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3. 노가리클럽 하지 에디션 : 하지엔 감자를 먹어야 하지

하지 夏至

24절기 중 열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떠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하지가 지난 후로는 기온이 상승해 몹시 더워집니다.

예로부터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로 전해져 왔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감자 싹이 죽기 때문에 감자 환갑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죠. 씨앗의 결실을 처음으로 거두는 때라는 측면에서 보면 진정한 수확의 계절은 여름이 아닐까 합니다. 중에서도 땅속 깊이 자라난 감자는 여름 수확의 하이라이트죠. 이번 노가리클럽은 하지를 맞아 제철 감자를 다룬 콘텐츠를 캐봤습니다. 슬은 야생과 저택을 나눠 펼쳐지는 지독한 두뇌게임 예능 <피의 게임2>를, 호는 서울 한복판에서 감자를 키우는 파밍 크루 '감자칲스'를, 윻은 책이라는 등대로 절망의 바다를 건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를 영업합니다. 하지 감자만큼이나 속이 꽉 찬 콘텐츠들로 준비한 이번 노가리 클럽, 영업 시작합니다. 

마지막 화에선 눈을 감자 

예능 <피의 게임2> by. 슬


‘사냥할 것인가? 사냥 당할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의 슬로건답게 <피의 게임2>의 설계는 상당히 지독합니다. 두뇌 게임을 하러 온 플레이어들을 야생과 저택 둘로 나눠, 야생팀에게 저택을 습격하라는 미션을 주는 것은 예사고요. 매 게임마다 1등을 한 플레이어가 한 명을 지목해 야생으로 방출하도록 하는 룰을 만들었습니다. 야생으로 떠밀려온 이들은 텐트도, 물도 없이 벌레가 우글우글한 야외 공터에서 밤을 보내야 합니다.


이때, 감자가 등장합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물로 제공되는 것인데요. 힘겹게 피운 불에 감자를 구워 먹은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약속이라도 한듯 진실의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며, ‘감자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왜, <마션>에서도 맷 데이먼이 하필 감자를 기르잖아요? 찾아보니 감자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같은 양의 물을 주었을 때 밀의 2.4배, 쌀의 2.8배의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하네요. 즉, 생존력과 효율이 뛰어나다는 거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하는 결정도 딱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이 선택으로 내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선택일까? 일상에서 우리를 움직였던 도리나 배려같은 것들은 거세되고 오로지 우승만을 향해 달려가는 플레이어들의 정치와 야합, 배신은 신물날 만큼 싫은데도 결국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짜증나지만 저게 인간이지, 싶어서요.


하지만 두뇌 서바이벌의 진짜 백미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던 게임 장면 위로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누군가의 눈빛이 싹 변하는 순간 아니겠어요? <피의 게임2>에선 13화까지 그런 순간들이 흥미진진하게 배치되어 있는데요. (홍진호 이 남자는 다 해줍니다.) 이실직고하자면, 서바이벌에서 가장 중요한 파이널 라운드에서 힘이 훅 빠져버리기 때문에 마지막 화인 14화는 버리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화를 빼고 추천하는 신개념 추천에 놀라셨나요? 저도 1년 넘게 노가리 클럽에서 영업을 하며 이런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했는데요. 이건 다 13화까지 몰입하게 만들어놓고 마지막 화를 말아먹은 <피의 게임2> 제작진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야생에 방출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실제로 일어날 수 있으니 각오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화에서 눈을 감더라도 13화까진 꼭 봐주세요. 그리고 저와 함께 절규해주세요😇

 

*<피의 게임2>는 웨이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감자칲스 인스타그램 (@teamcobb.co) 

서울 한복판에서 외치다, 감자칲스!

감자를 키우는 파밍크루 '감자칲스' by. 호


을지로 어느 건물 옥상에 감자밭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오로지 감자를 키우기 위해 모인 9명의 직장인이 만든 공간인데요. 이들은 치과의사, 마케터, 술집 사장, 대학원생 등 직업도 다양합니다. 크루의 이름은 감자칲스’. 딱 봐도 흥미로운 이름처럼 이들은 감자를 키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에 올리고, 태교 음악인냥 감자의 성장을 돕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유쾌한 크루는 물도 허투루 주지 않아요. 매달 주주총회라는 모임을 열어 물 당번을 정하고 돌아가며 물을 주죠.  


식량 문제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내 먹거리를 직접 키워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어요.”

 

농사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들을 결속한 건 내 먹거리를 직접 책임지겠다는 태도였어요.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경험하며 쌓은 지혜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였죠. 감자를 키우기 전, 이들은 서로 약속 하나를 했어요.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말 것! 우리가 작물을 키우는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고 열심히 일궈내는 데만 집중하기로요.

 

그 결과 1알의 씨감자를 10알의 감자로 키워냈습니다. 애지중지 키워낸 노력에 초심자의 행운이 합해진 결과였죠. 수확한 감자는 농사의 성공을 자축하고, 다음 작물의 재배를 준비하는 파티 음식으로 쓰였다고 해요. 감자를 수확한 손맛은 이들의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갈증을 느꼈던 회사 생활에 단비가 내리듯, 환기가 되어 주었죠. 이 경험을 알리는 강연을 진행하고, 농사 일지를 연재하고, 농식품으로 저장 식품을 만들면서 본인 영역의 잔뿌리를 넓혀갔어요.

 

내 먹거리는 내가 책임진다.’ 이 유쾌하고도 당돌한 행위로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자신들의 꿈마저도 쑥쑥 키우게 된 것이죠.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나도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어져요. 내 손으로 수확하는 찐한 손맛을 느끼고 싶어지죠. 여러분은 무엇을 수확하고 계신가요?


* 파밍크루 '감자칲스'의 활동은 이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절망의 바다에서 발견한 감자껍질파이 모양의 등대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by. 윻


그런 기분 느껴보신 적 있나요?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 뚜껑을 계속 헛돌리고 있는 기분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기분은 꺼내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는 무언가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줄리엣(릴리 제임스 분)도 그랬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낸 책이 대박나 어엿한 '인기 작가'로 등극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고, 외모부터 재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애인은 줄리엣과 함께할 날만을 그리고 있었죠. 분명히 즐겁고 행복해야 맞는데 줄리엣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고, 줄리엣은 망망대해 같던 일상에 등대를 발견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상호 예절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근간이 되는 것이다.
허나 그것이 깨지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고 무시가 왕이 된다."

영화 초반 북클럽 멤버 중 한 명이 제인 오스틴의 책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는 장면이 있는데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독일군 감시자를 향해 읊으며 그 상황을 유머로 승화시키던 모습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희망을 찾을 수 없던 암흑의 시기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다움'을 유지하고자 했던 북클럽 사람들의 면모와 함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죠.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제목에 등장하는 '건지'는 영국해협에 위치한 채널제도의 섬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하게 독일에 점령되었던 영국의 영토입니다.《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이 시기를 버텨낸 건지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그린 소설입니다.

이런 정보 없이 1. 대체 어쩌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지, 2. 릴리 제임스의 얼굴에 반해 라는 다소 가벼운 이유로 이 영화를 시작했었는데요. 시대극 로맨스물 정도로만 알았던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연애세포보다 인류애를 가득 채워줬습니다.

하지라 감자 관련 콘텐츠를 들고 온 단순함은 살짝 눈감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도쿄 오징어 클럽'과 '노가리 클럽' 만큼이나 급조한 이름으로 멋진 일을 해 낸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 함께 비오는 하지를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절기 레터] 올해의 열두 번째 마디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사이렌>을 재밌게 봤습니다. 스턴트 팀이 동맹팀을 부르며 감자를 외치던 장면은 정말 강렬했어요. 살려달라는 외침이 ‘감자’라는 두 글자로 대변되는 것 같았죠. 이름부터 '구황작물'인 감자는 '생존'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선 매번 감자가 식재료로 등장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하지 아침은 감자를 먹어야겠어요. 이 익숙하고도 평범한 맛 덕에 오늘도 든든하게 생존해낼 수 있도록요.

                                                         From.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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