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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이란과 위스키잔

“그동안 다녀온 곳들 중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여행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곤 한다. 앞서 출장은 여행과 결코 동일시할 수 없다는 장황설을 펼쳤지만, 여행 잡지에 몸담은 덕분에 남들이 쉽게 떠나기 힘든 곳들을 다녀온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어쨌든 그런 질문과 마주할 때면 잠시 지나간 여행을 떠올린다. 중국 최고의 명주 마오타이가 탄생한 구이저우부터 아와모리 소주와 럼주를 탐방했던 오키나와,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신을 이끄는 캘리포니아 북부, 아이스와인의 주산지인 캐나다 온타리오, 테킬라의 본류인 메스칼의 신세계를 깨우쳤던 멕시코시티, 바이젠 맥주를 쉼 없이 들이켰던 독일 바이에른, 싱글몰트 위스키에 눈 뜨게 해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까지. 잠깐, 내가 주류 잡지 에디터였던가……?


그렇다. 그간 출장이든 휴가든 어딘가로 떠날 때면 가급적 그 동네의 술 문화를 염탐해 왔다. 사실 술은 가장 로컬에 가까운 소재이기도 하다. 현지인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식문화이면서 외지인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주고, 무엇보다 그 지역이 쌓아온 고유의 역사가 담긴 산물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취재를 빙자해 나는 이국의 술을 짬짬이 탐닉했고, 동네 바를 전전하며 현지인이 주로 마시는 주종을 따라 마셨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취재와 일말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 나에게 강력한 도전을 안겨준 여행지가 있다면 단연 이란이다. 종파와 관계 없이 이슬람 국가는 기본적으로 금주국이지만,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 같은 몇몇 나라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음주를 허용한다. 반면 이란은 외국인도 예외 없이 금주를 실시하는 엄격한 금주국이다. 사전에 이런 사실을 알고 떠났지만, 정말 그렇게 빈틈없는 줄은 몰랐다. 간혹 한인식당에서 남몰래 한국 소주를 마시거나 운 좋게 밀주를 만드는 현지인의 가정집에 초대 받는 비공식 루트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구미에 당기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취재와 일말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국의 음주 문화를 살폈을 뿐, 단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셔댄 건 아니라고 밝히고 싶다.


그렇게 음주 취재를 단념한 채 이란에서 일주일을 체류했다. 초반에는 식당에서 판매하는 무알코올 맥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이란의 무알코올 맥주 문화라도 알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 식후마다 나오는 페르시아 홍차의 매력에 빠졌다. 홀쭉한 유리잔에 따라 나오는 페르시아 홍차는 각설탕을 입에 머금고 마시는 것이 일종의 전통. 허브와 각종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텁텁한 이란 음식을 먹은 후 입가심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식후마다 홍차를 음미하다 보니 술을 향한 어떤 갈증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나는 평소 여행을 떠날 때면 그 지역의 술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술잔을 짝지어 수집하곤 한다. 가령 오키나와에서 아와모리 소주와 함께 유리 공예 술잔을, 바르셀로나에서 카바와 함께 가우디 문양 술잔을, 보스턴에서 사무엘 아담스 시즌 한정 맥주와 함께 샘플러용 잔을 매칭하는 식으로. 이란에서는 당연히 술은커녕 술잔 수집은 잠시 중단해야 했다. 그러다 뜻밖의 기회와 마주쳤다. 이란 출장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게 된 테헤란의 한 레스토랑에선 조금 독특한 잔에 홍차를 내왔다. 튤립 모양의 찻잔 바닥에 이슬람 성직자의 근엄한 얼굴이 새겨진 잔. 홍차를 홀짝이면서 그의 얼굴을 거듭 응시하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이 신묘한 찻잔을 하나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혹시 몰라 레스토랑 직원에게 찻잔을 하나 팔 수 없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돌이켜 보면 다소 무모한 요청이었다. 서울의 한 백반집을 찾은 외국인이 사기 물컵을 하나 사고 싶다고 물어본 거나 다름없으니.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었는데, 친절하게도 그 직원은 선물로 찻잔을 하나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근엄한 성직자의 얼굴이 새겨진 찻잔은 테헤란에서 머나먼 서울로 건너왔다.

한동안 그 녀석은 나의 숱한 여행 수집품들의 운명처럼 장식장 한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서 위스키를 한잔 마시려는데 이란 찻잔이 떠올랐다. 보통 바에서 싱글몰트 위스키잔 용도로 사용하는 글렌캐런은 꽃봉오리처럼 볼록한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 오랜 시간 위스키의 향을 가두는 이점이 있다. 집에서는 그냥 작은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라 마시는데, 이란 찻잔이 글렌캐런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곤 그 잔에 위스키를 조심스레 따랐다. 근엄한 성직자와 잠시 눈인사를 나누고 한 모금 홀짝 마시는데, 그립감도 딱 좋고 위스키의 향을 즐기기에도 완벽했다.


그 후로 집에서 위스키를 마실 때면 용도 변경되어 버린 이란 찻잔을 애용했다. 조금 기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쩐지 이란 가정집에서 남몰래 밀주를 마시는 기분 같았다. 무엇보다 확실한 이점이 있었다. 근엄한 표정의 성직자가 잔뜩 노려 보고 있으니 절주를 하게 된 것. 한 잔 더 마셔볼까 싶으면 왠지 태형을 받을 것 같으니 위스키 병의 코르크를 닫게 된 달까.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 작가의 생각, 기획자의 마음 |  최갑수

꿈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뢰받은 일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원고 청탁’이 들어온 원고를 쓰고, ‘취재 요청’을 받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나의 주된 일이었다. 불과 몇 년까지 그랬다. 지금은 의뢰받은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 내 전체 일 중에 약 10퍼센트 내외다. 요즘의 나는 내가 기획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일을 하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두 배는 늘었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만큼 힘들고 괴로운 일은 없다. 내가 예술가를 존경하는 이유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만의 새로움을 개척해 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는 분명 존경받아 마땅한 대단한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의뢰받은 일을 하는 것은 ‘업무’일 수도 있는데, 업무를 잘한다는 것은 주어진 일을 하고 거기에 따른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주어진 일을 잘한다는 것,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힘들고 보람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여기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의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나는 마흔 여섯에 직장생활을 마쳤다. 의뢰받은 원고를 쓰고 여행을 떠나는 ‘업무로서의’ 여행작가 생활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 세 가지를 약속했다. 의뢰받은 일은 최대 10퍼센트만 할 것. 내 시간을 늘여, 내 일을 기획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내 일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것.


자신만의 뭔가를 시작하고 싶다면, 도전해 보기 바란다. 아주 작은 일부터 해보는 거다. 물론 그만큼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고통을 뛰어넘는 상당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업무를 잘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는 또 다른 만족감과 희열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꿈이 가득했으면 한다. 흔한 말이지만 늦은 나이는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모조리'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보낸 헛된 시간은 없는 것이다. ✉️

최갑수는 작가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Words |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이 씨가 된다고 하죠. 수많은 이론이 말합니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된다.' 생각을 - 말로 나타내고 - 그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것이겠죠. 기적이 나타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생각하고 의식하고 행동하기. 그리고 그것의 반복.

- alone &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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