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들도 모으면 책이 되지 않을까? 분량을 보니, 설교문 10~15개면 책 한권이 될 듯싶었다.
2024년 4월 첫째 주: 13호
안녕하세요. 정민호입니다.

최근 가까운 지인 한 분이 책을 내셨습니다. 비공개 독립출판물로, 딱 다섯 권만 제작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특정 지인들에게만 ‘대여’ 형식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책과는 성격이 다른데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거나 수익을 창출할 목적으로 내는 책이 아니니까요. 이 책의 제작 배경에는 저자 본인이 지금까지 써온 글을 하나로 엮고 싶은 마음, 또 그것을 자신과 가까운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아직 인쇄되지 않은 이 책의 원고를 미리 열람할 기회를 얻었어요. 책 출간을 기념하는 작은 파티에서 전시할 감상평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덕분에 지인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글들을 읽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혼자만 보기에는 아쉬울 정도였죠.

책의 본질과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온전히 그려낸 책 한 권이 탄생하는 걸 보니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어요. (나도 저렇게 글을 잘 쓰고 싶다….) 모든 사람이 이런 책을 한 권씩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런 책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서사의 서사〉와 〈복음과상황〉 기고를 늘 기다립니다.

오늘도 두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책의 쓸모에 대한 정다운 번역가님의 글입니다. 〈서사의 서사〉 메일을 열어보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두 번째는 서점에서 근무하는 장진경 님의 글입니다. 서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책의 쓸모
정다운

  
책을 읽다 보면 (아마도)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 그러니까 책의 효용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책의 효용이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 쉬 일어난다. 요리책이나 운동법, 건강법, 주식 투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다가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리책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건강법에 관한 책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보려고, 주식 투자에 관한 책은 더 나은 경제적인 상황을 위해서 읽는다는 것이 자명하니까. 그런데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를,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를,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을, 그러니까 도무지 효용을 잘 알 수 없는 책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순수한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때로는 약간의 비난까지 담아 묻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고전은 왜 읽어야 하나요?’ ‘책을 읽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던데 정말 그런가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독가래요. 책을 읽는 게 성공에 도움이 되는 거겠죠?’ 같은 질문들도 실은 이 ‘책의 효용’을 묻는 말들의 자매품 같은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아무 소용도 없는, 도무지 쓸모라고는 없는 일에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고, 그런 일을 하도록 자녀를 이끌고 싶은 부모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효용’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책을 읽는 양과 아이의 성적을 통계로 내면 어떤 상관관계가 발견될지는 모르지만(어딘가에 그 비슷한 연구가 있을 것도 같지만),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성적과 무관하게 책을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는 꽤 많이 알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사회적 성공 사이의 관계는 아마 더 모호할 것이다. 성공한 CEO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한 CEO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언젠가 사회생활은 할 수 없는, 정신병원에서 10년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독가를 만나기도 했다.) 혹자는 미국의 1960년대를 아는 데 《미국의 목가》가 아주 좋은 자료라고, 그런 면에서 효용이 있다고 설명할 테지만, 글쎄. 미국의 1960년대를 알게 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수단이 정말 《미국의 목가》를 읽는 것일까? 책의 효용에 대한 그 모든 정성스러운 설명들이 다 헛소리라는 말이 아니다. 개중에 꽤 타당한 설명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책의 ‘효용’이 그런 뜻이라면, 그러니까 무언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실용’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라면, 안타깝지만 책에 꼭 그런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그런 효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 언제나 누구나 그런 ‘효용’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다가 유명한 작가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눈 밝은 독자로 남는 사람도, 평범한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책의 효용이란, 효과란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다.

기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은가?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것, 이를테면 세탁기와 청소기, 식기세척기 같은 것들의 효용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우리를 가슴 뛰게 하는 아름다움, 이를테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번 〈카바티나〉 악장이 우리 존재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가장 선하고 참되며 아름답고 지혜로운 것들을 이해하기에 ‘효용’을 묻는 말은 너무 작다. 그리고 내가 믿기로는 책의 효용 역시 그렇다. 인류가 이토록 오래 무언가를 ‘기록’해온 것, 적게 잡아도 수천 년은 족히 되는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전해온 것을, 그 경이로운 모든 기록이 ‘효용’을 묻는 말에 담기기에는 책이, 그리고 책이 인류와 만나며 만들어온 발자취가, 너무 크고 너무 다채롭고 너무 유구하다. 그 효용을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설명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불가능함’에 책의 아름다움이 있다.

정다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번역을 한다.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에 관심이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십자가》 《신학자의 기도》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오라, 주님의 식탁으로》 등을 옮겼다. 팟캐스트 〈슬기로운 독서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복음과상황〉에 ‘질문의 시간: ‘사이’에서 묻다’를 연재하고 있다.


서점에서 일하다 만난 사람들
장진경

  
서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문에 소개된 신간 도서 중 흥미로운 책이 나온 부분을 오려서 가져오는 분, 유튜브나 지인에게 추천받은 책 이름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서 찾아달라고 내미는 분, 제목이나 작가명은 모르고 표지 색깔이나 느낌을 표현하며 찾을 수 있겠냐고 묻는 분, 잘못 기억하는 제목으로 책을 찾아달라고 우기는 분. 예를 들면 “‘문과 학생의 과학 공부’ 있어요?”(원래 제목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돌베개)다.) 그럴 때 찰떡같이 찾아주거나 주문해주는 동료들과 나. 온라인 서점이 아주 잘 구축되어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서면으로 책을 찾아달라거나 주문해달라고 요청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서점에서 일을 잘하려면 손님이 말한 제목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필요하다.

쪽지를 들고 오는 손님 중엔 단골손님도 있다. 하루건너 하루꼴로 방문하는 한 손님은 대부분의 날에 술 냄새를 달고 온다. 전에 구매한 도서를 또 손에 들고 계산대로 오시면, 이미 구매하신 도서라고 말해드린다. 그러면 손님은 “어이쿠야” 하며 다른 책을 들고 온다. 보통 평대에 깔린 신간에서 한두 권, 적어온 쪽지에서 한두 권 사 가시는데, 그러다 보니 적립금이 자주 모인다. 적립금을 사용하는 날에는 꼭 나가서 커피를 사서 돌아와서 마시라며 건네고 돌아선다. 이 손님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에는 차가운 사람이었다가 술 냄새를 달고 오는 날에는 살가운 사람이 된다.

평균 2주에 한 번 정도 쪽지를 들고 찾아오는 할아버지 손님도 있다. 올 때마다 빵을 사 오시는데, 다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큰 빵이다. 자꾸만 사 오시는 게 혹시나 부담될까, 한 동료는 할아버지께 “자꾸 빵 사 오시면, 책 안 팔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쪽지와 빵을 들고 방문하신다.

쪽지를 들고 오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방문하는 조용한 손님들도 있다. 조용한 모습 속에 예의가 있는 분들이다. 안부를 묻지 않지만, 손님들의 특이 사항을 기억하고 있다가 챙겨드린다. 전에 물어봤던 도서가 매장에 없으면 조용히 입고해두고, 계산할 때 책 아래에 도장을 찍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손님에게는 찍지 않고 책을 건네며, 영수증을 꼭 챙겨가시던 분에겐 묻지 않고 챙겨드린다.

물론 고약한 사람도 있다. 빼곡히 적어온 쪽지 속 책들이 출간된 지 오래된 도서들이면 대부분 반품이 되는데, 재고가 없다고 말씀드리면 대형서점과 비교하며 훈수 두는 사람. 구매할 책이 아닌데 책이 벌어지도록 잡고 읽는 사람. 책 내부를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람. 책을 구경하며 오랫동안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 등….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항상 끝은 우리 할아버지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 지하에서 20년 넘게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할아버지 서점에 왔던 단골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전경련 빌딩이 재건축되던 시점에 서점을 정리하고 나오실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셨는데, 어떤 마음으로 운영하셨는지도 궁금하다. 이제는 질문할 수 없는 곳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아마도 나랑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다. 거창한 포부 없이 서점에 있는 하루가 좋은 마음. 타인과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각자의 세계로 들어가있는 상황이 좋고, 책을 찾아달라며 찾아온 손님도 좋다. 책을 사랑하는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도 자랑스럽고, 매일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것도, 만져보는 것도 신난다. 우리 할아버지도 이런 마음으로 서점을 하셨을까?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처럼, 아니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서점에서 일하며 자주 하는 생각이다.

장진경
신촌역 3번 출구 앞, 이제는 문구 매장이 입점하여 ‘문고’가 아니라 ‘문구’로 보이는 홍익문고에서 일하고 있다. 무색무취도 특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곡차곡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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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동석 | 일러스트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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