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 하면 아무래도 ‘육아 휴직'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저출생 해결책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 역시 육아휴직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육아 휴직이 저출생 및 육아 부담 문제를 해결할 열쇠일까요? 몇몇 연구는 육아 휴직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여성이 주로 이용하게 되는 육아휴직이 오히려 ‘남성은 일, 여성은 육아’라는 전통적 성별분업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육아 휴직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예측이 엇갈리고 있지만, 정작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해 탐구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요. 따라서 이번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한국의 대학 졸업 여성 64명의 육아 휴직 경험을 담은 연구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육아 휴직은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었을까요? 저자에 따르면, 아쉽게도 대답은 "No"입니다.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동안 가족(family)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긴 하나, 그것이 그들의 직무(work)에 대한 부담을 감소시켜주진 않는다는 건데요. 지금부터, 육아휴직을 만회하기 위해서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국가의 문화가 여성들이 그들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한다는 지난 폴리버리 레터 기억나시나요?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일지라도 성평등한 돌봄과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문화적 지지가 높은 국가에서 더 잘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아 휴직 정책도 예외가 아닌데요.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야근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한국사회는 긴 노동시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OECD(2016) 국가 주당 평균 노동시간 3위에 빛나는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노동자란 '언제나 일이 우선인 워커홀릭'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육아휴직 및 유연근무를 사용하는 근무자에게는 종종 ‘불성실한 근무자'라는 낙인이 돌아오기도 하죠. 또한, 여전히 남성-가장/여성-양육자 모델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 배우자가 주로 육아휴직을 떠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한다는 것은, ‘일이 아닌 가족에 헌신하겠다’는 단순한 결정으로 해석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커리어 지속을 염두에 둔 여성들이 일자리의 규범을 철저하게 따르며 육아휴직을 신중하게 계획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요. 논문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육아휴직을 (1) 사용하기 전, (2) 사용하는 중, (3) 사용한 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럼 과로 문화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어떤 과정을 헤쳐나가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휴직 전: 나는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에 적절한 사람일까?

육아 휴직의 첫 단계는 육아휴직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 전에, 직장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여성들은 직장에 계속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건데요. 일자리 규범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오직 이상적인 노동자(ideal worker)만이 육아휴직을 떠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본인이 얼마나 직무에 헌신적인지를 따져보면서, 그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적절한 사람인지 자신을 검열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휴직 중: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까?

애초에 커리어 지속을 염두에 둔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떠났기 때문일까요? 육아휴직 도중에도 일자리 규범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휴직 기간을 조정하는 모습이 나타났는데요. 그들이 휴직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위험과 팀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른 여성들은 얼마나 육아휴직을 오래 사용했느냐”와 “다른 동료들이 나의 휴직 기간을 어떻게 예상하는가”였는데요. 이는 여성들이 휴직 기간 동안 실무 자체로부터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여전히 일자리 규범과 직무 헌신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휴직 후: 휴직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겠어!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후, 여성들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본인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만했던 근무자임을 증명하고, 지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는데요. 저자는 이를 “만회성 직무 헌신(compensatory work devotion)”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육아휴직을 받았으니까 직장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고…”

이러한 경향은 특히 노동시간이 길고 근무량이 많은 일자리(intensive workplaces)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 이 논문은 육아 휴직의 시행이 일-가정 양립의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과로(overwork)가 이상적인 노동자의 조건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육아휴직은 오히려 여성 노동자의 자기착취와 혹사로 이어졌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육아 휴직 정책이 일-가정 양립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노동자라는 그 전제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남성의 신체를 전제로 한 바람직한 노동자상을 해체하고, 나아가 일(work)의 의미에 대해 재고찰을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 근본적인 변화는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또한 앞으로의 일-가정 양립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요. 이제껏 일-가정 정책 관련 연구들은 각각의 정책이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가 보여주듯, 개인들은 정책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체가 아니라, 일자리 규범을 떠올리며 육아휴직 사용을 결정하고 기간을 조정하는 적극적인 주체입니다. 앞으로의 연구는 육아 휴직 사용률에만 집중하기보다, 사용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용자들이 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를 담은 연구가 더 활발해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