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운의 흐름 속에 있다고 느낄 때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법은…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너무 뜬금없이 ‘Water is Wet’ 같은 소리를 해서 미안합니다(약간 고이즈미 신지로 사진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건…어떤 좋지 않은 일들의 연속을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휩쓸리는 순간 거기서 영영 벗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이미 트위터에 한 차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이 기묘한 연속은 내가 며칠 전 길에서 아주 제대로 넘어지는 일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아니, 그 전부터인가? 하여간 나는 넘어졌다. 친구와 횡단보도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다 마침 초록불이 켜졌고,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미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화단에 걸려 약 1미터 가량을 날아 앞으로 엎어져 버렸다. 가볍게 까진 줄만 알았던 무릎은 절뚝거리며 버스에 타고 보니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일 공연에서는 긴 치마나 바지를 입어야겠군. 하고 생각하며 집에 갈 때 마데카솔과 습윤 밴드를 사서 들어갔다.
어제는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참 얄궂게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전 활동명의 마지막 공연을 했는데 새로 바꾼 이름의 첫 공연도 거기서 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나의 코로나 후유증은 아직 끝날 생각이 없는지 밤마다 마른 기침이 끊이지 않고, 목 상태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한 물을 매일 1리터씩 들이키는데도 그렇다. 여하간 당면한 공연을 취소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공연장에 갔다. 리허설은 좀 불안하긴 했지만 노래를 힘차게 부르지 않아서인지 그럭저럭 무사히 끝냈다.
문제는 리허설이 끝난 다음,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려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 갑자기 안경이 덜렁거리며 부러지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사가 풀린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안경테의 다리가 똑 부러져 버렸다. 나는 급하게 안경점을 찾아보았지만… 방금 전 리허설에서 사전녹화를 했으니 헤어와 메이크업, 그리고 의상을 절대로 바꾸지 말아달라는 PD님의 신신당부를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다행히 공연장 바로 앞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황급히 뛰어들어가 스카치 테이프와 순간접착제를 산 다음,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는 테이블 옆에서 안경 다리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 고정시켰다. 해리 포터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거기서는 헤르미온느가 간단한 마법으로 해리의 안경을 고쳐주기도 하는데…내겐 헤르미온느가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이다. 첫 곡의 중반쯤을 지났을 때…갑자기 목이 미친듯이 간지럽기 시작하면서 밤마다 나를 괴롭혔던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함께 하고 있었던 터라 많은 카메라가 나를 비추고 있었지만 나는 황급히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나오기 시작한 기침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간신히 숨을 들이쉬며 노래를 이어갔다. 당연히 목은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몇 번 더 물을 들이키며 불안하게 공연을 끝내고 나니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렇게 필사적인…공연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기분이 처참했다. 애초에 공연을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취소했더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민폐였을텐데,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해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떤 쪽이 ‘프로페셔널’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무척 피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밥을 배 터지게 먹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게임을 했다. 세 판 했는데, 세 판 모두 졌다. 자기 전 트위터에서 이번에 오는 태풍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태풍 상륙 예상 날짜는 이번 주말, 내가 코로나에 걸린 탓에 미뤄진 휴가 날이었다.
소소하게 고꾸라지는 나날들을 보내다보면 내가 불운의 기차를 타고 절벽으로 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애써 다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각각의 사건들에는 연결이 없다. 또한 해결 방법도 없다. 이런 일들에서 원인을 찾아봐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길에서 넘어진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해서 깨진 무릎이 다시 붙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적극적으로 좋은 일들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태풍이 오는 주말, 비로소 휴가를 떠난다. 어떤 비바람도 나를 막을 수 없다. 휴가가 끝나면 또 즐겁게 합주를 하고 공연 준비를 하고 간단하게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래서 내가 표를 끊지도 않은 이 기차에서 내리겠다. 즐거움의 우주왕복선을 타고 은하계를 가로지를 것이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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