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송 6월 소식지

1. 6월 광산아카데미 강연 개최

 6.15(목) 광산아카데미의 5강이 개최되었다. 이번 강연은 《 왜 남도인이며, 남도 문화인가》라는 주제로 남도역사연구원 노성태 원장의 차례였다. 노 원장은 남도(광주·전남) 땅의 선배들이 축적한 삶은 시대정신을 올곧게 실천한 삶, 즉 정의로움이었고, 한편으로 남도는 우리 문화원형의 보물 창고임을 역설하였다. 이것이 남도인의 정체성이자 자긍심이며, 새 문화창조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노 원장의 차분하면서도 유려한 화법은 300여명의 청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지역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함으로써 청중들은 남도 문화의 특질을 명료하게 알게 되었고 남도인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서 어느 전국적인 저명인사의 강연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7월의 광산아카데미는 7.20.(목)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국가무형문화재인 윤 진철 명창의 《윤진철의 판소리를 통해 살펴본 우리문화》라는 주제로 강연이 개최될 예정이다.

2. 남도역사기행, 완도 

6.3(토) 남도역사기행 완도편이 진행되었다. 40명의 신청자들이 한명의 지각자도 없이 정확하게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버스는 정시에 출발하였다.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첫 번 째 답사 장소는 장도, 동아시아 바다에서 전설이 된 장보고 장군의 청해진 전진 기지였던 작은 섬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신지항일운동 기념탑을 둘러보고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명사십리 바닷가를 삼삼오오 거닐며 느긋하게 6월의 바다를 즐겼다.

점심 식사 후 비운의 명필 원교 이광사 유배지를 찾았다. 신지중학교 주변 담벼락에 붙여진 이광사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언덕 위 이광사의 귀양살이 가옥에 도착하였다. 무려 26년이라는 한 많은 유배살이에서 오히려 그의 글씨 동국진체가 완성되었다는 해설자의 설명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선의 당쟁은 어찌 그리 모질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언제나 우리를 뭉클하게 만드는 영웅 이신순 장군, 그분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이순신 기념관을 돌아보고 답사를 마쳤다.


3. 노성태 이사 『 다시, 남도의 기억을 걷다』 출간

 광산아카데미에서 6월 강연자로 나서 큰 호응을 받은 남도역사연구원의 노성태 원장이 새로운 책을 출간하였다. 노 원장은 동고송의 남도역사기행의 해설자이며 동고송의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남도의 기억을 걷다』를 발간한 뒤 많은 수정 보완을 거쳐 이번에 더욱 깊이 있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4. 동양고전반 [소동파반]과 [노자반]의 1학기 종강식

 동양고전반 “소동파를 만나다” 강좌 1학기 수료식이 6월 22일에 있었다. 1학기 종강을 겸한 수료식에 동고송 유용상 이사장이 참석해 수료증을 수여하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이날은 모처럼 동고송 수업실을 벗어나 산수동 신락원에서 소동파가 창안한 동파육을 시식하며 「적벽부赤壁賦」를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동양고전반 “노자의 역설” 강좌도 6월 29일 1학기 종강식을 가졌다. 이날은 노자 도덕경을 공부하면서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지상동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화기애애한 담소가 오가는 종강식을 갖고 한 학기를 소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동파반]과 [노자반]은 7월 둘째 주부터 두암동 동고송 사무실에서 2학기 수업을 다시 시작한다.

《 6월 황광우의 산책》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석천 선생이 1930년 1월 5일 일본 관헌에게 진술한 신문조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배후 조직이 조선공산당이었음을 증거한다. 나아가 1929년 5월 장재성 선생이 유학 도중 서둘러 귀국하게 된 배경을 드러내 준다. 보자.

 

 

소화 4년(1929년) 4월 2일경 경성에서 청년총동맹 위원 간담회가 개최되었을 때, 차재정과 회합을 하였다. 차재정은 “공산당이 검거되었으므로 그 뒤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전라남도를 맡아 달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전라남도 책임자로 되어 재조직의 임무를 맡을 것을 쾌락하였다. 나는 5월 10일경 광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5월 20일경에 광주청년회관 안에서 장재성을 만나서 이야기해서 가입시켰다. 장재성더러 각 학교에 세포를 조직하고, 학생부의 책임을 지고 조직할 것을 말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전파한 조직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공산당’이었다. 위 신문조서에 의하면 1929년 4월 조선공산당 재건 책임자는 차재정이었고, 장석천은 조선공산당 재건의 전남도책임자였다. 돌아와 장석천은 나승규를 비롯한 주요 활동가들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전남조직으로 묶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공부에 열중하던 후배 장재성을 광주로 불러들였다. 장석천은 조선공산당 전남도 재건위의 학생부를 조직하는 임무를 장재성에게 맡겼다.

7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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