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거리다 멀미하는 글 :여전히 열네 번째 원진메일 2021. 07. 22 프랙탈거리다 멀미하는 글 -
몇 살이 되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나의 존재를 스무살 때쯤 깨우쳤다. 처음으로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결정을 내리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답을 향해 나아갈수록 되돌아 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생각을 쭈욱 펼쳐 놓으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날은 너무 못됐고 어느 날은 너무 착했다. 어느 날은 너무 예민했고 어느 날은 너무 무뎠다. 양극단을 아우르는 생각을 돌돌 말면 어느새 모순이 되어 있었다. 나 조차도 나의 생각을 감당하지 못해 버거웠다. 그리하여 스무살의 난, 학생상담센터에 갔다.
꽤 긴 시간동안 문제를 풀고, 상담 시간을 예약했다. 상담사 님을 만났다.
“어떻게 오시게 됐어요?”
“저를 잘 모르겠어요. 너무 복잡한 것 같아서요.”
내 결과지에 이리저리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던 상담사 님이 웃으며 말했다.
“잘 알고 계시네요.”
“잘 모르겠다니까요.”
“그러니까 잘 알고 계신다고요. 본인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성질을 가진 분인 걸 잘 알고 계시는 겁니다. 잘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날의 상담은 쉽게 끝났다. 떨떠름하게 상담실을 나오며 다짐했다. 앞으로의 삶을 나를 알아가는 데 써야겠다고. 그렇게 평생을 바쳐도 다하지 못할 과제를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론은 ‘프랙탈 이론’이다. 재미 없는 말로 소개하면, “1975년 미국의 만델브로가 제창한 기하학 이론으로, 해안선이나 구릉 등 자연계의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모양은 아무리 확대해도 미소 부분에는 전체와 같은 불규칙적인 모양이 나타나는 자기 상사성(相似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체를 쪼개면 그 안에 전체의 모습과 유사한 조각들이 가득하다는 거고, 불규칙한 조각들이 모여 이루는 전체는 조각 원형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거다. 별별별별별별을 그려 만든 큰 별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불규칙 속의 규칙, 규칙 속의 불규칙. 그게 프랙탈 이론의 핵심이고 내 정체성이다. 나의 불규칙을 목격한 이들은 걱정한다. 단순히 살아, 그러다 병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존재로 나를 인식한다. 그럼 난 말한다. 그걸 내가 알아서 괜찮아요. 불규칙 속 단 하나의 규칙은 난 불규칙 하다는 것이고, 불안정 속 단 하나의 안정은 내가 불안정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온다.
스스로와 좀 살 만해진 후로, 남들은 어떻게 불규칙하고 불안정하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모든 것을 알 수 없겠지만, 그의 조각으로나마 그는 어떤 모습일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조각은 곧 생각이다. 관계 맺음은 대화를 통해 조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와 닮아 있는 조각, 전혀 같지 않은 조각을 그에게서 찾아냄으로 나의 조각을 더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어쩌면 아주 멋진 한 조각을 서로 나눠 가질 수도 있겠다. 우리는 생각하고 대화함으로 ‘존재 깨우치기’라는 평생의 과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린 때로 같은 존재로, 때로 다른 존재로, 결국엔 프랙탈과 같은 모습으로 지구에 존재한다.
나는 믿는다. 인류의 미래는 바로 이 한 조각, 우리의 생각에 있다고. 나를 알아가고 남을 알아가는 노력에 있다고. 그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찾아낼 거라고.
거창한 소개글과 달리 미약한 시작을 하나 알린다. “이것은 서평도 인터뷰도 아니여”, 말 그래도 서평도 인터뷰도 아닌 것이다. 서평이라기엔 그저 책의 문장을 빌려왔을 뿐이고, 인터뷰라기엔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조각을 가진 나의 주변 사람을 모셔와,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조각을 나눈 과정을 글로 옮겨 달의 마지막 주에 보내드리려 한다.
나에게 소중한 조각이 당신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에게 소중한 조각이 당신에게도 그러하길 바라며,
원진이가
추신. 그러니까 오늘 글은 다음주에 보내드릴 “이것은 서평도 인터뷰도 아니여”의 기획의도 같은 겁니다. 부디 흥미를 가져주시길. YOU,DEAR-ELOISE https://youtu.be/8MNEEGgFsKw 정원진 wonjin_313@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