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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ds |  어려서 좋은 건

어려서 좋은 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언젠가 이해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 늙어서 안 좋은 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것을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 alone&around

🍳 오늘의 요리 |  최갑수

멸치칼국수, ‘디스크 조각 모음’이 필요할 때가 있죠

어제 몇몇 분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서울 서촌의 어느 국숫집에서 칼국수와 녹두전, 비빔국수 등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라도 하려는 내게, 무슨 이야기든 들어 보라며 K형님이 만든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책에서는 얻지 못할, 현장을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귀중한 인사이트였다.


나는 여행작가로 살며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했는데, 언제나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얻어낸 결론이 있다. 그건 바로 나보다 더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을 만나 그에게 조언을 부탁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길을 앞서간 이의 경험은 절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여행자는 내 여행기의 주석과 참조가 된다.


사무실로 돌아와 또 다른 미팅과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하루가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나는 사무실을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자유로 끝까지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렸다. 내가 고안해 낸 생각 정리하기 방법이다. 시속 80킬로미터는 내게 뭔가를 잊기에 적당한 속도다. 100킬로미터는 너무 빠르고, 70킬로미터는 느리다. 나는 자유로를 따라 달리며 창 옆으로 스치는 풍경 속으로 하루의 어지러웠던 어지러운 생각을 던진다. 자유로 끝에 위치한 카페에서 라테 한 잔을 마신 후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는 약간의 여유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건 옛날 윈도우98 컴퓨터에서 했던 ‘디스크 조각 모음’과 비슷하다.


돌아오는 길,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해 생각했다. 목요일 저녁은 내가 뭔가를 만들어 먹는 날이다. 금요일자 레터에 ‘오늘의 요리’에 내가 만든 요리에 관해 써야 하니까. 음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모든 게 마감을 중심으로 흘러가는군. 아무튼, 오늘은 뭘 만들어 볼까? 뭐라도 써야 하니, 뭐라도 만들어야 겠지. 작품은 마감이 만든다. 램프를 빠져나오는데 조그만 빗방울이 차 유리에 후드득 떨어졌다. 봄비였다. 아, 맞다 봄이구나. 문득 칼국수가 떠올랐다. 오늘 점심으로 칼국수가 나왔는데, 제대로 먹지 못했군. 자, 오늘은 멸치칼국수다. 쑥갓도 살짝 올려보자.

나는 경상도 출신이다. 세상의 모든 칼국수는 멸치칼국수인 줄만 알고 살다가,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에 올라와서 바지락칼국수를 처음 먹었다. 밍밍한 국물 맛이 칼국수라고 하기엔 뭔가 좀 어색했다. 나의 선택은, 멸치칼국수vs바지락칼국수=멸치칼국수, 군만두vs찐만두=군만두, 돼지김치찌개vs참치김치찌개=돼지김치찌개, 짜장면vs짬뽕=짜장면이다. 내가 사는 파주에서는 제대로 된 멸치칼국수를 파는 곳이 드물다. 남대문 시장 칼국수 골목에서 파는 칼국수가 내가 어릴 적 먹던 경상도식 칼국수와 가장 비슷하지만, 멸치칼국수가 생각날 때마다 남대문시장까지 가는 건 무리니 그냥 내가 만들어 먹는다.


멸치칼국수는 육수가 팔 할이다. 일단 끓는 물에 멸치를 손에 잡히는 만큼 많이, 듬뿍, 가득. 머리는 떼지 않는다. 배를 갈라 내장을 빼지도 않는다. 그래야 국물이 더 터프하다. 다시팩이 있으면 하나 더 넣어준다. 다시팩 없으면 다시마 A4 반 장 크기만큼 잘라 넣는다. 대파 뿌리 있으면 반 개 넣고, 양파 반 개 툭툭 썰어 넣고, 당근도 채 썰어 넣는다. 애호박 있으면 채 썰어 넣고(빼도 된다), 감자 있으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고(빼도 된다).


육수가 만들어질 동안,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밀가루는 종이컵 한 컵 분량. 볼에 담고 달걀 하나를 깨트려 넣는다. 그리고 소금 살짝, 여기에 식용유 한 스푼. 자, 이제 반죽 시작. 처음엔 숟가락으로 밀가루와 달걀이 잘 섞이게 저어주다가, 섞인 다음에는 손으로 반죽한다. 반죽은 오래 할수록 좋다. 몇 해 전 이탈리아 마르케라는 곳에 취재를 간 적이 있는데, 탈리아텔레를 만드는 셰프에게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얼마나 해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가 대답하길, “어깨가 아파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이탈리안다운 멋진 대답이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그렇지, 난 귀찮은 건 못 참아도 힘든 건 참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덤볐지만, 난 힘든 것도 못 참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뭐, 이 정도면 됐지, 대충 먹자. 시판면이 아닌 게 어디야.


반죽이 다 되면 도마 위에서 덧가루를 뿌리고 밀대로 밀어 가며 얇게 편다. 너무 얇게 펴면 면 씹는 재미가 없으니 적당한 두께로. 얇게 펴진 반죽은 덧가루를 앞뒤로 뿌려 돌돌 말아 먹기 좋은 두께로 썰어준다. 5~7mm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면을 다 썰면 덧가루를 조금 더 뿌려 면을 펴준다. 아참, 나는 반죽을 약간 덜어 내 수제비도 만들어 면과 함께 넣는데, 수제비 반죽은 면보다 더 얇게 민다.


육수가 끓기 시작한다. 중약불로 낮추고 조금 더 끓인다. 진한 멸치 육수 냄새가 가득한 주방. 뭔가 아늑하고, 안도감이 든다. 국자를 들고 육수 맛을 살짝 본다. 달큼하면서도 약간 비릿한, 익숙한 육수 맛이다. 그래, 이거지. 낮 동안 어수선하고 정신없이 붕붕 떠 있었던 마음이 멸치 육수 앞에서 차분해진다.


육수 재료를 건져 내고 면과 수제비를 넣는다. 면과 수제비는 끓는 물에 반쯤 미리 삶아 두었다가 육수에 넣고 다시 끓이면 맛이 좀 깔끔하긴 하지만,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멸치칼국수는 터프하게! 국간장과 소금, 액젓으로 살짝 간을 더 하면 완성이다. 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김가루와 깨를 넉넉하게 뿌려 준다. 경상도식이니까 듬뿍. 나는 여기에 고춧가루를 많이 뿌린다. 음 이 정도면 속이 쓰릴 수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육수를 맛본다. 물론 그릇을 들고 살짝 마셔야지. 숟가락으로 육수를 떠 먹는 건 경상도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아, 흠흠. 육수향이 콧속으로 스트레이트로 파고 든다. 좋다. 만족스러운 맛이다. 진한 멸치육수는 뭔가 독불장군같고 맘대로 같은 면모가 있다. 밸런스가 안 맞고 좀 엉성하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이다.


면도 적당히 잘 익었다. 한 젓가락 가득 집어 들고 후후 식힌 다음 입으로 가져간다. 오오, 그래 이 맛이지. 앞을 향해 정확하게 돌진하는 직진의 맛! 후루룩, 후루룩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면을 건져 먹는다. 틈틈이 육수도 마신다. 멸치육수는 적당히 식으면 은근히 깃든 다정함을 드러낸다. 먹기 좋게 식은 국물을 마셔 본다. 그렇지, 이게 바로 멸치칼국수만의 매력이지. 츤데레 같은 녀석.


다 먹었다. 깨끗하게 비운 면기는 인생의 포만감을 들게 한다. 잘살고 있어, 하고 어깨를 툭 두드려 주는 것 같다. 아, 맞다. 오늘 사무실에서 약간 이상한 사람이 뭔가 시비를 걸어왔는데, “아이쿠, 죄송합니다. 수고하십쇼.” 하고 얼른 도망쳐 나왔다.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이 꼭 일정한 비율로 있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다. 이상한 사람 앞을 지날 때는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걷는 것이 상책이다. 문득 그에게 내가 만든 멸치칼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가 뒤틀린 땐 탄수화물이 안내하는 그곳으로 가면 된답니다. 밀가루 150그램에 따듯한 육수 조금이면 마음이 따뜻하게 진정되거든요.


그런데 쑥갓을 올리는 걸 깜빡했군. 괜찮아, 어차피 쑥갓은 가장 먼저 먹어야 하니까, 드라마로 치면 인트로 같은 것이니까, 생략하기 버튼을 클릭했다고 칩시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작가다. 시집 『단 한 번의 사랑』과 에세이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등을 펴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나는 철없이 살기로 했다 |  성시윤

아내와 손잡기

“부부가 손잡고 다니는 것 정말 꼴불견이지 않아요?”

지인의 반문에 나는 잠깐 비틀거렸다. 급소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는 몇 달 전 정년퇴직을 한 터였다.


“시간이 많아져서 사모님과 산책하러 자주 나가시겠네요?”

나는 안부가 궁금해 물었을 뿐이다.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각자 편한 시간에 산책하면 되지 왜 같이합니까? 나는 부부가 ‘여기 보라’는 듯이 손잡고 걷는 게 제일 보기 싫어요.” 그러고 나서 그는 ‘꼴불견’이란 낱말을 꺼냈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습고 거슬린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걷는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아내가 우리 애들에게 한 말을 빌리면 “너희 아빠는 신혼여행 때부터 혼자 앞에서 저벅저벅 걸었다”라고 한다.(사실을 밝히자면 그때는 길가에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내가 앞서 걸으며 내 온몸으로 거미줄을 걷어냈다. 물론 아내는 이 말을 지금도 믿지 않는다).


함께 걸을 때 여느 부부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것은 맞다. ‘떨어져 걸으면 부부, 손잡고 걸으면 불륜’이라는 우스개도 있지 않나. 나는 여행 기자를 한 적이 있는데 바다 혹은 숲에서 팔짱 낀 남녀를 간혹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저들은 부부가 아니다. 부부가 저럴 리 없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기자를 그만두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동네에 있는 호수에 이따금 아내와 산책을 하러 갔다. 우리는 습관대로 멀찌감치 떨어졌다. 나는 앞에서, 아내는 뒤에서 각자 걸었다. 떨어져 걸으니 대화도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한날한시 한 호수에 있었다. 하지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부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치 부부라는 사실을 감추려는 듯했다. 곰곰 따져 보니 참 이상했다. 불륜 관계는 당당히 손을 잡고 걷는데, 부부는 손잡는 것을 왜 어색해 하나. 그 반대가 맞지 않나.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뻔뻔스럽게 아내의 손을 잡는다. 산책할 때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잠시라도 손을 놓치면 큰일 날 것처럼 다시 잡는다. 보는 눈이 없으면 잠깐 놓더라도, 보는 눈이 있으면 금세 다시 잡는다. 가끔은 남들 보는 앞에서 아내의 신발 끈을 고쳐 매주기도 한다. 아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고 하고 머쓱해서 피하려 하면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사람들이 보잖아.” 자주 하다 보니 아내와 손잡는 일이 손에 익었다.


손을 잡고 걸으면 나란히 서게 된다. 나란히 서면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산책 중에는 흰뺨검둥오리의 자맥질을 구경하고, 때늦은 꽃을 보며 신기해한다. 자연스레 대화 소재가 늘어난다. 대화 소재가 늘어나니 함께 산책할 일이 많아졌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긴 세월일지 어떻게 아느냐고?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르지 않냐고? 그럼 더욱 손을 잡아야 한다.


어느새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겨우내 쉰 호수 산책을 조만간 재개할 것이다. 우리는 여봐란듯이 손을 서로 꼭 잡고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그러곤 이런 농담을 주고받겠지.

“우리를 부부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아무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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