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단행본_어떻게_만드나요?
편집자: 제가 처음 출간한 웹툰단행본이 『정년이』인데 그때만 해도 웹툰을 단행본으로 옮겨오는 일을 하는 작업자가 많이 없어서 찾는 데도 애를 썼어요. 요 몇 년 사이 이 일을 이렇게 전문적으로 해주시는 디자이너님을 만나 너무 기쁩니다. 작가님은 이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현승희: 사실 저는 2019년 출판사에 입사해 일본어권 도서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대표님이 제가 일본에서 만화과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고 제의를 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이 책을 편집하면 편집할수록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웹툰단행본을 담당하게 된 편집자분들과 자신의 웹툰을 단행본으로 만들고 싶은 작가님들께도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독자층을 넓게 설정해도 되겠구나 싶었죠. 작가님은 이 책을 누구를 위해, 어떤 독자를 위해 쓰셨나요?
현승희: 처음에는 저처럼 막막하게 시작한 분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쓰는 동안에 함께 일해주시는 편집자님들과 작가님들로부터 여러 질문을 받곤 했어요. 이분들께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더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추가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편집자: 개인적으로는 「편집자님 필독!」 파트처럼 「웹툰작가님 필독!」을 넣어서 “원고는 클튜 파일이 아니라 PSD 파일로 전달하기” 같은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다 싶었네요.
편집자: 편집자로서 공감된 부분은 RGB와 CMYK의 차이였습니다. 또 ‘도련’이라고 하는 재단의 개념도요. 저는 줄글만 있는 책을 딱 한 번 해봤는데, 그 책을 편집할 땐 재단선 기준으로 그림이 잘리지 않는지, 혹은 더 필요하지 않은지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 너무 편했거든요… 웹툰과 종이만화책. 두 매체의 차이를 가장 실감하고 계실 작가님은 무엇이 가장 다르고, 무엇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시나요?
현승희: 말씀처럼 일단 색감 차이입니다. 담기는 그릇이 다르다보니 화면으로 보던 것을 잉크가 인쇄된 종이로 본다는 그 차이가 가장 크죠. 색 차이가 가장 눈에 띄는 만큼 신경이 제일 많이 쓰여요.
편집자: 감리를 간다고 해도 그날의 온도, 습도에 영향을 받고, 모든 대수(1대수는 16페이지)가 균질한 색감으로 나올 수도 없다보니 정말 어려워요.
현승희: 맞아요. 연출적으로는 세로로 긴 컷을 적절하게 잘라야 한다는 부담감, 작은 컷에 달린 대사들이 아주 많을 때 이를 조합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귀한 그림들을 단행본 크기에 맞춰 잘라야 할 때마다 정말 아쉬워요. 이 세 가지가 늘 제일 고민되고 어렵습니다.
편집자: 웹툰을 책으로 옮긴다고 하면 극단적인 반응일 것 같아요. “그거 그냥 웹에 있는 거 잘 줄이고 늘려서 책에 실으면 되는 거 아냐?” (현승희: 맞긴 해요…) 혹은 “그 기나긴 스크롤을, 살벌한 각도의 사선 컷을 요만한 책에 어떻게 담는데?” 아마 이렇게 반응이 갈리는 데에는, 전자의 독자분들은 ‘출판만화’가 다소 낯설기 때문이실 거라 생각해요. 작가님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시는 것이 출판만화입니다. 출판만화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웹툰단행본을 만들 때 쓰이는지가 궁금합니다.
현승희: 세로든 가로든 웹툰이든 출판만화든, 만화는 컷으로 이루어져 있죠. 세로로 배열되어 있는 웹툰 컷을 횡의 연출에 맞추어, 우리가 흔히 책을 읽을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Z자 읽기로 배치하려면 출판만화 문법과 콘티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몰라도 한 페이지에 적절한 수와 네모난 모양의 컷을 배치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출판만화의 문법과 콘티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 문법을 알아야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이를테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홀수 페이지의 오른쪽 하단 마지막 컷과 페이지를 넘긴 후 가장 먼저 보이는 왼쪽 상단 컷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어떻게 줄지 같은 것 말이죠.
편집자: 또 본문 중에서 놀랐던 것이 분절이에요. 웹툰 본 원고의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다 나누는 것부터 해야 한다니😱 효과음이면 효과음, 동작선이면 동작선, 그림이면 그림. 한 권을 하는데도 몇천 개의 분절 파일이 생긴다는 것을 읽고 도대체 이 파일 관리는 어찌 다 하실까 싶었어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결국은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달까요? 작가님은 “이건 진짜 남이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거 있나요?
현승희: 전부 다…(웃음)…는 아니고😅 소위 말하는 본 작업(컷 배치, 말풍선과 말꼬리 배치 및 병합)이자 조판만큼은 반드시 제가 합니다. 정말 바쁠 때는 서포트해주시는 동료 디자이너님께 분절과 식자 이식 작업(식자를 말풍선 안에 붙여넣는 작업), 말꼬리 배치를 부탁드리긴 하는데요, 컷 배치와 최종 말풍선 및 말꼬리 위치 조정, 병합만큼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습니다. 이거야말로 작업자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반드시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웹툰단행본_기쁨과_보람
편집자: 현재 저희 만화편집부의 『도토리 문화센터』를 작업중이시죠. 『도토리 문화센터』는 어떤 특징을 가진 작품이고, 난도는 어떤 편인가요?
현승희: 스토리 전개가 엄청나게 훌륭해서 감정의 강약 조절이 관건인 작품이고, 중간중간 난다 작가님 특유의 개그들도 치고 빠질 때가 많아 호흡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회차당 컷 수가 적고, 오밀조밀하게 편집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 한 권에 꽤 많은 회차가 묶입니다. 1권은 무려 19화나 들어갔어요.
편집자: 그 정도면 정말 많이 들어갔네요. 보통 1권에서 많이 들어가면 15~16화, 평균적으로는 12~14화 정도가 묶이니까요. 요즘은 컷도 굉장히 크게 들어가서 한 권에 묶을 수 있는 회차가 많지 않을 거 같아요.
현승희: 맞아요. 최근에는 딱 10화가 한 권에 묶인 타이틀이 있었어요. 평균보다도 훨씬 적은 수인데, 그림이 정말 예뻐서 시원시원하게 컷을 넣어가며 작업했습니다.
편집자: 『남남』 후속권은 5일 만에 작업을 마쳤다고 알려주셨죠. 사실 제가 『남남』의 1~4권 콘티를 직접 짰거든요. 그래서 5일 만에 하셨단 이야기를 듣고 약간 현타(?)가 왔어요…… 이렇게 비교적 난도가 쉬운 타이틀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반대로 어려운 타이틀은 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승희: 비교적 쉬운 것은 레이어가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웹툰입니다. 각종 꾸밈 효과, 이펙트, 소재 등을 많이 쓰지 않아서 분절 시 정리할 것도 적고 페이지에 배치할 요소들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남남』은 컷 크기도 거의 균일한 편이라서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편집자: 저는 연출적으로 출판만화와 괴리가 큰 웹툰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또 아니군요.
현승희: 네, 세로로 긴 컷과 사선 컷 같은 것은 페이지 안에서 요리조리 움직이고 고민하다보면 어떻게든 답을 찾거든요. 그런데 손질할 재료가 많은데, 그 재료를 계속 찾아서 배치하고 가져다 붙이고… 그런 번거로운 과정들이 오히려 좀 어렵습니다.
편집자: 재료가 엄청 많아서 손질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요리하는 동안에도 재료 창고와 주방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요리를 하면 더더욱 오래 걸리는 그런 느낌이군요.
현승희: 맞아요. 정말 그거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편집자: 작가님은 드라마, 일상물, 학원물, BL, 모든 장르를 하고 계시잖아요. 각 장르별 특징이나 그에 따른 난도 차이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BL은 피부색이나 홍조 표현 때문에 마젠타 색감 같은 게 훨씬 더 돋보여야 해서 어려울 듯해요…
현승희: BL은 정말… 그 피부 색감 때문에 여러 번 시험 인쇄를 해본 적도 있어요. 담당 편집자님께서 참 많이 고생하셨어요. 작품 하나를 할 때마다 공부해야 할 지점이 너무 많음을 통감합니다.
편집자: 인쇄가 정말 어려워요. 종이에 잉크가 찍혀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물리적인지…
현승희: 『만화의 원리』를 번역하면서 늘 꾸준히 종이와 인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오바 와타루 편집자님의 말씀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먹 배경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반드시 4도(C20 M10 Y10 K100)로 설정합니다. 1도로 깔면 회색으로 나와서요. 그렇게 하면 컷선, 말풍선과 당연히 차이가 생기겠지만 크게 눈에 거슬렸던 적은 아직까진 없었어요.
편집자: 저도 4도 먹 배경이 너무 짙어서 고민했는데 1도 먹 배경은 또 옅더라고요. 작품이 담기는 그릇이 달라지면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참 많은 거 같습니다.
현승희: 또 BL은 대사나 질척한(?)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몸을 부르르 떠는 효과선 같은 게 굉장히 많거든요. 그걸 일일이 배치해주는 것도 제법 손이 많이 가요.
편집자: 신음소리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현승희: 네(웃음). 그런 소리는 번역하는 것도 참 힘들어요😂
편집자: 이 이야기도 하고 싶더라고요. 말풍선과 말꼬리. 정말 저도 편집자로서 제일 힘든 것 같아요. 2교쯤 되면, 저도 ‘말풍선 말꼬리만 보는’ 교정을 한번 더 봐요. 말풍선이 말꼬리랑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주인 잃고 구천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말꼬리는 없는지… 웹툰을 책으로 옮겨올 때 말풍선을 싹 거두어내고 다시 하나하나 달아주죠. 심지어 말꼬리도 하나하나 달아준다고는 독자분들께서 상상도 못 하셨을 것 같네요. 선생님도 제일 어렵고 흰머리의 주범이라고 할 만큼 고역인 작업이라 하셨죠.
현승희: 말씀과 같이 구천을 떠도는 애들을 성불시키는 법은 이번에 책에 언급한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요(편집자: 그러니 책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도 있지만, 가급적 자연스럽게 말풍선을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숙제처럼 머릿속을 맴돌아요. 웹툰에서 만드는 말풍선은 아무래도 다소 정형적이고 획일적인 느낌이 있는데, 일일이 말풍선을 그린 출판만화 작품들엔 손으로 그린 말풍선만의 맛이 있거든요. 말꼬리도 다양하고요. 언젠가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면, 그리고 뭔가 또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내면 꼭 좀더 자연스러운 말풍선과 말꼬리를 구현해보고 싶습니다.
#사실_번역이_시작이었습니다
편집자: 선생님의 또다른 직업은 바로 일한 번역가입니다. 웹툰단행본 편집보다도 이 일을 먼저 시작하셨고, 웹툰단행본만큼이나 활발하게 하고 계시죠. 둘 중 어느 비율이 더 높나요? 모리 카오루, 이리에 아키 선생님의 『만화의 원리』가 그렇게 빨리 정발되다니! 고맙긴 한데! 믿을 수 없다고요!
현승희: 저도 제가 그렇게 빨리 해낼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사람은 역시 하면 되는 존재예요. 일하는 시간의 비율로 따지면 편집이 더 많은데, 요즘은 번역도 조금 비율이 올라갔어요. 그래도 편집하는 시간이 단연코 더 깁니다.
편집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선생님이 굉장히 애정을 드러내시면서 맡겨달라고 하신 작품이에요. 전 애정하는 작품을 편집하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작년에 《코믹 빔》 컬러 일러스트가 공개된 것을 보고 너무 좋은데 한 2초 뒤에 바로 “이걸로 포스터 만들면 단가가 얼마일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작가님은 덕업일치의 슬픔이 없으신지요?
현승희: 편집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어머, 이렇게 색감 쨍하고 긴 웹툰 누가 할까?(내가 합니다) 그런데 번역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 제 새끼 같아요. 오히려 하고 싶은 거 놓치면 아쉬워서 눈물이 납니다.
편집자: 저도요!!! 그런 작품이 있으면 정발 기다렸다가 막 찾아보고 그러는데 혹시 작가님도…
현승희: 네, 저도 그렇습니다…
편집자: 저는 역자분들이 주신 완역을 교정할 때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사토미가 “쿄지, 너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쿄지, 당신 대체 뭔 생각이냐고.” “쿄지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 등등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인칭, 어미, 쉼표 나 말줄임표 위치 등 각종 변화구를 던져보며 지금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의 조명, 온도, 습도를 전하려고요. 선생님이 번역하실 때 제일 주의하거나 신경쓰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승희: 가급적 번역하는 인물에게 빙의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얘는 이런 성격이니까 이런 말투를 쓰겠지? 이런 표현은 잘 안 할 것 같아. 그런 것들을 많이 상상하면서 해요. 그리고 단어 선택에 있어서도 1번 번역가가 되지 않으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1번 번역가면 좋은 거 아닌가? 하실 수 있는데, 이게 사전에서 1번에 실려 있는 뜻만 쓰는 번역가를 뜻하는 말이에요. 고민 끝에 그 뜻을 선택했다면 상관없어요. 다만 무의식적으로 1차 번역을 하지 않으려고(예를 들면 카와이이=귀엽다) 한국어 사전의 비슷한 말을 많이 뒤져보는 편입니다.
#만화인_현승희
편집자: 제가 고사리박사님과 들개이빨 작가님과의 북토크에서 했던 마무리 방법인데, 오늘도 〈라디오스타〉식 질문으로 끝을 맺어볼까 해요. 이거 꽤 괜찮더라고요. 현승희 선생님께 ‘만화’란?
현승희: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라 쑥스러운데, 제게 만화는 ‘문’ 같아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밀어도 꿈쩍 않는 문도 있고, 힘을 준 것에 비해 잘 열리는 문도 있고. 제겐 그랬어요. 하지만 자동문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제가 힘을 주고 문고리를 돌려야만 열렸어요. 앞으로도 이런저런 만화의 문을 많이 열어보고 싶어요.
편집자: 이 질문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만화가 지망생에서 시작해 지금은 웹툰단행본 편집 디자이너이자 일한 번역가로서 누구보다 만화의, 만화에 의한, 만화를 위한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제가 늘 하는 말인데, 우리는 그런 직함, 직업에 앞서 사실은 ‘만화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만화인으로서 오늘 오신 만화인들께 마지막 인사를 전해주세요.
현승희: 『동경일일』에 나오는 대사를 읽으며 평소 하던 생각과 비슷해서 마음에 많이 와닿았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만화라는 항성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도는 행성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거든요. 절대 그 영향권에서 멀어지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요. 우주가 너무 넓고 조용해서 막막하고 혼자 같다가도 이렇게 또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행복을 느껴요. 저희 모두 만화 속을 유유히 떠돌다가 다시 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