬이 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정원이었다. 4년 동안 동, 서, 남, 북향을 고루 오가며 그 기숙사에 살았는데 마지막 학기에 운 좋게 중정 쪽으로 창을 낸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남향이라 해가 오래 들었고 창밖으로 중정이 내려다 보였다. 오후 세 시, 강의가 없으면 나는 기숙사 방에 앉아 라디오를 틀어 두고 이른 저녁노을 빛에 해바라기를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노랗게 물든 중정은 바깥보다 한 박자 느리게 시간이 흘렀다.

가을은 잠깐이라 금세 겨울이 왔다. 그날 룸메이트와 나는 이불속에 파묻혀 잔뜩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크게 걱정할 것도, 당장 바쁘게 해야 할 일도 없는 날이었다. 창 너머로 눈송이가 폴폴거렸다
누구였을까, 아침부터 부지런히 눈사람을 만든 이는.
“밖에 눈 와.” 

처음 대전에 올라와 쌓인 눈을 보았을 때는 그저 기쁘고 반갑기만 했는데 네 번쯤 겨울을 맞자 눈 온다는 말도 조금 심드렁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 추워.” 

이불로 꽁꽁 몸을 감으며 룸메이트는 잠이 가득 묻은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각자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한참을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빌려둔 책을 읽다가, 다시 깜박 졸기도 하면서. 점심때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허물을 벗듯 이불을 빠져나왔다. 창밖에는 아직 눈송이가 컸다. 무심코 중정을 내려다보고 나는 즐겁게 놀랐다.

“누가 정원에 눈사람 만들었어!” 

중정 한 가운데에 눈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침대 속에서 빈둥거리는 사이 누군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뚫고 중정으로 나가 눈덩이를 굴렸던 거였다. 눈사람은 늠름하게 웃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돌로 만든 커다란 입이 매력적이었다. 누구였을까, 아침부터 부지런히 눈사람을 만든 이는.
어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눈에는 행복을, 입술에는 미소를 가득 담아 만들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점심을 먹고 다시 보니 눈사람에게 커다란 팔과 더듬이도 생겨 있었다. 어느새 눈은 그쳤고 늠름한 눈사람은 오후 내 중정을 씩씩하게 지켰다. 중정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덕에 눈사람은 꽤나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인생 마지막 방학이 될 겨울 방학을 눈사람과 함께 즐겁게 시작했다.

달력을 넘겨보니 오늘이 대설이다. 아직 눈 예보는 없다. 이번 겨울은 눈이 귀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을 때마다 하얗게 쌓인 눈을 기대한다. 눈이 펑펑 내리면 좋겠다. 그러면 어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눈에는 행복을, 입술에는 미소를 가득 담아 만들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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