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국에서 여러 해 살았습니다. 안 그래도 묘사가 가득한 문장들에, 익숙한 지명들까지 등장하니 허약한 집중력은 날개 달린 홀씨처럼 훨훨. 시간을 넘나들어 만화경을 보듯 어지러운 생각을 여러 번 불러들여 읽었습니다. 싫은 것도 힘든 것도 아닌 재밌고, 그리워서 반가운 읽기였습니다. (중략)
아시아 유학생이 붉은 장미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안 어울리는 듯한 조지 오웰과 장미. 『오웰의 장미』라는 제목을 본 이들은 조급하게 책을 펼쳐 사연(?)을 알아내고 싶겠지요. 저는 제목을 보고 제가 아는 그 오웰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장미라니, 오웰에 대해 내가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던 전통적인 시각을 접고 그를 더 깊이 알아보라는 초대와도 같았다. 그 장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자,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계량 가능한 실제적 결과가 없는 시간들이, 정의와 진실과 인권과 세상을 변혁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어떤 사람의 삶에, 어쩌면 모든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감사한 연재분을 읽으면서는 장미보다 나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더 솔직하게 취향을 밝히자면 저는 나무에서 핀 야생 혹은 야외 장미만 좋아하거든요. 댕강 잘린 장미 다발, 하우스 상품은 인지의 ‘불쾌한 골짜기’를 경험하듯 두려움마저 일으킵니다. 오웰의 장미 나무들은 1983년의 영광으로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겠지요. 매년 어딘가의 누구는 ‘아직도 핀다’는 소식을 받아보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미가 만개하는 계절에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조금은 환상처럼 소설처럼 느껴지는 글입니다. 설레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