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2는 현재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돌고 돌고 돌고》 준비가 한창이다. 참여작가로 초청한 크리스티나 킴은 이 전시의 출발점인 ‘인간이 자연과 지역생태계의 일부로서 함께 사는 연습’을 이미 오래전부터 체화하고 실천해왔다. 지난 연말, 본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티나 킴과의 대화를 지난 주 1회에 이어 소개한다.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 반짝이던 그의 두 눈을 나의 감은 두 눈으로 바라보며 말이다.
인터뷰. 이경희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도사 웹사이트에는 그간의 활동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진행 중(ongoing)’인 프로젝트가 여럿이라는 점입니다. 그 많은 일을 동시 진행하는 중에 늘 중심을 잡아주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태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느 프로젝트든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요. 한 번에 끝나지도 않고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단편적으로 나오죠. 패션계에서는 한 번에 끝내는 걸 좋아하지만요. 한 번에 딱 끝내야 하는 이유도 없고, 제 옷을 좋아하는 이들과 교류하면서도 ‘이건 실험이야. 반드시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맞고 틀린 게 중요한 것도 아니야’라고 얘기해요. 
ⓕ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시는군요. 도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시고요.
항상이요. 심지어 처음엔 잘못된 것,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 것에서도 어떤 아름다움이 나오거든요. 색도 그래요. 처음 생각했던 색이 나오지 않아도, 기대하던 색이 아니어도 같이 놓고 보았을 때 아름다울 때도 있어서 항상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저절로 자기의 길을,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요. Let it right!
ⓕ 직접 쓰신 글 <할머니의 기워진(고쳐 쓰는) 버선: 다층적 디자인 사고와 지속성 My Grandmother’s Mended Socks: Layered Design Thinking and Durability>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할머니께서는 시장에서 사 온 천의 손질부터 만드는 것, 다양한 활용과 재활용이 몸에 배신 분이셨지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몸(손)을 꾸준히 움직이시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쓰일 곳을 끝까지 찾아주셨어요.
할머니가 저를 돌봐주셔서 저는 늘 할머니의 한복 치마를 잡고 따라다녔어요. 같이 먹고 자면서 할머니가 하는 건 뭐든지 일주일 내내, 하루 스물네 시간을 다 봤지요. 우리 할머니는 뭐를 해도 아름다우셨죠. 다듬이질마저도 마치 타악기 연주 같았으니까요. 
이불에 쓰는 천은 바느질을 다 풀어서 세탁하고 끝나면 다시 꿰매는 식인데, 매번 세탁한 면을 햇빛에 널어두고 자세히 보세요. 천의 색이 바랬다거나 헤져서 얇아진 부분은 잘라놓고 새로운 천을 가져다 메우시는 거죠. 그런데 잘라놓은 천을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두셨어요. 그리고는 버선을 고치실 때 꺼내어 분류하고 필요한 곳에 활용하셨죠. 상태가 좋은 것은 버선의 겉에, 많이 헤진 것은 안쪽에 덧대는 거예요. 
이제 보니 제가 디자인하는 게 할머니의 바느질과 여러 면에서 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웃음) 저는 그게 ‘다층적인 디자인 사고’라고 생각해요. 저의 작업은 한국에서, 할머니가 일상에서 늘 하시던 것에서 온 것이었어요.

ⓕ ‘지속성’이라고 옮긴 ‘듀러빌러티(durability)’는 한국어로 내구성 혹은 영(연)속성으로도 직역됩니다.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나름의 쓰임을 찾아주는 것은 곧 물건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내구성과 영(연)속성의 서로 순환하는 모습에서 이 단어의 힘을 새삼 느꼈고요.
제가 생각하는 ‘듀러빌러티’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코트! 이건 제가 십 대 때 여러 개 만들어 가족들이 나눠 입은 옷인데, 아직도 멀쩡하고 휴대성도 좋아서 지금도 입고 있어요. 과거에 다듬이 하나 사면 평생 썼잖아요. 옛날에는 뭐든지 하나를 사면 평생 쓰는 게 당연한 거였어요. 내년에 또 사려 하지 않았죠. 쓰레기가 많이 나올 수가 없어요. 될 수 있으면 오래 쓰고 잘 쓰는 게 내가 생각하는 ‘듀러빌러티’예요.

ⓕ 모든 것을 살아 있는 것, 유기적인 연결로 바라보는 태도, 지속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물건의 쓰임과 역할을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금세 적응하는 가벼운 상태가 ‘잘 사는 것(well-being)’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속성은 곧 잘 사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지요.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웰빙은, 사람도 ‘좋은 상태’(well)이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땅, 물, 공기도 온전해야 모두의 ‘웰빙’이 가능하겠죠. 
팩토리와 함께 하는 《돌고 돌고 돌고》의 타이틀이 매우 적절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어요. 결국은 모두 흙으로 가잖아요. 우리가 버리는 것과 우리 모두가요. 그리고 흙에서 나오는 식물을 우리는 먹고살고요. 
우리 할머니가 텃밭도 꾸리셨는데, 상추를 특히 좋아하셨거든요. 10월이 되면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구부려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요. 추운 겨울에 거길 들어가면 지붕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의 지푸라기로 똑똑 떨어져요. 그때의 기분과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돌고 돌고 돌고》에서 만드는 ‘그린하우스’도 할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이 생각나서 시작했어요. 다 함께 흙을 만지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같이 나눠 먹다 보면 땅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더 알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함께 모여 돌고 돌고 돌고
ⓕ 《돌고 돌고 돌고》의 지역적 배경은 DMZ입니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리서치하셨는데, 특별히 DMZ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DMZ는 어릴 때부터 무서우면서도 호기심이 가는 곳이었어요. 60년대에만 해도 이북은 항상 무서웠어요. 북한에서 사람들이 올 수 있다는 얘기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들었으니까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삐라를 보면 책상 아래로 들어가 숨으라고 했는데, 그게 무서우면서도 어떤 땐 아름답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2015년부터 앞서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던 그린하우스가 떠올라 이 ‘온실’이란 게 어디서 나온 건가 찾아봤는데, 알고 보니 한국이 15세기에 세계 최초로 만든 거예요. 세종의 어의가 육식을 좋아하는 왕을 위해 겨울에도 채소와 귤을 권한 거죠. 
2019년에는 《디엠지 DMZ》(문화역서울284) 전시에 건축가 시게루 반, 아티스트 최재은과 참여했는데,¹ 그 전시에서 다른 작가의 DMZ에 자생하는 식물과 동물을 봤어요. 70년의 분단으로 고립된 장소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자연환경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그곳 식물이 대부분 먹을 수 있는 것, 먹으면 약이 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어떤 면에서는 ‘DMZ가 진짜 한국의 모습인가?’ ‘과거이지만 지금의 한국인가?’ 하고 질문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이제 시작인 거죠.

 본 프로젝트의 접근 방식은 퍼블릭아트입니다. 작품에서 ‘공공’과 연결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작가의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요?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보라보라 님께 드리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많이들 그랬듯이 저도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어요. 약 6개월의 격리생활 후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류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흙을 같이 만지며 일하는 것, 모기장으로 가벼운 건축을 만드는 일 등 여러 사람의 손이 함께 들어가는 걸 하고 싶었고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교류하고,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는 것이죠.
 제가 ‘공공’이라는 개념을 많은 사람, 큰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두세 명의 사람만 있어도 공공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제 일이 열 명만 넘어도 힘들어요. 그 이내의 사람이 같이 일하면서 정도 붙고, 그 정이 여러 군데 쌓이면 혼자 있어도 그간 쌓아온 정으로 살아갈 수 있거든요.
보라보라: 공공이라는 것을 공간이나 장소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죠.
맞아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에 가는 걸 참 좋아했어요. 그곳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미술관에 온 사람들이 작품을 보는 풍경, 전시된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에 둘러싸인 경험, (저는 단색화와 천경자 작가님의 전시를 본 기억이 있어요), 새로운 시도를 보며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등. 그래서 퍼블릭아트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누구 한 사람이 아닌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만들고 쓸 수 있는 것 말이죠.

보라보라: 공통의 경험(shared experience)이 생기죠. 만지고 만드는 건 매우 적극적인 태도이고, 보는 것도 일종의 작품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서 가진 경험이 다른 방식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고요. 그렇게 해서 함께 겪고 나눈 경험이 다른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 보는 사람에 의해 계속해서 바뀔 거거든요. 온실도 그냥 처음의 모습을 고수할 게 아니라,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 PaTI의 학생들에 의해 계속 고쳐나가고 계절이 바뀌면서도 계속 써가도록 하고 싶었어요.
덧붙여, 장인과 일하는 것, 천연소재를 쓴다는 것은 자칫하면 ‘전통’이라는 것에 매몰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크리스티나는 그렇지 않아요. 새로운 기술과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한 데 섞어요. 오랜 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하는 장인과 새로운 것을 만드는 크리스티나의 생각이 궁금해요.
저는 항상 배우는 것을 주요 일로 하는 학생의 삶이 가장 좋은 거 같아요. 어떤 분야의 장인과 일한다는 건 스승과 제자가 되어 가르치고 배우는 경험을 나누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가 만든 것은, 내 것도 그분 것도 아닌 거죠. 유일한 것이 아닌 공동의 것이에요.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거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나오는 거 같아요.

 작가님의 인상과 대화에서 끊임없이 집중하고 즐기며, 매 순간을 환대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반대로, 작가님도 무기력하고 지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어떤 면으로는 저의 기질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기분이 가장 좋을 때는 인도에서 하는 일을 예로 들 수 있어요. 그곳에서 처음 일한 게 1996년이에요. 인도에서는 남녀가 한자리에 모일 수 없고,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는 교류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하는 곳에 가면 남녀, 종교,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다 같이 일해요. 같이 앉아서 일하고, 같이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너무 흐뭇해요. 
특히나 인도에서 수공예는 무슬림 남성이 많이 하는데, 그들은 볕도 들지 않는 곳에 사는 최하층민이거든요. 그런데 그들의 손재주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워요. 그리고 그들을 오래 만나오면서 저와 일하는 것을 즐기고 행복해한다는 게 느껴져요. 그걸 보는 저 역시도 행복하고요. 
슬플 때가 거의 없어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걸 생각하면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곳으로 빨리 가고 싶으니까요. (웃음)

사원의 종이 멈춘다. 하지만, 
그 종소리는 멈추지 않고 
여전히 피어난다. 
도처의 꽃에서. 

The temple bell stops— 
but the sound keeps coming 
out of the flowers. 

— Matsuo Bash, 1644-1694 (translated by Robert Bly)²
¹ 크리스티나 킴, <대지를 꿈꾸며> 프로젝트, 2018
프로젝트 <대지를 꿈꾸며 … >를 완전히 관람하기 위해서는 약 8시간에 걸쳐 20km를 걸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 착안하여 크리스티나 킴은 DMZ에 들어갈 때 입을 옷과 가방의 디자인을 제안하였다. 작가는 자연 요소(햇빛, 비, 저온, 바람, 벌레 등)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옷가지(외투, 조끼, 모자)와 필기구, 공책, 간단한 점심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을 제공하고자 했다. 직물은 한국의 섬유(유기농 삼베와 면), 모양은 한국 전통복식에서 온 것이다. 크리스티나 킴은 옷가지 각각이 휴전선 이남과 이북의 한국인에 의해 그 지역에서 제작될 것을, 옷 위에는 비무장지대에서 지내는 멸종위기종인 두루미가 수공예로 수 놓일 것을 제안했다. 작품 제작과정은 폐기물을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며 완성된 생산물은 비료로 사용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출처: 프로젝트 소개글)

“정말이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어.”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이하 보라보라)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정말’은 진짜 정말인 게, 팩토리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부터 최근까지를 얼추 더듬어보면 주제, 분야, 장르, 프로그램, 표현, 공간, 심지어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은 예술공간이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며 만들어낸 촘촘한 시도는 대체 그 안에 무슨 에너지가 일었기에 가능했을까 싶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돌아보면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고, 울다 웃으며 밤을 보내고 포옹했는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인터뷰 시리즈는 팩토리 안팎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또한 앞으로 만들어나갈 함께 그린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기대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과 우리, 지난날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지금 여기 모두로 열려 있기를 바라며.

팩토리2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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