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077. 2023/10/9 월요일


안녕하세요. 봉현입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어요. 

덥다, 춥다, 말없이 좋은 계절이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가을이겠죠? 10월은. 🙂


저는 요즘 고민이 많아요.

일은 일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복잡한 것 같아요.

오늘은 이야기는 저의 한탄이 가득 담긴,

부끄러운 날것의 일기장 같아요.


저조차도 답답한...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00님에게 다시 건강한 응원과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힘내볼게요.


부디 이해하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봉현


지금의 내가 별로라고 느껴질 때  


 요즘의 나는 잔뜩 꼬여있다.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그리는 그림과 쓰는 글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아니, 제대로 쓰지도 그리지도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자꾸만 든다. 누군가의 성공과 행복에 질투가 난다.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순탄해보이는 삶, 성장하는 커리어, 넉넉한 여유로움, 그런 것들이 남의 일인 것만 같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쏘아 붙이는 말들을 떠올렸다가, 그걸 반대로 적용시켜 나에게 되돌리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남 탓할 때냐. 니가 그러고 있잖아.


이런 내가 너무너무 부끄럽다.



나이를 먹을 수록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자신의 부족함을 들여다봐야지, 잘못을 인지해야지, 결심했었다. 하지만 맘 먹었다 한들, 이렇게까지 매년 매달 매일.. 내 부족함을 많이 알게 되는 건 좀 가혹한게 아닌가. 내 이상보다 내가 훨씬 별로인 사람이라니. 언제 어디서부터 잘 못된걸까? 뭘 놓쳤던 걸까? 잘하고 싶어서 해왔던 것들이 사실 잘못 투성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


밝고 맑은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척이라도. 나에게도 남에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저얼대 좋을 리 없잖아. 그만 두자, 여유를 갖자,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며 내내 나를 다독였다. 나를 사랑하기, 당신은 그 자체로 멋져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런 글. 세상에 넘쳐나는 뻔한 말. 알지, 알아, 나도 비슷한 문장을 썼었고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경험해봤어도.. 그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때가 분명, 있다.


결국, 급기야 이런 글까지 쓰고 있다. 이런 이야기, 해도 되나? 나 스스로 나의 치부를 다 까발리는, 이런 엉망진창인 일기를.


부끄러운 한탄 그만해. 내가 내가 싫어도 어떡해. 나는 나로 살아야 하잖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봐. 어떻게 할 건데? 라고 질문했고, 오늘 카페를 여러번 옮겨 다니며… 내내 앉아 고민했다.



1. 한달 전에 커다란 캔버스를 3점 구입했었지. 가지고 오자마자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 캐비넷 뒤에 처박아 뒀다. 와, 조바심 냈던 결심들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건가? 마치… 뭔가 하려고 마음 먹고 한껏 들떠서 재료를 사모으거나 장비 세팅만 잔뜩 해놓고는, 정작 하려던 건 손에서 놓아버리는.. 바보같은 행동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작업방을 다 뒤엎고 작업 환경을 완전히 바꾸면 어떨까? 너무 익숙해서 자꾸 늘어지잖아. 하던 것만 하게 되고. 컴퓨터 책상을 구석으로 밀어넣고, 일은 일대로 하고.. 커다란 캔버스를 세워 놓고 그림을 채워넣으면 되지 않을까? 아, 큰 스튜디오가 있었으면. 월세 50만원? 포기하자. 지금 내 형편에 맞게 해야지, 욕심이 앞서면 분명 후회할거야….

→ 방을 정리하자. 3평의 공간. 사실, 충분하잖아?




2. 책장에 가득 쌓인 책들을 보니 2/3이 안읽은 책이다. 선물받은 책, 산 책, 오래된 책.. 몇백권이 가득 쌓인 책장. 책장이 비틀거릴 만큼 쌓아둔 이 많은 책을, 이고 지고 살면서 제대로 읽지도 않다니. 나도 쓰는 사람이면서 다른 글 쓰는 이에게 관심이 없다니. 예의를 갖춰.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 나부터 가져야지.


→ 안 그래도 무거운 가방이지만, 책을 한권씩 꼭! 넣어다니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정은 작가님의 <커피와 담배>를 들고 나왔다. 일요일 책방 밀물X무슨 서점 1주년 행사에서 샀다. 시간의 흐름 출판사 책은 처음인데 너무 멋지더라.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나를 향한 이야기…)




3. 온갖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에 지쳐버렸다. 왜 다 이렇게 자극적이지? 극단적인 이야기가 넘쳐나서, 급기야 덤덤해진다. 범죄와 살인과 폭력이 그럴 싸한 것처럼, 생존, 경쟁, 피와 분노.. 그런 것들이 멋져보이다니. 잘못되도 크게 잘못되었다. 그만 보자.

→ 자막 없이 오래된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기 시작했다. 귀엽고 재밌다. 서툰 언어로 인식되는 이야기가 오히려 단순하게 와닿는다. 걸어 다닐 때 영상을 보지 않고 <영어 듣기>를 반복하다 보니 영어 공부도 된다.




4. 다른 사람들의 삶에 몰입하지 말자. 우리는 타인, 서로에게 친구이고 동료일 뿐. 누군가에겐 이런 나도 부러운 삶일까?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 하듯이? 어떤 식으로든 오만한 마음이다. 세상은 스펙트럼, 수억의 인간,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자기 연민 금지.

→ SNS를 줄이는 동시에, 나를 기록하는 일은 꾸준히 하자. 오늘 하루가 별 볼일 없는 것 같아도 뭐든 남기자. 언젠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아이고 애썼네 애썼어, 라고 대수롭지 않게 웃을 수 있게. 부정적인 시기도 내가 사는 한 시절이다.




그 외에도.. 이번 주 부터 수영을 다닐 거고, 매일 밤마다 꼭 설거지를 다 해두고 자려고 하고, 가능한 집에서 밥을 해먹으려고 하고.. 나름 억지를 써서라도 끙끙 해본다. 이런 사소한 것들마저 불가능한 지경은 아니구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결국 생활의 재조립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잔뜩 꼬인 내 뇌를 풀어내기가 어려우면, 생활과 환경을 바꿔보는 수밖에. 최소한 우울에 빠져 자책하고 울고 화내고 그러진 않을 수 있게.

  


<나와 나의 그림에게> 연재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생애 최초의 기억부터 시작한 1화부터 학창시절을 지나 드디어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다음 주에는 스무살이 된다. 쓰다보면 자꾸 나의 일대기를 나열하려고 하길래.. 본질을 놓치고 분량만 넘쳐나는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 신경 쓰고 있다. 최대한 ‘그림’에 대한 나의 마음만을 담아내고 싶다. 그나저나 스무살의 나는 모르겠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걸.



“그림이 참 어렵구만.

한동안 그림을 잊고 멍하니 좀 쉬었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호사스런 생각일까.

멍하니 있으면 더 불안해질 거야.

나 열심히 일해서 좋은 것을 만들어야지."


"오후 다섯 시. 오늘은 죽자사자 일을 했어.

그래 지금 일을 하고 난 피로에 잠겨 있어요.

거의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부숴버렸어.

참 용기가 필요해요. 부수는 용기 말이야.

자잘한 것을 뭉개 버리고 커다란 주제만을 남겼지."


/김환기 in newyork



김환기 전시를 보고 와서 책 <뉴욕일기>를 샀다. 초반 몇 페이지부터 마음이 뭉클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김환기도 가난해서 재료 걱정을 했네. 그도 그림이 어렵구나. 대 작가에게도 그림 그리기가 일이라니. 열심히 그려야지, 예술 해야지 따위가 아니라 일해야지 라니. 죽자사자 일을 하다니.


다시금 느낀다. 나,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부족하구나.

  


알라딘 투비 컨티뉴에서

<나와 나의 그림에게>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 쉽죠?" 라는 짤로 유명한 밥로스를 기억하시나요?

6화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더해, 그림 속에서 자유를 찾던

고 3시절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_


그림을 그릴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밥 로스의 붓질을 멍하니 들여다보던 기분이 마치 명상하는 것 같았네, 라고 깨닫는 것처럼 그리기에 몰두하면 생각이 멈췄다.


스케치북을 펼치고, 칼로 연필을 사각사각 깎고, 앞치마를 두르고,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팔레트를 열고… 종이 위에 첫 선을 긋고,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고 채우고, 조금씩 조금씩 형태를 만들고 디테일을 만져가며.. 그림자와 빛을 만들고 명암을 더하고.. 방금 전까지의 나는 분명, 성적이나 가족, 친구 문제 사소한 고민 등등… 온갖 근심 걱정투성이였는데.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백지에 뭔가를 채워가는 것. 그것에 몰두하면 모든 게 사라졌다.


 종이를 앞에 두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작은 세상에 얽매이고 억눌린 내가 그 속에서는 하늘을 날거나 숲을 달릴 수 있었다.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으며,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에 자유로웠다.



‘전 인생의 절반을 군대에서 보냈는데, 항상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어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은 제게 자유를 줬어요. 하루 종일 병정놀이를 하다가 집에 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때는 제가 원하는 세상을 그릴 수 있었거든요. 깨끗하고 반짝이며 빛나고 아름다웠어요. 오염되지 않은 세상이었고 화난 사람도 없었어요, 그 세상에서는 모두가 행복했지요. 그림을 그렸기에 저는 20년이라는 세월을 군대에서 버틸 수 있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캔버스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었거든요. 여기서는 완전한 자유가 펼쳐져요. 사실 우리 모두가 자유를 갈망하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 밥 로스


말이 많은 ㅎㅎㅎ 밥로스 아저씨의 그림.. 아니 인생 이야기.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를 많이 얻어요.
00님도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쳐있다면 추천!
Q. 00님의 요즘은 어떤가요?

<봉현에게 보내는 답장/ 비밀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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