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성 깨부수기: 대항하고 싸우는 남성성
• 돌보는 남성성이 만들어지는 조건들

일하는 엄마=워킹맘, 일하는 아빠=?

남성성 깨부수기: 대항하고 싸우는 남성성

기존의 남성성은 주로 지배적이고, 일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며, 공격적이고 쟁취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남성성 때문에 반대로 정서적인, 관계적인, 감정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성향, 다시 말해 '돌보는 성향'은 마치 여성의 특성인 것처럼 간주되었어요. 이와 같은 전통적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돌봄에 참여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개인적으로도 돌보기를 선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돌봄에 참여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인데요. 기존의 남성성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돌보는 남성성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고 연구는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남성성이 등장하려면 돌보는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돌봄은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노동이 아닌, 쌍방향적이고 관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단순히 마음가짐의 차원에서 논의가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죠. 남성이 돌보는 행위에 동참할 때 비로소 돌봄의 가치를 남성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발돋움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돌보는 행위는 아이와 아빠라는 가족 내에서만이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의 민주적인 실천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이렇게 돌봄에 대한 논의를 확장할 때, 비로소 사회 지배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의 타파도 가능할 테니까요

돌보는 남성성이 만들어지는 조건들

연구에서는 다양한 돌봄 행위를 실천하고 있는 남성 아홉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돌보는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돌보는 남성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남녀 간에 평등한 소득입니다. 만약 남성이 지금처럼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일이 계속되면, 둘 중 한 명이 육아를 선택해야 할 때 여성이 그만둘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에 더해 남성이 주로 일을 하고 여성이 주로 돌봄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맞벌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들 중에서는 (자기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남성이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한편으로는 맞벌이 자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었어요. 기존의 남성성 때문에 나타나는 고정관념이 남성들 사이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남녀 둘다 돌봄시간과 노동시간이 평등하게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남성의 노동시간이 돌봄시간을 고려해 설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이 돌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예외적인 일이라면, 굳이 직장에서 돌봄시간을 고려한 노동시간을 안배할 필요가 없겠죠. 이러한 직장문화는 결국 남성을 돌봄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평등한 젠더 이데올로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그만큼 제일 어렵기도 한 조건인데요.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돌보는 행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남성성과 완전히 분리되거나 이를 극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아내를 직접 돌보면서 자신의 아들들로 하여금 며느리에게 돌봄을 미루지 말고 직접 와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명령했다고 해요. 아내를 돌보는 모습은 돌보는 남성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가부장적인 기존의 남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한 것인데요. 하지만 논문은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돌보는 남성성은 대안적, 대항적 남성성이지만 기존의 남성성과 공존할 수 없는 배타적인 속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남성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돌보는 남성성이 함께 나타남으로써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돌봄의 실천이 가족 단위를 넘어 확대된다면 앞서 말한 시민적 돌봄의 실천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가 아니라 원해서 '기꺼이' 하는 돌봄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더 많은 돌봄이 기꺼운 것이 되면 시민적 돌봄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그럼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