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11월을 맞이했나요? 한 해의 끝이 서서히 보이는 계절이에요. 열심히 달려온 자신을 격려해도 좋고, 연초에 세운 목표를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도 좋겠어요.

이런 때일수록 가장 가까운 이들을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가족, 친구, 묵묵히 나를 마중 나오는 반려동물까지요. 여태 저에게 가장 큰 사랑을 알려준 존재는 몇 해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제 강아지인데요. 그 작은 친구가 떠나고 다짐했습니다. 발 맞춰 산책하는 존재에게 소홀하지 않겠다고요.

오늘 레터에서는 전진우 작가와 반려견 ‘완두’의 일상을 그린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자유로이 산책하는 완두를 보며 작가가 느낀 선물 같은 기분을 글 속에서 함께 음미해보기를 권해요.

끈을 풀어주고 산책할 수 있는 산 입구에 도착하면 완두는 발사되듯 뛰어나간다. 그래야만 했다는 듯이 우선 내게서 멀어지고, 몇 초 후에 나를 찾는다. 다시 묶이면 안 되니까 거리를 두면서 산에 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끽한다. 다른 동물들 냄새를 쫓고 얼굴에 풀을 스치며 파고든다. 땅에 등을 비벼서 가려운 곳을 긁고 묻히고 싶은 냄새가 있으면 몸에도 묻힌다. 요즘 같이 더워진 날씨에는 걱정될 정도로 혀를 빼놓고 다니는데 그마저도 산을 껴안는 방법이라는 듯 계속해서 모든 것을 반복한다. 나는 적당히 깊은 숲까지 가서 어제 저녁부터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물을 작은 그릇에 부어 놓고 기다린다. 잡으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것이 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10-20분 정도가 지나면 완두는 물을 마시러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걸 줄 수 있을까?’ 나는 자주 생각한다. 개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때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떠올리는 걸 보면 인간관계에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 연인들, 나와 시절인연을 보내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받기보다는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게 한 가지라면 나는 완두가 내게 주는 어떤 기분을 선물하고 싶다. 갑자기 등장해서 평생을 선물 받게 하는, 그런 경험까지는 애초에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평생 밥을 제공하는 경험을 선물할게.’라고 말하는 것도 지금 하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떠오르는 걸 적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가끔 물 수도 있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않기, 반갑게 인사하기, 나 말고 다른 누구와 함께 있든 결국 이해해 주기, 이상한 행동을 해도 옆에 있어주기, 외모나 마음의 변화가 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기 등등. 모든 걸 완두만큼은 잘할 수 없겠지만, 그걸 모두 선물 받은 사람으로 참 행복했기에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순간적이었지만, 골똘히 몇 가지 적어본 것들 중에서 어쩐지 나를 가장 떨리게 하는 선물은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기’다. 산에서 보는 완두 모습에는 묘한 감동이 있다. 풀어 놓기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여름 밤바다에서 갑자기 터지는 폭죽놀이를 바라보는 기분이 된다.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멍하니 보고 있게 되고, 한 번 더 터지길 기다리는 마음. 어떤 존재가 그렇게까지 몸과 마음의 요동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사실 살면서 보기 드문 일인데, 완두와 살면서는 자주 구경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한 번 더, 한 번 더,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여준 적 있을까? 한 번이라도 더, 꾸밈없이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듬직한 어른으로 옆에 있어주는 모습도 좋고, 돈 잘 쓰는 사람, 잔소리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되려 내가 받고 싶은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역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다.

©〈베일리 어게인〉

Movie | 〈베일리 어게인〉(2017)


너무 무겁지 않은, 따뜻한 작품이 끌리는 날에는 이 영화 어때요? 〈베일리 어게인〉은 반려견 ‘베일리’가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거듭하며, 같은 사람 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따라가요. 거창한 사건 대신 공을 쫓아 달리고,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고, 말없이 주인 곁에 누워 있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죠. 베일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는 것, 그거면 충분해요.

국립극장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 X AROUND event

어라운드가 국립극장과 함께 정기구독자분들을 위한 티켓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장애 음악극으로, 시대와 사람 사이 존재하는 차별을 비춥니다. 언어장애를 가진 소년을 지켜보는 인물들과 개의 시선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죠.
올겨울,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이벤트 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티켓은 정기구독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체면 차릴 일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저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너는 표정을 못 숨겨”예요. 싫은 표정은 조금 숨기더라도, 좋아하는 표정은 더 기쁘게 드러내야겠어요. 그게 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될 테니까요. 님도 행복을 덜 숨기는 가을 보내시길 바라며, 다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만나요!

📮 FROM READERS
독자분들로부터 도착한 답장을 나눕니다

머릿말부터 에세이까지 너무 좋았어요. 언젠가부터 사소한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햇살이 살짝 비치는 나뭇잎, 내리쬐는 태양과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바람, 청명한 하늘,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 같은 것들이요. 목적없이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를 들어가는 일은 해외 아니면 해본 적이 없었고 늘 지도만을 켜고 살았는데, 이번 주말은 마음을 좀 달리해보는 시간도 가져야겠습니다. 때론 계획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인생도 멋진 찰나를 가져다주니까요. 살다보면 대부분은 계획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데, 그걸 잠시 잊고 산 것 같습니다. 이번 가을은 사소한 것들에 몸을 맡겨보는 하루를 보내야겠어요. 감사해요. 글을 쓰신 에디터님도, 모든 분들도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는 여유가 불현듯 찾아오길 바랍니다. — lia 님
⤷ 멋진 주말을 보내셨으려나요! 오늘 lia 님이 발견한 사소한 순간은 무엇일지 궁금해져요. 바삐 살다 보면 계속해서 종착지를 요구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죠. 목적 없는 산책처럼 느긋한 한 주가 되시길 바라요.

마케터스 홀리데이 보면서 절로 나른해지는 기분이었어요. 팀원들의 취향 소개도 너무 재미납니다! — 태이 님
⤷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태이 님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다음 답장에서 알려주실 거죠?

에디터님들의 첫 도입부의 인사말을 항상 좋아합니다. 업무와 개인, 여러 메일을 가볍게 넘기다가도 around 팀의 메일은 항상 클릭을 하고 잠깐 멈추고 차분히 읽게 만들어줍니다. 에디터님들의 글이 좋기도 하고, 어라운드 팀 감성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항상 좋아합니다. — 정열 님
⤷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이 시간만큼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랍니다. 앞으로도 저희 레터가 정열 님의 메일함 속 작은 보물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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