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국 가곡 앙상블 아랑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예술은 계속된다.' Art Must Go On!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 오늘은 한국 가곡 앙상블 아랑을 소개하려 해요~ '도나'는 도봉구 나들이의 줄임말로, 도봉구 예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예요! 이제 우리들의 도봉구 나들이, 도봉구 예술인들과의 이야기, 도나 시작해볼까요? ![]() 이번에는 한국가곡앙상블 '아랑'의 김지연 예술가님을 만나뵜어요. 도봉구립합창단에서도 활동하시는 김지연 예술가님과의 한국가곡앙상블 '아랑' 이야기 들어볼까요? 한국가곡앙상블 아랑은외국가곡과 오페라가 많이 나오던 최근, 우리나라의 가곡, 즉 한국 가곡을 발굴하고 연주하여 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자 2019년에 창단되었어요. '아랑'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요, 아름다운 아리랑(즉, 우리 가락)과 아름답고 낭랑한 목소리라는 의미와 함께, 옛날 순 우리말로 여인이 남편이나 연인을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이예요. 그래서 '아랑'은 '아름답고 낭랑한 목소리로 우리나라 노래를 친근하고 가까운 곳에서 들려드리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Q) 한국가곡앙상블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한국가곡앙상블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한국 가곡은 어떻게 접하시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성악을 전공하며 다양한 서양음악을 배우고 접했지만 한국가곡은 그에 비해 어릴적 음악 교과시간에 배운 경험과 대학교에서 한국가곡딕션이나 가곡연구 시간에 배운게 다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졸업 후 다양한 연주와 공연들을 하며 한국가곡도 성악으로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시립합창단 등 다양한 합창단 활동을 하며 화음이라고 불리는 앙상블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껴서 우리나라 노래를 아름다운 화음으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하며 만난 지금 멤버들에게 제가 한국가곡전문 여성앙상블팀을 만들어 함께 활동해보자는 제안을 했구요. 그렇게 세계최초로 한국가곡을 전문으로하는 클래식 성악앙상블팀인 지금의 아랑이 탄생했죠. Q) 예술가님의 작품활동 및 작품 방향, 또는 작업물을 통해 추구하는 바(예술관)이 어떠하신가요? 저는 음악을 포함한 예술,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음악이라면 듣는 사람들 마음(영혼)에 닿아야 하고 그 감동을 통해 영혼에 치유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한 생각이 저를 음악치료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관객에 대한 이해가 있는 선곡을 하려고 노력해요. 한마디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담으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죠.
저의 개인적인 활동으로는 여러 무대와 라디오, TV채널 등에서 독창, 중창, 합창단, 음악치료극 등으로 출연하여 다양한 공연들을 해왔고 또 지금도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유행하면서 약 11개월 전쯤 부터는 'HOUSE성악가'라는 홈레코딩 유튜브채널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채널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익히 들어 잘 아시는 대중가요나 팝, 드라마OST 등을 성악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랑의 그룹활동으로는 어릴적 불렀던 동요나 음악시간에 배운 친근한 한국가곡들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연주하고 여기에 댄스나 악기같은 퍼포먼스를 가미하여, 관객들의 눈과 귀와 마음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관객분들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한국가곡을 중심으로 가요, 재즈, 팝, 트롯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어요. 제가 그동안 의식하진 못했지만 저의 무의식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 분야의 꾸준한 성장을 위해 틈틈히 외국에 나가서 음악공부를 하고 오는 편인데요. 2~3년전쯤인가 제가 이탈리아에 가서 그곳 마에스트로에게 노래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는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남의 나라의 노래를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미친듯이 배우고 있는걸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는거지?"
생각해보면, 제가 문화예술교육사 공부를 할 땐 일제시대때 말살당한 국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예술해커톤 예술창업경연대회<전통편>에 참가해서는 4차산업과학기술과 국악교육 보드게임 동화책을 융합한 U러닝 동화책으로 입상했던 경험들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는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 나의 뿌리에 대한 애정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러한 정체성이 지금의 아랑을 창단한데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아랑독서모임을 진행하시고 계시던데, 이 모임은 어떻게 참여하고, 진행되는지, 가곡과 함께 독서가 진행되는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저는 책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독서모임 활동을 따로 해왔었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팀원들과 함께 해보고 싶단 생각은 쭉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2020년 연말 모임 때 21년 새해 목표를 정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독서습관'을 가지고 싶다는 팀원들의 니즈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잘 됐다 싶어 아랑의 새해목표 중 하나로 정했어요. 독서말고도 '운동'과 '한국가곡연구'까지 총 세개의 목표가 있어, 월1회 등산이나 홈트, 월1회 한국가곡 연구및 발표, 월1회 한권의 책 읽고 발제나누기 이런식으로 정기적으로 실천해오고 있어요.
그중 독서모임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분기마다 3권의 책을 선정하여 월 1권씩 함께 읽고 발제를 통해 생각과 마음을 나눕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사고의 확장은 물론, 마음을 나누며 공명이 일어나요.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멤버라도 서로의 약속이라는 강제성이 있으니 힘들고 어려운 책이라도 한달에 한권은 꼭 읽게 되고요. 토론을 통해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담게 되거든요. 책에는 많은 지혜가 있는 만큼 이를 통해 멤버 모두가 생각이 깊고 넓어지며 성장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꾸준히 잘 해온만큼 조금씩 모두에게 독서가 습관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지죠. 어려운 책일 경우에는 부담되고 힘들어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팀원들도 있었는데 막상 읽고 같이 토론하면 되게 좋아해요. 지금까지 9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 12월까지 3권의 책을 더 읽을 예정이예요. Q) 청소년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나 <2021년 돈암문화살롱 명사와 함께하는 즐거운 인문학>, 제 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오페라 버스킹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고 계시던데, 곡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으시나요? 다양한 음악회는 저마다의 주제가 있기에 최대한 그 주제와 주 관객층에 맞는 선곡을 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청소년을 위한 공연은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선곡과 퍼포먼스,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은 또 그에 맞는 분위기의 곡들을 선곡하고요. 돈암문화살롱은 우리나라 국보인 돈암서원에서 열린 공연이기에 한국가곡 등 우리나라의 정서가 느껴지는 곡들을 중점적으로 선곡하고, 오페라버스킹은 오페라음악을 중점으로 연주하는 식으로 했어요.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지만 어떤 무대에서든 한국가곡앙상블이란 이름에 걸맞게 한국가곡은 꼭 선곡하려고 노력해요.
Q) 특히나 제 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오페라 버스킹은 인상적이었는데, 혹시 공연하신 작품들은 어떻게 선별하셨는지, 이 버스킹에서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소극장오페라축제 오페라버스킹은 명칭 그대로 오페라 축제였어요. 그래서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도 관객분들이 잘 아시고 친숙하게 느끼실 만한 곡들로 선곡했어요.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저희 팀 순서 바로 앞순서가 버스킹 활동을 많이 하시기로 유명한 한 테너분이셨는데, 저희가 대기중일 때 갑자기 '축배의 노래 같이 부르실 소프라노분 안계신가요?'라며 막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단원 중 한분이 쿨하게 뛰어나가 함께 듀엣으로 연주하며 춤도 추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Q) 토요도락 활동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는데, 펜트하우스와 결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기억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나요? 처음에 제작진분들께서 펜트하우스 노래맞추기를 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실 제가 펜트하우스를 안봐서 어떤 곡들이 나올지 걱정을 좀 했었어요. 클래식음악이라면 다양한 분야가 있고 자기 전공인 성악곡들은 잘 알아도 다른 분야는 잘 모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성악곡들로 선곡을 해주셔서 큰 무리없이 맞출 수 있었어요. Q) 도봉구에서 활동한 계기가 있으시나요? 도봉구립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인연이 되어 도봉구에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Q) 타 지역이 아닌, 도봉구에서 진행한 작품, 또는 활동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 ![]() 우선 기본적으로 도봉구립합창단원으로 참여한 공연들도 많았고
또 우이천 등축제, 방학천 등축제 등 각종 행사나 축제 때 오프닝공연도 많이 했었어요.
도봉구 코로나 out 희망콘서트
유튜브로 만나는 거리예술
도봉구 쌍리단길 이탈리아가곡 콘서트,
독일가곡 콘서트,
2021년 신년행사회 오프닝
꽃사진 전시회 등이 있었습니다. ![]() 도봉구 예술 이야기, 도나! 끝까지 한국가곡앙상블 '아랑' 이야기를 함께해요 Q) 예술 활동을 하시면서 보람 있으셨거나 힘드셨던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예술활동을 하며 힘들었던 점은 굉장히 많았어요. 예술가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크게 와닿는 생업,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나누고 싶어요. 어려움 삶에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경험의 한 부분이요.
제가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때 그리고 졸업 이후에 음악, 특히 연주자로 먹고 산다는게 힘들다는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클래식음악의 특성상 배움의 기간이 길어 계속해서 레슨도 받고 유학도 가고 콩쿨도 나가야하는데 저는 제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가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셔서 집이어졌어요. 그런데 뒤늦게 은사님들의 권유로 하필 클래식성악을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거죠. 그런데 부모님의 지원을 바라기도 힘든 상황이었다보니까 대학교때는 물론 졸업 후에도 여러 알바를 병행하며 한번도 일은 손에서 놓은 적이 없고 음악에만 집중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때, 다행히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편이라 거부감은 없었는데 몸이 망가지더라구요. 제가 일일이 말씀은 못드리지만 정말 다양한 서비스업 아르바이트와 학교, 학원, 교도소에서 노래 강사 등 하루에 쓰리잡을 할 때도 있었어요. 노래를 몇시간씩 해도 목 한번 상한 적 없던 제가 알바로 특히 판매알바나 강사같이 목을 많이 쓰는 일들을 많이 하다보니 결절에 걸린거에요. 그렇게 되니 뭔가, 나의 존재가치가 사라진 느낌, 살아갈 이유를 잃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노래를 해야 하는지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많았고 또 음악이라는 게 시간예술이고 또 들리긴 하지만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 무형 예술이다보니 결과물이 속시원히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막막하고 끝이 없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래서 좌절도 많이 했고 한번은 슬럼프가 와서 작심하고 7개월동안 음악을 그만두고 직업훈련만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레슨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교육받는 시간을 제외하곤 집에 틀어박혀 책만 하루에 3~4권씩 읽다가 활자중독이 올 정도였어요.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달은게 저는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이더라구요. 음악이 없고 노래가 없으니 삶이 너무 우울하고 의미도 없었어요. 그때 딱 마음먹은게 "앞으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말고 한눈팔지 말고 음악만 하자."였어요. 그래서 제가 원래 부산사람인데 캐리어만 하나 달랑 들고 서울에 무대를 찾아 온거에요. 연주 일자리나 무대가 서울에 몰려있다보니 전업연주자로서의삶을 살기 위해 학교 일도 다 접고 왔어요.
예상한대로 서울에는 오디션만 합격하면 노래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가 정말 많더라구요. 그렇게 지금의 제 모습, 전업연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돌아보면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콩쿨이나 각종 대회에서의 입상, 기획사 캐스팅제안 등 여러가지 크고 작은 성취들이 있었고 그 모든 어려움을 통해 저는 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명확히 깨닫고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지금의 제가 되었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먹고 산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의 삶은 직장인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기도 하고요. 돈만 좇는 삶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내적 외적 다양한 나만의 이야기를 예술작품으로 녹여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에요. 그래서 제 모든 삶의 경험들 그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보람되고 감사한일인 것 같아요. Q) 혹시나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운 사례가 있으셨나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공연예술인들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특히 비말감염이라는 점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들이 정말 큰 타격을 받았어요. 저는 다행히 어느정도 고정적인 수입이 조금이나마 있었지만 주변엔 월수입 0원인 분들도 많았고 또 저도 그렇고 팀원들중에서도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만큼 힘든 시기였어요. 그나마 집순이 집돌이 친구들은 잘 버티던데 저는 외향적인 성격에다가 사실 굉장히 바쁜게 익숙했다보니 정말 너무도 힘든 시기였어요.
코로나 이전엔 월평균 최소 8~10회정도는 꾸준히 연주가 있었고 거기에 고정적인 일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땐 정말 너무 쉬고 싶어서 딱 1년만 모든 일을 그만두고 외국에서 쉬다올까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마침 딱 코로나가 터지고 한달에 1회 공연도 겨우 그것도 비대면으로 있을 정도가 되니 그전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고 반성했어요.
그래도 요즘은 다시금 일거리가 생겨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도 이전에 비하면 너무 연주가 줄어, 과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염려도 있지만 아마 이 또한 지나가고 분명 더 활발해질 시기가 올 거라 믿습니다 Q) 나에게 한국가곡앙상블 ‘아랑’은 OO이다? 나에게 한국가곡앙상블 '아랑'은 Company이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회사란 의미를 지닌 Company라는 단어의 어원이 Com(함께)와 pany(빵,라틴어)가 결합한 형태란 것을 알게 됐어요. 즉 '함께 빵을 나눠먹는 사이'란거죠. 그 글을 읽자마자 전 바로 우리 아랑이 떠올랐죠. 아랑에는 저의 이상과 이를 위한 노력들이 고스란히 녹아있기에 저의 일부분이자 나와 너(팀원들) 곧 우리의 이상을 마음껏 실현시키는 장이자 Company예요. Q) 앞으로의 예술 활동 계획이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저의 개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아랑의 팀원 한사람 한사람의 성장이 그룹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게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할 것이고 모든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계획이예요.
세월이 흐를 수록 발전하고 성장하며 더욱 깊이 있어지는, 또 나만의 색채가 더욱 무르익고 짙어지는 그런 예술가, Artist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한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후에는 세계로 나가 세계를 주 무대로 활약하는 Korean Artist가 되고 싶어요.
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인 가장 세계적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랑이라는 저희 팀도 더욱 성장하여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음악과 이에 담긴 정서를 외국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한국가곡이 성악 필수과목이 될 만큼이요. ![]() 도나와 함께한, 도봉구 예술 이야기! 다음에는 메트 오페라합창단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우리들의 도봉구 나들이, 도봉구 예술 이야기, 도나를 기다려 주세요! 도나의 다른 뉴스레터도 보고 싶다면 클릭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