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코다의 시선으로 보는 #코다시선 네 번째 글입니다.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코다의 시선으로 보는 #코다시선 네 번째 

2024.1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코다코리아입니다. 

오늘은 코다의 시각과 목소리를 담은 네 번째 코다시선을 보내드립니다. 이번 글은 시스템개발자이자 코다코리아의 회원인 김샛별 님의 이야기입니다.


코다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농인의 자녀이기 때문에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동시에 음성언어를 구사하는 청인이기에 부모의 통역 돌봄을 수행하며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완벽해질 없는 자신을 보며 자책합니다. 글을 읽으며 여전히 되돌이표 같은 -부모-세상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코다시선 읽어보세요. 

완벽하지 않은 시선

- 김샛별 (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자, 코다코리아 회원)

 

완벽(完璧)은 ‘완전한 구슬’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코다는 성장기에 완벽한 보호자의 역할을, 정체성을 확립한 이후에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두 가지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어머니 급식 당번 제도와 녹색 어머니회가 있었다. 급식 당번은 점심시간 배식 도우미이고, 녹색 어머니회는 등하교 도우미로 자녀의 학교생활에 어머니가 함께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되었다. 나는 집에서는 부모님과 내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는 부모님과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보호자 확인이라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나는 보호자에게 서명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받은 유인물을 완벽히 이해하고 부모님께 설명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부모님의 서명을 흉내내 그릴 수 있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점점 부모님과 멀어졌다. 부모님이 농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시선이 중요했던 사춘기 시절에 나는 더더욱 나에게 의지하고 내가 의지해야 할 존재로부터 멀어졌다.


대학 등록금 납부일에는 은행에 전화할 일이 있었다. 빠른 생일로 아직 미성년자였던 나는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 계좌 인증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음성 인증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이름을 소리내서 말해야 해”라고 수어로 이야기하며 종이에 엄마의 이름을 적었다. 엄마는 데프보이스로 본인의 이름을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은행 직원은 미안해하며 인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답답함이 가득한 눈빛과 연신 죄송하다는 음성. 

‘우리 엄마 맞다고요! 등록금 납부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그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속상함이 분노로 바뀌어 눈물이 흘렀다.


어느 날 영화관에서 화장실에 갔을 때 벽에 붙어 있는 〈수어 교실 수강생 모집〉 포스터를 보았다. ‘수어는 할 줄 알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으니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농인의 자녀는 나 혼자였지만, 농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인분들이 나에게 ‘홈사인’ ‘농사회’ ‘코다’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나는 코다구나. 세상에는 나와 같은 코다들이 많구나.’ 이 사실을 성인이 되고 난 후, 집이 아닌 곳에서 알게 되었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늘어나니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바깥세상에 대해서 청인 자녀와 농인 부모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너 진짜 농인 같아!”라고 하는 말이 아빠가 하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몰라!”

부모님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부모님은 청인이면 더 잘 알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지만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 음량과 같은 소리에 대한 궁금증은 청인이기에 쉽게 답하지만 정치⋅사회 이슈나 복지 서비스와 같은 복잡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주제는 답하기 어렵다. ‘모른다’는 말로 회피하면서도, 청사회에서 배제되는 농인과 농사회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코다의 정보 접근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매순간 발견한다. 아무도 나에게 농사회가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라고 요구하지 않지만 나는 점점 더 책임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그저 당연하게 참고 넘어가야 했던 과거의 일들은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어머니 급식 당번 제도는 폐지되었고 이제는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도 있다. 


나아가고 후퇴하기를 반복하는 사회의 모습을 알아갈수록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코다는 더더욱 바람직해야 한다. 혹은 그렇다고 여겨진다. 완전한 구슬 코다 되기. 나는 할 수 없다. 세상이 완벽하지 않은데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코다의 시선은 연습이나 배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시선 덕분에 코다와 농인이 겪는 어려움을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있게 되었고 책임감도 생겨났다. 그러나 코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벽해지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코다의 행동이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너그럽게 바라봐주길 바란다. 코다 또한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니까.

농인을 향한 차별이 존재하는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농인의 청인 자녀이기 때문에 가지는 답답한 마음, 그러나 내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는 없는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하는 마음은 코다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거에요. 그러나 이 모든 걸 농인 부모와 공유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다보다 더 속상하고 힘든 건 농인 부모 자신일테니까요. 그런 경험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바로 코다코리아라면 좋겠습니다.  


다음 코다시선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한데요. 다섯 번째 코다시선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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