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서른다섯 번째 흄세레터
동생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똑같이 생겼다는 말은 더 자주 듣고요. 아무리 자매라지만 쌍둥이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닮을 일인가 싶습니다. 닮았다는 말은 하도 들어서 '그런가?'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여전히 새삼스럽고 신기한 게 있습니다. 성격과 취향,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이건 마치 먹어보기 전까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꿀 송편과 콩 송편 같달까요.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때면, 우리가 자매가 아니라 친구였으면 진즉 멀어졌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툭 내뱉지만 말에는 진심이 가득해요. 가족이란 뭘까요?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뭐길래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여전히 함께하는 걸까요?
《밸런트레이 귀공자》의 주인공인 두 형제, '제임스 듀리'와 '헨리 듀리'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행보도,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평가도, 가족 안에서의 위치도 전혀 다르죠. 그런 두 사람이 공유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너만 아니었으면!' 두 사람은 어쩌다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게 됐을까요? 증오와 원망이라는 접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김이설 소설가가 《밸런트레이 귀공자》를 읽고 쓴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내 형제의 피를 바라는 이유

나의 일만 아니라면 세상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싸움 이야기다. 치정과 질투로 인한 연인들의 싸움, 시기와 복수로 불꽃 튀는 자매, 형제 간의 싸움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 좋은 소재인 까닭이다.


여기 듀리스디어 가문 형제들의 증오와 복수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듀리스디어 가문 형제들—제임스와 헨리, 이 형제는 무슨 이유로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게 되었을까. 도대체 피붙이의 죽음을 바라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증오와 공포는 해로운 동무다.”


무엇이 증오와 공포를 만들까. 결국은 생명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나의 생명과 명예, 내가 지켜온 가족의 생명과 의미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내 가족(형제)일지라도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내 가족을 해쳐야 하는 부조리를 읽는 것. 그 과정은 우리의 인생을 엿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생과 사를 넘나들며 겪게 되는 인생관의 변화, 오해에서 비롯된 증오, 삶을 영위하기 위한 본능과 그를 인정하지 않는 모욕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말이다. 그것이 복수의 형태로 나타날 때의 지독한 슬픔은 인간이 얼마나 헛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과 동생이 같은 길을 가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건 숙명이었을 것이다. 소설에 드러난 표면적 이유—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배경, 가문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 형제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천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품, 바탕,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다르게, 다른 길로 가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다른 길로 간 형제인데, 왜 종국에는 같은 길에서 만났을까. 이 둘은 왜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형제라는 운명 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의 부제가 ‘겨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황량하고 차가운 계절, 슬픔과 눈물에 익숙한 계절, 미욱하고 서글픈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성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인공, 듀리스디어 가문의 두 형제의 운명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짧지 않은 이 소설이 수월히 읽혔다는 건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독자마다 각기 다른 곳에서 기인할 것이다. 스토리의 재미일 수도 있고, 인물의 심리묘사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혹은 소설의 장르적 특성이나 분위기도 그 재미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국내 처음 번역된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듀리스디어 가문 형제의 갈등이 주가 되는 이야기지만, 일종의 방대한 모험담이자 스펙터클한 여행기로 읽히기도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주인공들은 스코틀랜드의 자코바이트 봉기에서 전투를 하고, 어느새 해적선에 붙잡혀 해적이 되기도 하며, 보물을 훔쳐 달아나기도 한다. 황무지에서 탈출을 하고, 덤불숲에서 칼싸움을 하며, 뉴욕으로 가는 배 안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황량한 삼림지대에서는 인디언에게 쫓긴다. 그 흥미진진한 여정을 따라가는 즐거움도 이 소설의 충분한 매력이 될 것이다.


그러니 ‘스코틀랜드, 미국, 인도를 오가는 형제 복수극’이라는 한 줄 요약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란 얼마나 초라한지. 부디 독자분들은 이 풍성한 소설을 읽고 더 멋진 표현으로 이 소설을 말해주길 바란다. 결코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소설의 매력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이설 |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잃어버린 이름에게》, 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등이 있다. 황순원신진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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