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은 나쁜가? : 텍스트힙은 트렌드가 아니라 전통이다

‘텍스트힙’은 나쁜가? : 텍스트힙은 트렌드가 아니라 전통이다

text-hip : Reading is sexy?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37), 2024.10.2,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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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텍스트힙, 책, 독서모임, 문해력, 콘텐츠

1.머리말
2.수백년 전의 ‘텍스트힙’ : 읽진 못해도 책은 멋져
3.“도움!” : 책은 알아서, 혼자, 잘 읽어라?
4.종이책은 왜 진작 안 망했나? :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1일과 3일이 모두 공휴일이라 ‘샌드위치 휴일’로 쉬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인스피아 편지를 꺼내 읽으며 시원한 가을날의 여유를 잠깐이나마 느껴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들어서 파란 하늘도 바라보고요.

최근 ‘텍스트힙(text hip)’ 유행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텍스트힙이란 ‘글자(text)’와 ‘멋지다(hip)’를 결합한 단어로, 책과 독서를 통해 자신의 멋짐을 드러내려는 트렌드를 뜻하는데요.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우선 지난 6월에 열린 국제도서전엔 많은 인파가 몰렸고요. 멋진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거나 마음에 든 책들을 구입해 인증샷을 찍는 것 등도 텍스트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올초 해외 SNS에선 ‘서재 인증Bookshelf’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고, 틱톡에서 짧게 소개된 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역주행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죠(링크). 가디언 등 해외 언론에서도 “Gen Z*들 사이 독서가 쿨해졌다!”며 깜짝 놀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링크).

*Gen Z(Generation Z) = Z세대. 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생

이런 트렌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1.(한숨을 쉬며) 어찌 됐든 간에 책을 만져보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2.정작 책은 안 읽으면서 겉멋을 부리는군!

대체로 언론 등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fig.1> 근래 국내외에서 MZ세대 사이 북카페에서 인증샷을 찍는 등 '텍스트힙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왼쪽) 해외 SNS에서 올해 초 유행한 ‘Bookshelf (wealth)’ 인증 트렌드. 집의 책장이나 서재를 찍는 것인데, 단지 인테리어로서의 전시가 아니라 책장에 꽂힌 책 목록을 통해 집주인의 관심사와 안목을 살펴볼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 YTN(영상) , 뉴욕타임스(링크)

그런데 저는 곰곰 생각하다보니, 이 두 가지 반응 모두 약간은 핵심을 빗겨나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텍스트힙의 핵심은, 멋진 ‘척’을 한다보다도 ‘책이 멋져보인다 - 나도 왠지 모르겠지만, 저기 어울려보고 싶다!’라는 욕망 쪽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정작 많이 읽진 않으면서도 막연하게 ‘멋져’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과연, 오늘날에만 있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오늘 편지에서는 <옥스퍼드 책의 역사>(제임스 레이븐 외)와 <포스트디지털 프린트>(알렉산드로 루도비코) 등 책의 ‘옛날’을 살펴본 책들을 지팡이 삼아, ‘최신’ 텍스트힙 유행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수백년 전의 ‘텍스트힙’ : 읽진 못해도 책은 멋져】

‘요즘 사람들은 책을 참 안 읽는다...’

한탄이 자주 들립니다. 실제로 올해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다고 하기도 하고요.

이런 얘길 듣다보면, 마치 ‘좋았던 옛날’엔 사람들이 모두 진지한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열심히 읽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불과 1세기 전인 192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문맹률은 무려 80%에 달했고요. 옛날 사람들도 대체로 ‘진지한 책’보다는 오늘날로 치면 만화나 웹소설같은 것을 훨씬 좋아했습니다.1) 게다가 17세기 이전엔 책 한 권이 노동자 몇 달치 월급을 뛰어넘을 정도로 비쌌기 때문에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곤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단 ‘모셔두기’ 위해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죠.

즉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책이 [진짜로 읽히기] 시작한 건 역사상 정말로 얼마 안된 일일지 모릅니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는 기원전 3200년무렵의 바빌로니아 석판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블로그까지 ‘책’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는 백과사전적 책인데요.

제가 오늘 편지에서 이 책을 함께 읽기 위해 가져온 이유는, 이 두꺼운 책을 흥미롭게 읽는 내내 ‘텍스트힙이 과연 오늘날만의 신기한 유행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옛날부터 책은 꼭 ‘책을 읽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 왠지 모르게 책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끌리고, 책을 읽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어달라며 조르고, 쳐다보고, 읽진 않더라도 일단 예뻐서 집에 가져다두고 쓰다듬기도 했죠. ‘책꾸(책 꾸미기)’를 하기도 했고요.2)

의외로, 오히려 이쪽이 전체 ‘책의 생태계’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을지도요.

<fig.2> 책, 독서에 대한 약 6000년 역사를 다룬 <옥스퍼드 책의 역사> 표지 (왼쪽) 19세기 한 여성이 주방에서 냄비가 타는 것도 모르는 채 소설책에 푹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상단의 선반을 잘 살펴보면, 그 위엔 종교 등 진지한 책들이 올려져있고 거미줄이 쳐져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책을 좋아했다곤 하지만 대체로 대중 독자들은 '즐길거리'에 집중했죠. 이런 종류의 '책(즐길거리)'들은 오늘날 웹소설이나 OTT로 상당수 흡수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링크)

이 책을 읽으며 저를 사로잡았던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아래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봤습니다.

1.#책, 소수의 특권 : 역사적으로 오늘날처럼 대중이 보편적으로 문해력을 갖고(요구받고), 책을 잔뜩 접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2.#유구한 전통의 텍스트힙 :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책이 ‘왠지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1.우선, 수천년의 책 역사를 차근히 훑어내려가다보니 - 새삼스럽게도, 저는 “책을 갖고, 또 (심지어) 실제로 그걸 읽다는 건 엄청 희귀한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한 권의 책을 갖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가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베껴써야했고, 이 때문에 책이 굉장히 귀할 수밖에 없었겠죠. 필사를 하면서 내용이 바뀌거나 주석이 덧붙기도 했으므로, 대체로 책은 ‘단 한 권’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송나라(960~1279)에서 목판 인쇄를 통해 책을 찍어내던 시기, 12세기의 한 관료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배움에 나를 바친 젊은 시절에 경서와 그 주석서의 필사본을 모두 소유한 서생은 100명 중 한 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문헌을 전부 필사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경서의 인쇄본이 넘쳐나고 관료든 평민이든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집에 두었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서생들은 실로 큰 복을 누리고 있다.(형병, 이도의 <속자치통감장편> 중) ’

-제임스 레이븐 외, <옥스퍼드 책의 역사>(이하 동일)

이렇게 책이 귀하다보니 과거 귀중한 책을 여러권 가진 사람의 집은 모임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18~19세기 무렵까지만해도 유럽 도서관에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들을 모조리 쇠사슬로 매어두었다고 하죠.

<fig.3> 책의 세로 길이가 무려 92c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세시대 채색본 codex gigas의 사진. 이 책은 13세기 보헤미아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만들어졌고, 무게는 약 75kg에 달합니다. 한 수사에 따르면 과거 이 책은 창문 밖으로 떨어져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합니다. (왼쪽) Hereford 성당 도서관의 '체인 도서관'의 모습. 과거 책이 몹시 비쌌기 때문에 성직자 등 일부 계층만이 입장할 수 있었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 한권마다 모두 사슬이 매여있어 그 자리에서 직접 읽도록 했습니다. / Imago, Wikimedia

당연히 ‘책을 읽는 것’ 역시 전혀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경험일 수는 없었겠고요. 책은 너무 귀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용도로 이용되거나(종교적), 읽는 도구라기보다는 소장용 수집품 같은 역할을 오래 해왔다고 하죠. 이는 인쇄술이 도입된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쇄본에 대한 수요를 읽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아닌 소장 가치가 있는 대상에 대한 수요로 간주하는 것도 유익하다. 인쇄술로 제작된 사치스러운 판본들은 분명히 읽히기 위한 책이 아니었다. 에우제니오 가린*Eugenio Garin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책장에 꽂혀 있지만 읽히지 않은 책, 전시되고 회자되지만 읽히지 않은 책, 노획되어 전리품으로 유럽을 돌아다니지만 읽히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에우제니오 가린(1909~2004·링크) :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르네상스 시기를 주로 연구한 역사가

2.이어, “유구한 전통의 텍스트힙”에 대한 얘깁니다.

인쇄술의 시대가 오며(16~17세기 이후) 비교적 중산층 도시민들도 폭넓게 책을 구해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글을 능란하게 읽는 능력은 소수만이 가진 ‘특수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궁금해집니다.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은 ‘읽는 사람’들을 째려보고 잘난척한다고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책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 왠지 모르게 책이 좀 멋있다고 생각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에 몹시 관심을 가졌습니다.

글을 읽지 못한다면, 대신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에 귀를 기울였죠.

근대 초 ‘퍼실리테이팅(fercilitating, 촉진, 용이하게 도움을 주다)’이라고 불린 관습의 15세기 사례들이 있다. 두 남자가 한 방에 앉아 텍스트를 읽고 서로에게 설명하는 활동이었다 […] 프랑스의 편년사가 겸 시인 장 프루아사르는 자신이 쓴 모험소설 <멜리아도르>를 푸아의 군인 백작 가스통 페뷔스 앞에서 직접 낭독한 일화를 전한다 […] 텍스트를 들은 사람은 스스로 책을 구해 공부하기도 했다. 다른 경우에 낭독은 읽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을 책에 입문시키는 수단이기도 했다 […] 문해력을 갖춘 문화에서는 문맹자들을 포용했고, 문맹자들은 자신을 문자를 익히지 않았어도 문해력을 중요시했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존중이 필시 상호적이었음으로 상정할 수 있다. 책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식자(識者·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못지 않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식자들은 이들이 책에 품는 기대를 분명 인식했을 것이다.

이들은 비록 글자를 술술 읽는 데는 서툴렀지만, 대신 그림이 큼직하게 박힌 책들을 읽으며(보며) 재미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했고,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책을 듣고서 자신이 스스로 읽어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죠.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수백년 전 버전의 텍스트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 17~18세기, 인류 사상 최초로 대중 독자가 탄생했을 무렵 그림이 많이 포함된 책들이 유행했습니다. 식자층이 아닌 대중 대상의 책의 경우 삽화가 주를 이루는 책들이 많았다고 합니다(삽화만 '봐도' 내용을 대강 알 수 있도록). 오늘날의 그림동화책이나 만화, 웹툰, 유튜브에 더 가까울 정도인데요. 이런 '책'들은 과거엔 책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에 들어가지 않겠죠. 즉,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안읽는다'고 할 때 '책을 읽는다'라는 행위 자체의 성격이 과거와 크게 바뀌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2)"18세기 중반 이전에는 대부분의 책이 서적상 사이에서 미제본 상태로 거래되었다. 최종 구매자는 직접 제본공을 구해 자신의 선호에 따라 책을 제본할 수 있었다[…]인큐내불러(*1460~1500년 무렵 인쇄술 초창기에 출간된 책)는 다수가 과거의 소유자와 사서가 다시 제본하고 ‘개선’한 것이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 중

【3.“도움!” : 책은 알아서, 혼자, 잘 읽어라?】

즉, 책을 직접 줄줄 읽지는 못할지라도 “왠지 모르게” 책이 재밌고 멋지다고 생각해서 어슬렁대고 - 그것을 쳐다보고 침을 꼴깍 삼키지만 여전히 썩 잘 읽지 못하는 독자들은 수백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텍스트힙은 최신 트렌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백년 된 ‘전통’이라고 할만한 것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그 당시의 사람들이 21세기에 온다면 멋진 도서전시회나 예쁜 책방을 우루루 몰려다니며 즐겁게 구경을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손에 스마트폰이 있다면 당연히 인증샷도 찍겠죠)

그런데 제가 오늘 레터에서 말하려는 건, 단순히 “텍스트힙 현상이 수백년 전부터 있었고, 진지한 독자는 원래부터 극소수였다. (그러니까 호들갑떨지마!)”라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더 주목해보고 싶은 대목은, 과거엔 텍스트힙 독자들이 ‘그 이후’의 계단을 오르기가 비교적 수월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 잘 읽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거나,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함께 읽거나 하면서요.

우선, 과거엔 ‘책을 잘 읽는 덕후’들은 ‘책을 못 읽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무엇을 읽을지’ ‘무엇이 좋은 책인지’ 추천하는 다양한 글들을 통해선데요.

연구자님들 가운데서도 ‘책을 읽긴 읽어야할텐데, 대체 뭘 읽어야할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실은 아주 전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무엇을’ 읽을지 모른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독서에 있어서의 최대의 진입 장벽입니다.3) 특히나 책이 너무너무 많아서 대체 뭐가 좋은 책인지 모르는 상황엔 더더욱요.

‘정보의 홍수’ 역시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16세기에도 ‘정보의 홍수’를 불평해왔고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도저히 읽을 수 없을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거죠.

이때(16세기) 부터 책이 지나치게 많다는 불만이 흔하게 제기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차고 넘치도록 쉼없이 책을 찍어내는 인쇄기를 탓했다 [...] 에라스뮈스는 1525년에 처음 발표한 ‘천천히 빠르게Festina Lente’ 격언에 관한 논설에서 “신간이 벌떼처럼” 찍혀 나온다고 불평했다 [...] “어리석고 무지하며 해롭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광기어린 불경하고 불온한 […] 팸플릿과 책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이 홍수 속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장점을 잃어버린다”. 에라스뮈스의 이 불만에 찬 목소리는 물론 인쇄본에 실렸다 […] 1545년 취리히의 콘라트 게스너 역시 인쇄가 도입되고 나서 한 세기 넘게 쌓인 “우리 시대에 쏟아진 무용한 글의 어리석음”과 “해롭고 어지러운 책의 과잉” 모두를 불평했다.

위의 대목에서 연도 등만 대강 바꾸면 2024년의 얘기라고 해도 큰 어색함이 없을 정돈데요.

이처럼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비단 책을 안 읽는 사람 뿐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6세기 이후로 ‘책에 대한 책’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독자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얻기 쉽도록, 직접 누군가가 섬세하게 읽고 살펴보고 고른 책의 큐레이션, 서지 목록, 주제별 책, 도서관 카탈로그와 참고도서 목록 등이죠. “대체 뭘 읽지...”하고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와글와글들입니다.

조반니 네비차노는 일찍이 1522년 “책이 많으면 책을 찾기 어렵다”는 말로 이 문제에 주목했다. 네비차노는 이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으로 여러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법률책 목록을 출간했다. 책의 과잉에 대한 인식은 독자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책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이러한 책의 사본을 선택 입수하도록 돕는 새로운 장르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러한 ‘책에 관한 책’으로는 중세시대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있는 도서관 카탈로그와 참고도서 목록(이 있다) […] 1674년판 보들리 카탈로그의 서문에는 독자가 보들리 도서관을 이용하든 하지 않든 이 책은 “개인적인 공부에 도움이 될 […] 도서의 색인을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 슈티프츠비블리오테크의 도서관 카탈로그(1543)에는 752권의 소장도서가 네가지 방식으로 정리되어있었다. 책의 크기와 입수 시기에 따른 목록, 저자명의 알파벳순 목록, 두 가지 주제별 목록에 배정해 정리한 목록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카탈로그는 독자가 예전에 미처 몰랐지만 관심이 있을만한 책을 독자에게 안내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개인적으로 책을 통틀어 가장 느낌표가 떠오른 대목인데요.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그 당시에 비해 검색만 하면 ‘훨씬 더’ 쉽게 어떤 책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 오늘날 진심으로, 어떤 안목있는 사람이 직접 양서를 두루 읽어보고 사려깊게 추천해주는 서비스가 얼마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블로그에서 책을 검색했을 때 찾을 수 있는 내용은 대부분 별다른 가치가 없거나, 광고, 체험단 서평이고요.

<fig.4> 18세기에 발행된 보들리안 도서관의 서지목록 표지. 다수의 도서관들은 주제별 읽을만한 책 목록 등을 발행해 독자들이 쉽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목록 자체가 '읽을 책 추천 목록'이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왼쪽)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자녀에게 성서를 읽어주는 아버지>(1755). 제프리 프리드먼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 시골 가정에서는 실제로 가정 내에서 성서를 읽어주는 관행은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책을 읽어주는 사람(식자층)'과 그것을 '듣는 사람' 간의 공동체적 연대와 신뢰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 장면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한 명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Sotherbys, Louvre(링크)

과거 사람들 역시 광고 말고 ‘진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추천해주는 책을 읽고 싶어서 슬퍼했습니다.

19~20세기 초 일본 근대 독자의 탄생을 그린 책에서 나가미네 시게토시는 이러한 독자의 간절한 요청을 싣습니다.

* “기자들이여, 우리 독자들에게 많은 명저를 소개해달라. 우리들은 선택하는 데 고민한다. 광고문에 홀려 구입하여 읽어보면 너무나 가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독서의 벗> 2권 8호)“

* “초학 시작법의 양서 두세권을 알려 달라” “니켈 및 아연 도금 방법에 대한 책이 있으면 정가와 발행처 등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이 독서 고문란은 투고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한 사람당 하나의 질문으로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
-나가미네 시게토시, <독서국민의 탄생>

* 독자: 문학을 연구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강의록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사리원 안용삼)

기자: 일본 동경 조도전 대학에서 발행하는 조도전 문학 강의가 좋습니다.

독자: 섹스피어(셰익스피어)의 역사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알기 쉽게 자세히 쓴 서적은? (서계정 조명동)
기자: 신조사 발행 '세계문학전집' 중 사옹 편을 참고하시오.

독자: 조선 내에서 발행되는 중학 강의를 구독하고 싶습니다. (조용규)
기자: 없습니다.

-박숙자, <속물 교양의 탄생>에서 재인용(20세기 초 신문의 질의코너)

이처럼 일본 뿐 아니라 같은 시기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추천할만한 판본’이라든지 ‘읽을만한 한글 추리소설’ 등을 추천받으려는 열성적인 독자들로 질의응답코너는 늘상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하네요.

저는 이런 대목들을 읽으며, 과연 오늘날의 독자들은 ‘무엇을 읽을까’라고 생각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만한 통로가 있는지 궁금했고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한 해 출간되는 책은 6만2865종입니다)

과연 알아서 뭘 읽을 지 척척 알고 책만 내놓으면 뛰어난 안목을 갖고 혼자 알아서 다 읽어버리는 슈퍼 독자라는 건 역사상 얼마나 존재했을까요? 일반 독자들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요? 애초에 그런 기대가 이상한 것 아닐까요?

이어 -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 애초에 책을 각자 ‘혼자’ 읽어내는 것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특히나 이는 직업적 학자, 작가들과 달리 18세기 이후 책의 대량생산 및 문해력 증가로 인해 탄생한 최초의 ‘대중 독자들’에겐 더 중요한 대목인데요. 유럽에서 책이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고 대중 독자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하게 독서회, 커피하우스, 상업도서관 모임 등 - 여럿이 모여서 책 읽을 수 있는 모임이 생겨난 시기와 일치합니다. 즉, 사람들은 대체로 혼자서 읽는 게 심심하고, 또 어렵기 때문에 모여서 함께 읽고 추천을 받기도 하고 또 떠들면서 생각을 키워갔던 것이죠.

* (18세기 무렵엔) 인쇄물이 더욱 광범위하게 유통되면서 자기 소유의 책이 없고 기본적인 문해력이 부족한 도시 거주자도 이제 더이상 순수한 ‘구술’ 문화에 산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 인쇄물로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드는 도시의 제도들 또한 확산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서적상이 설립한 상업적 대여 도서관과 도시 시민들이 조직한 독서회reading society다.

상업적 대여 도서관의 회원들은 서적상 카탈로그를 참고해 도서를 대출하고 서적상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정기간행물을 열람하고, 토론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다른 회원들을 만났다 [...] 독서회는 상업적 시설이 아닌 시민들의 연합이었다 [...] (독서회) 회원은 공동 소유의 도서와 저널 뿐만 아니라 토론과 사교를 위한 공간도 이용할 수 있었다 [...] 세번째 제도로는 커피하우스가 있다 [...] 누구든 출입할 수 있었고, 누구든 손님들 사이에 도는 신문이나 필사된 낱장 신문으로 촉발된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 대여도서관, 독서회, 커피하우스는 각기 다른 이용자층의 요구를 만족시켰지만 이 제도들 사이에는 적어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남성들(과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장소에서 훨씬 넓은 범위의 인쇄물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세 제도는 이렇듯 다독extensive reading의 확산에 기여했다.

즉, 정리해보자면 - 사람들은 책에서 매력을 느끼고서 기웃거렸고 - 비록 책을 잘 읽지는 못하더라도 무슨 책을 읽을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또 모임에서 책을 접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직접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요즘에 비해서는 훨씬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죠.

‘텍스트힙’으로 어설프게 어슬렁대며 시작하더라도, 금세 끌어올려줄 ‘책 생태계’의 동료와 선배, 길잡이들이 많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3) 사족입니다만, 인스피아를 시작하기 전의 과거에도 저는 가끔가다 '막연히' 왠지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주기적으로 있긴 했는데요.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다보니 요새 뭘 보면 좋을지를 몰라서, 회사에서 도서관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는 처음 인스피아의 모델을 '책소개 레터'로 할까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지금도 일단은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있긴 합니다만!

여튼, 성인의 절반이 '1년에 책을 한권도 안읽는다'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성인의 상당수가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 해도 뭐가 재밌고 유익한 책인지 모른다라고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꼭 책 뿐 아니라, 운동, 게임, 전시 관람 등 즐길거리 전반에도 이런 말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4.종이책은 왜 진작 안망했나? :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책을 덮고 나선 다소 착잡해졌습니다.

애초에 혼자서 수많은 책 가운데 재미나고 중요한 책을 쏙쏙 뽑아 읽고, 시간을 투자하고, 혼자서 모든 걸 다 파악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오늘날엔 책 못(안)읽는다는 꾸짖음만 잔뜩 있지, 진짜 책 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요즘 사람들이 책을 막연히 읽고 싶다고 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17~18세기에 비해 훨씬 적은 게 아닐까?

한편으론, 왜 굳이 나는 ‘책’을 생각하는가?라는 질문도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책은 그냥 역사속으로 사라지던 차인데, 책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도 책은 여전히 ‘제법 쓸모있는’ 매체로서 고유한 역할을 독특하게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합니다. 꼭 ‘책만 짱이다!’라기보다는, 인터넷 SNS 등의 텍스트와 상호보완적인 도구로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간단히 살펴볼 알렉산드로 루도비코의 <포스트디지털 프린트-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는 딱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저자 나름으로 궁리해가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종이책은 왜 진작 안 망했나?”라는 질문에 대해섭니다.

이 책의 부제에 적힌 ‘1894년’은 최초로 책의 종말이 예견된 해인데요. 당시 전보, 전신의 발명으로 많은 사람들은 환호를 외쳤습니다. 이제 더이상 무겁고 번거로운 종이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며, 사람들은 누구나 라디오로 요약된 소식, 글을 받아볼 것이라는 거였죠.

우잔느(<책의 종말>,1894)는 '정적인' 인쇄물 대신 오늘날의 '주문형'과 같은 플랫폼을 사용해 모든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녹음된 음성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미래의 출판을 묘사했다 [...]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 마침내 우리는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알렉산드로 루도비코, <포스트디지털 프린트>(이하 동일)

하지만 1894년의 이런 희망찬 예견과는 달리 종이 인쇄물은 심지어 이후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서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찌됐든 살아남아있는 상탭니다.

저자는 이 책 한 권 분량으로 골똘히 궁리합니다.

“그러게...대체 왜 안망했지?”

<fig.5>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책 표지 (왼쪽) 옥타브 우잔느와 알베르 로비다의 삽화집 <책의 종말>(1894)에 실린 그림. 책 속 여성은 종이로 된 책, 신문을 읽는 대신 느긋하게 기대고 앉아 실린더를 통해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당시 미래화 가운데는 이처럼 '읽지' 않고 듣거나, 누워서 '저절로' 지식이나 정보가 머리로 들어오는 미래를 그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 미디어버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실은 오늘날 우리는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하곤 합니다만, 만약 기술의 변화가 즉각 영향을 미쳤다면 종이 책 등 인쇄물은 벌써 오래 전에 망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심지어 1945년에는 한 인상적인 일이 벌어지는데요. 신문배달원이 파업을 하자 당시 사람들은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간편히 뉴스를 접하는 대신 길거리에 늘어서서 종이 신문을 사려고 했다고 합니다.

1945년 맨해튼에서는 […] 신문 배달원들의 파업이 17일동안 계속되었다 […] 많은 신문 구독자들은 파업이 발생하자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 뉴욕타임스는 파업 첫날 3만8000부를 팔았지만, 마지막 날에는 21만부까지 판매했다 […] 주요 신문사 밖에도 수백명의 고객이 인내심을 가지고 두세 시간 동안 열일곱블록에 걸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실시간 라디오보다 물성을 지닌 인쇄된 단어의 시차를 즐기는 듯이 보인다. 간단하게 라디오를 켜고 최신 뉴스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도 […] 해설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문은 읽고 다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에 관해서 각자 편한 시간과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신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고 ‘좋았던 옛날’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늘날엔 분명히 신문을 온라인으로 보는 것이 대체로 편하고 저 역시 온라인으로 훨씬 많은 기사들을 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들은 기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떤 국면에선 종이를 더 선호해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자는 “책이 무조건 좋다”고만 찬양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종이책엔 여러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4)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21세기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매력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인터넷 vs. 종이책'이 아니라, 둘이 만나서 각기 다른 장점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거죠.

이 책에선 다양한 종이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21세기ver.)을 소개하는데요.

그 중에 한 가지, 유독 제 눈에 가장 띄었던 건 ‘거름망으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요는, ‘정보의 폭풍홍수’ 수준인 오늘날 - 종이책은 그 까다로운 출판 과정 및 노동, 비용 때문에 오히려 정보 가운데 진짜 흥미롭고, 가치있는 텍스트를 모아놓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인쇄물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으며, [...] 인쇄물은 더욱 귀중하고 덜 소모적인 것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종이와 연관된 복제 과정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며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쌓이는 종이는 중요한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데, 공간은 지금 우리의 소비지향적 시대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 중 하나이다 […] 사실 종이와 픽셀은 서로 상보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인쇄는 점점 더 웹의 ‘정수’를 보존하기 위한 선택적 매체가 되고 있다. 인쇄물의 편집자는 큐레이터이자 인간 필터로 인터넷의 바다에 던지는 병 속의 메시지 중에 무엇을 안정적인 매체에 보관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인쇄물은 전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느긋하게 멈춰 사색하고 기록하는 것을 허용한다.

저는 확실히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엔, 어떤 잘 쓰여진 책 자체가 ‘정보에 대한 정보’, 길잡이의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거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큐레이션 뉴스레터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내게 가치있는 '걸러진' 정보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인스피아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책 ‘만’ 읽자는 게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함께 검색을 할 수도 있고, 검색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종이책을 읽을 땐 잠깐 스마트폰을 멀리해둘 수도 있고요.5)

여전히 종이책에 이러한 엄청난 장점들이 있다면, 책은 여전히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시대에도 무엇보다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요.

누군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영감을 주는 재미나고 유익한 글(‘잼얘’)을 읽고 싶어하는 건 어느 시대의 독자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4)물론 이 책에선, 책의 '장점'만 늘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책의 단점이라면, 음성이나 영상, 놀잇감 등 다른 다양한 매체들을 포함할 수 없고요. 온라인 공간 텍스트의 기본인 하이퍼텍스트, 실시간 댓글 등은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일단 인스피아만 보더라도 많은 링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종이신문 버전 기사로 바꿀 때는 모든 사진설명, 링크 및 각주를 없애야만 합니다. '지면관계상' 분량도 거의 1/3로 줄여야 하고요. 비록 QR코드를 포함하긴 하지만 여러모로 아쉽죠.

5) 이 '독서의 장점'은 의외로 큰 것일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서울시가 진행한 한 야간 책읽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에게 독서용 헤드폰, 독서등 외에도 해당 시간동안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넣어둘 수 있는 '몰입상자' 등을 제공했는데, 이 상자를 받아간 참가자들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합니다.(링크)

【5.맺음말】

‘텍스트힙’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책과 독자의 역사를 살펴본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과연 누군가 어떤 장래희망을 갖거나, 본격적인 취미를 가질 때 그 첫 시작부터 진지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전 유치원 때 꿈이 공룡학자였는데, 공룡과 학자가 둘다 멋지니까 둘을 합해놓으면 두배로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고등학교 땐 철학책을 ‘읽고 싶어서’ 난해한 베개용 철학책을 뽐내며 들고 다녔고요(그 책은 어려워서 지금도 제대로 못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식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땐 ‘왠지 좀 멋져...’에서 시작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실제 많은 ‘진지한’ 학자나 작가들도 과거 텍스트힙 시절의 ‘좀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곤 했습니다.

과거 정경영 교수(한양대 음악연구소장)의 책을 읽다가 한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사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건, 솔직히 말하자면 잘난 척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경영,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이 대목을 보며 킥킥거렸죠. 교수님도 어렸을 땐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멋진 척’보다도 - 오늘의 ‘멋져’가 이후 그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지가 아닐까요?

100년 전부터 사람들은 펄쩍 뛰며 '책은 곧 망할거야!'라고 해왔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젊은이들로부터 왠지 좀 멋있어보이네...라는 마음을 끌어내는 건 역시 책이 가진 묘한 매력이자 끈질긴 생명력에서 기인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 그 ‘왠지 좀 멋있어보이네’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외한의, 본질을 꿰뚫는 ‘감’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날에도 그런 묘한 매력이 책에 남아있다면, 아직은 책을 가지고 어떻게 - 새로운 방식으로 함부로 까불고 놀아볼까 조금 더 고민해볼 가치가 있겠죠!

어슬렁대는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함께요.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제임스 레이븐 외, 홍정인 옮김, 『옥스퍼드 책의 역사』, 교유서가, 2024.

-지난 에세이 레터 마지막에 간단히 소개했던 책입니다. 간단히 소개한 뒤, 쭉 끝까지 정독을 하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아주 다양한 해찰을 하며 읽을 수 있었는데요. 근래의 '텍스트힙'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오랫동안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의 독서를 통해 관련 생각을 나름대로 키워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떠오를만한 책입니다만, 훌륭한 학자들이 파트를 나누어 책의 역사를 많은 자료를 통해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마련해두면 좋을만한 책입니다.

알렉산드로 루도비코, 임경용 옮김,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미디어버스, 2017.

-이 책의 부제는 레터 본문에서도 썼듯, '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입니다. 얼핏 보기에 <옥스퍼드 책의 역사>에 이어지는 (14장 이후) 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 그리고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시대의 텍스트 생태계에서의 현상, 실험'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1894년 이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즉, <옥스퍼드 책의 역사>에서 다루고 있는 '종이책의 리즈시절(=한창 때)'와 시기가 상당히 겹친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영 다른 지점을 공략해 들어갑니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가 20세기를 '위대한 종이책의 세기'로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종이책 왜 안망했지?의 세기'로 다루고 있는 건데요. 이 차이가 이 책의 특이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궤적의 차이랄까요.)

천정환, 『근대의 책 읽기』, 푸른역사, 2003.

나가미네 시게토시, 다지마 데쓰오·송태욱 옮김, 『독서 국민의 탄생』, 푸른역사, 2010.

-이 두 책은 언젠가 꼭 레터에서 다루고 싶었던 책들인데, 오늘 내용과 일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챕터3에서 간단하게 일부 인용해보았습니다. 나가미네 시게토시의 책(<독서 국민의 탄생>)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일본 근대 대중 독자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면, 천정환의 책(<근대의 책 읽기>)는 대략 같은 시기 한국 근대 대중 독자의 탄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독서 국민의 탄생>을 먼저 읽고, 이런 책을 한국버전으로 읽고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근대의 책 읽기>를 읽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이 책들은 그야말로 '초보 독자'들이 어떻게 얼렁뚱땅 엉망진창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도움을 받고 싶어하고, 즐거워했는지에 대한 이야깁니다. 오늘날의 책을 둘러싼 많은 고민이라든지 편견 등과 관련한 해찰거리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책들입니다. 예를 들면, 그 당시에도 도서관에는 '책을 읽는 대신 수험 공부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하고요, 연재소설에 대한 구구절절한 팬레터는 오늘날의 웹툰 댓글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글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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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800자

🖍글 속 한 문장

취업준비생 박준형씨(27)는 지식 유튜브의 ‘애독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서, 식사를 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 유튜브를 본다 [...] 박씨는 유튜브 시청도 ‘독서’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시집은 종이책을 읽지만 비문학 분야 책은 핵심을 요약·정리한 유튜브 영상으로 받아들인다.

박씨는 “독서에 내포된 의미는 ‘지식을 익힌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에 지식을 익히는 매체가 파피루스에서 종이로 바뀌었듯이, 현대에는 활자에서 영상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 유튜브도 여러 전문 서적을 참고해 대본을 만들죠. 글에 적절한 소리나 이미지를 추가한 것인데 ‘책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생각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도구로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스피의 블라블라

사람들은 흔히 '유튜브 대신 책을 봐라!'라고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옥스퍼드 책의 역사>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 '여기 묘사된 대중 독자들의 경험 중 상당수가 오히려 오늘날의 종이책 읽기 경험보다도 지식 유튜브를 보는 경험에 가깝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지식 유튜브는 직접 얼굴을 보고, 입말을 통해 쉽게 풀어주며(실시간 댓글 등으로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도 반드시 시각 자료를 포함합니다. 레터 본문의 각주에서도 간단히 말했지만, 19세기 이전 '노동자 대중 독자' 대상의 책 가운데는 이해를 북돋기 위한 삽화가 포함되어있는 것이 굉장히 많았으며, 중세시대 수도사들의 '공부책'에서도 한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각 자료, 도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지식 유튜브도 어떤 종류의 유튜브냐가 중요하죠. 유튜브 vs. 책의 구도로 보기보다는, 유튜브와 책의 장점을 어떻게 잘 결합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치밀한 고민 사이에서 21세기 버전의 '책의 역사'가 쓰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거리의 신문낭독과 즉석사교장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200자

🖍글 속 한 문장

"조선사람에게는 간단한 신문낭독 방법이 있다. 큰길을 향한 문밖에 대여섯 명이 모여 땅에 웅크리고 앉아 볕을 쬐는 가운데 근처의 박식한 사람이 어제의 신문지를 큰 소리로 읽는다. 듣는 사람은 팔꿈치를 구부려서 턱을 괴고 손으로 볼을 떠받친다. 혹은 담뱃대를 물거나 혹은 왕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 눈살을 찌푸린다.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머리를 숙이고, 결코 질문은 하지 않되 묵회(默會: 설명을 듣지 않아도 깨달음)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이 함께 긍지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신문 한장은 그들의 사교기관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20세기 초 한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신문을 읽고 듣는 풍경을 관찰한 글의 일부입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는 '신문종람소'라는 것이 있어서 커피를 사마시며 이곳에 놓여있는 정기간행물, 신문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글자를 읽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고, 설령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맥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처럼 박식한 사람이 신문을 대신 읽어주면 그걸 조용히 들었다고 하죠.

과거에도 이처럼 신문을 '읽는다'기보다는 '듣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내용을 깨치면 즉석에서 맹렬하게 토론이 일어나거나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고도 합니다. 형식 자체는 오늘날의 유튜브, 팟캐스트 시사프로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유일한 차이라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일까요? 근래 제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궁금증이자 고민입니다.

퍼블리, 얼룩소의 끝...돈 되는 텍스트?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000자

🖍글 속 한 문장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퀄리티 관리다. 구독자가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표면적인 지표에만 의존해선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외부 투자를 받는 순간, 회사 임원들은 자기 회사를 엑싯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흔히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 디지털 콘텐츠는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힌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 수십년이 지나도 책은 그 자리에 있고 언제든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연구자님들 가운데서 퍼블리와 얼룩소라는 플랫폼을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텐데요. 아무래도 저의 SNS 피드를 지난 한 주간 가득 메운 것은 퍼블리와 얼룩소의 파산-서비스 종료와 관련된 글들이었습니다.

그간 국내에서도 다양한 계층에 어필하는 콘텐츠 서비스들이 출시되었습니다만, 제대로 수익 구조를 가져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텍스트에서 곧장 수익을 낼 필요가 없는 레거시 언론사들의 서비스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서비스를 이어나가는 편이죠. 혹은 팬덤이 확실한 1인 매체(유튜브 포함)거나요. 그리고 이런 '서비스'들은 단지 고전적인 '종이간행물'이 아닐 뿐, 어쩌면 현재의 '종이책/신문'보다도 오히려 이쪽이 과거의 대중적인 책/간행물에 훨씬 더 가까운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수요는 분명히 있지만 이에 대한 수익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는 건데요. 이 문제 역시 아무래도 제가 관련 업계에 있다보니 오랜 고민입니다.

링크된 글의 내용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해 링크를 공유합니다. 일단 콘텐츠 서비스의 경우 공산품과 달리 '콘텐츠의 질'이 중요하다는 점에선 공감합니다.

최고의 문예 교양 잡지를 만든 ‘핵심’

독서시간: 약 2분 / 글자수: 약 800자

🖍글 속 한 문장

“격주로 발행되는 ‘뉴욕리뷰오브북스’는 문학, 문화, 경제, 과학 등 현안을 두루 다루며 미국 지성계를 대표해왔다. 잡지의 성공에는 초창기부터 함께 한 편집자 두 명의 공이 크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실버스와 작업하면서 나의 글이 두드러지게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며 “이것은 다른 잡지 편집자들과는 하기 힘든 경험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올해 첫 책을 내게 되면서 편집자님과 함께 일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초고를 보낸 뒤 그리 많은 분량이 아님에도 파일을 받아보니 의견 메모가 무려 300개가 넘게 붙어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메모를 보고 쓰러져있다가 결과적으로 그 메모를 거의 다 반영하거나, 혹은 논의 끝에 원본을 남기기로 하거나 했는데요. 한 줄 한 줄을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고에 비해 최종본은 제가 봐도 '명확하게' 더 나은 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인터넷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는 글들 가운데 이렇게까지 엄격한 편집-공동작업을 통해 탄생하는 글들이 얼마나될까요?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책은 이런 응축된 협업과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실은 제가 '책을 읽는 것이 좋다'라고 말할 땐, 대체로 이런 장점이 70% 정도는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간 제가 인터넷에서 봐왔던 텍스트 서비스들 가운데 이 정도로 강도높은 편집을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로 가성비가 문제죠. 이런 '편집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책(김담유, <에디터의 일>)을 추천합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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