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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6
 
 
 
 
 
 
 
 
 
 
 
 
 
매주 금요일, 박찬은 작가의 '캠핑이 좋아서'를 보내드립니다.

🏕️ 캠핑이 좋아서 21 | 박찬은

행복한 일이 하나는 늘 일어나는 캠핑

 

가을 밤의 추위를 피해 우모 패딩을 입고 보니 숨만 쉬어도 엉덩이 골 사이로 땀이 흘러내리던 지난 여름 캠핑이 생각난다. 텐트를 치고 나면 땀이 휴롬 착즙기 주스처럼 흘러내리던 시절이었다. 힐링 지수가 관 뚜껑 닫히듯 닫혀버리려 할 때쯤의 CPR은 바로 계곡과 시원한 맥주. 얼음처럼 차가운 영양 수비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3주는 족히 냉장고에 넣어뒀을 듯한 차가운 맥주를 한 캔 해치웠다. 너른 마당바위에 누워 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왜 선조들이 심산유곡 바위 위에 왜 그렇게 글씨를 새겼는지 알 것만 같다. 술 마시며 장쾌한 물소리를 듣다 보면 문장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손가락으로 튀어 나온달까. 주변 소음을 모두 덮어버리는 대자연의 장엄함이 알코올과 시너지를 일으켜 일주일 내내 막혀 있던 첫 문장이 변기 뚫듯 나와 버렸다. 그때였다. 바위 사이에 끼워 둔 맥주가 흘러가기 시작한 건. 반짝이는 저게 뭐지? A와 나 둘 다 멍하니 쳐다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A가 벌떡 일어나 하류로 뛰어간다. 그리고 라이언 일병 대신 번쩍이는 테라일병을 건진 A가 심바를 들어올리던 <라이온킹> 라피키처럼 나를 향해 자랑스럽게 맥주를 치켜들었다.  

계곡 물에 발만 깔짝대는 게 성이 안 찬 우리는 직녀탕으로 향했다. 오지 끝판왕이라는 경북 영양 수비면에 자리한 이 캠핑장에는 깊은 숲 속에 직녀탕이 있다. 오작교를 사이에 두고 견우탕과 직녀탕 가운데 물이 더 많은 직녀탕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실뱀이 견우탕으로 들어간 걸 본 뒤였지만. “그만큼 깨끗하니까 뱀이 있겠지 뭐.” 우린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처럼 뱀은 잊은 채 옷 입은 그대로 계곡 물에 몸을 담갔다. 물안경 너머로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게 보인다. 계곡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극복하니 닥터피쉬처럼 달려드는 물고기들이 니모처럼 귀엽다. 태어나서 처음 물놀이를 하는 강아지처럼 신난 우리는 이가 딱딱 부딪힐 때까지 수영을 했다. 그리곤 각자 팔에 올라온 닭살을 확인하고서도 짐짓 모른 척 하다 서로의 퍼래진 입술을 보고 나서야 직녀탕을 나온다.  


더위만큼 큰 여름 캠핑의 천적은 바로 벌레’. 캠핑장의 벌레는 무지개떡처럼 다양하다. ‘미국선녀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선녀벌레라 이름 붙여진 흰솜깍지벌레, 역 레펠로 내려와서 공중에 떠 있는 <미션 임파서블> 송충이들, 조명에 계속 박치기를 하는 매미나방. 날개가 타버리는 것도 모르고 태양 가까이 가는 이카루스처럼 나방은 계속해서 조명을 향해 돌진했다. 아 저래서 불나방 불나방하는구나. 막걸리를 마시던 A가 부스럭대더니 겨드랑이에서 벌레 한 마리를 꺼낸다. 10분 전 내 머릿속으로 들어간 친구를 구하러 온 다른 벌레도 무장공비처럼 끈질기게 내 머리로 침투 중이다. 이럴진대 거무튀튀한 연탄닭갈비에는 벌레들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어차피 어두워 언니. 그냥 먹자. 단백질이지 뭐.” 이름까지 붙인 반려 매미를 발등에 올린 그녀가 날 향해 말한다. 그래. 엄밀히 따지면 얘네 집에 우리가 온 거지 뭐. 캠핑7년 차, 화장실에 간 나는 새장에 가둬도 될 만한 큰 나방과 함께 수도꼭지를 공유하며 씩씩하게 손을 씻었다.  

능동적인 행복 수집가 되기


100년 양조장에서 사온 영양 은하수 막걸리를 폭탄주의 비욘세처럼 흔들었다. "손목에 스냅을 주란 말이야 이렇게." 그러나 파괴왕나의 행보는 오늘도 이어진다. 탄산을 뺀답시고 스노우픽 젓가락으로 막걸리 뚜껑을 때리는 순간, 본체에서 분리된 스노우픽의 젓가락 꼭지가 ICBM처럼 날아가버리는 게 아닌가. 뚜껑 2개 중 하나는 파쇄석 위에 안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나머지 하나가 안 보인다. “언냐, 낼 아침 되면 돌에 더 파묻혀서 못 찾아. 지금 찾아요.” ‘연골 더 없애고 싶지 않으면 쭈그려 앉지 말라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지만 한참을 쭈그려 랜턴으로 바닥을 수색했다. 그러나 귀걸이처럼 작은 젓가락 뚜껑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관객보다 먼저 흥이 올랐다가 급격히 텐션이 떨어진 드러머처럼 우린 풀이 죽었다. ‘아니, 얘들은 애초에 젓가락에 뚜껑을 왜 만드냐’, ‘막걸리 대충 마시면 되지 뭣 하러 스냅을 줬냐며 티격태격하다 다시 술잔을 부딪힌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그런데 비가 와서 못 볼 거라던 은하수가 산 능선 너머 하늘 가득 빛 담요를 펼치고 있는 게 아닌가. A가 말한다. “우와, 캠핑을 오면 행복한 일이 꼭 하나는 있다, 언니.” 그 순간 스테인리스 술잔 속에 반짝뭔가 보인다. 또 벌레인가. 비싼 히비키 위스키를 따라 놓았는데, 차마 버릴 순 없지. 잔에서 벌레를 집어 드는 순간, 이게 웬일?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맨 스노우픽 뚜껑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 나갔다 돌아온 젓가락 뚜껑과 생각지 못한 은하수의 습격에 우린 또 가난하지만 행복한 록커처럼 거세게 술잔을 부딪혔다.   


다음 날 아침, 캠핑장 옆 텃밭으로 가서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땄다. A가 말한다. "이건 땅콩, 저건 고구마네. 왜 고추는 저것밖에 못 자랐지? 조릿대를 안 세웠나?” 도시 여자의 탈을 쓴 A가 영농 후계자 같은 지식을 가진 이유는 그녀가 이 곳 영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따라 깊은 산에서 버섯을 캐며 자란 그녀가 영농 지식을 주절거리자 난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ASMR 듣듯 눈을 감는다. 덕분에 조릿대를 세워주지 않으면 고추가 높게 자랄 수 없다는 것도, 상수리나무와 도토리나무의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도, 돌계단에 붙어 있는 게 민달팽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영양의 100년 된 양조장카페에서 사온 막걸리 타르트와 함께 닭이 막 낳은 귀한 청란으로 아침상을 차려냈다. 연골 빠지게 찾아 헤매던 젓가락 뚜껑을 술잔 속에서 찾아내는 마법 같은 일,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쑥쑥 잘 자라는 오이를 따는 일, 계곡 물에 떠내려가던 테라 일병을 구출하는 일. 도시에서 해볼 수 없는 일들이 캠핑을 가면 아무렇지 않게 툭툭 일어난다. 행복은 주문하면 집 앞으로 오는 택배 상자가 아니라 눈에 보일 때마다 조금씩 주워 먹어야 하는 모이 같은 것이었다. 좋은 여름이었다.✉️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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