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는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
난생처음 밖에서 펑펑 울었다. 몸을 숨길 곳도, 모습을 가릴 방법도 없는 관광지 식당 한복판에서. 『H마트에서 울다』를 이 여행에 데려온 것은 정말이지 큰 실수다. 추천사에 ‘이 책을 읽고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가 쓰인 걸 청승 떨기 좋은 여정에 가져오는 게 아니었는데.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근사한데 글까지 어마어마하게 잘 써서 얄미워 죽겠는 작가이자 록 뮤지션 미셸 자우너가 엄마와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은 에세이. 미국인이지만 한국식 자식 사랑-너무 뜨겁고 강력해서 숨까지 막히는-을 듬뿍 받고 자란 미셸이 암으로 투병하다 너무 빨리 하늘로 간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대목에선 눈물을 잘 참았다. 쪽팔리게 책 읽다 울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장례식을 마치고 엄마가 없는 세계에서 보낸, 286쪽부터 400쪽까지 이어지는 애도의 시간, 엄마의 흔적을 더듬는 나날, 혼자서 엄마가 끓여줬던 잣죽을 쑤고, 김치를 담그며 엄마라는 존재의 조각 같은 자매들, 자신의 이모와 보낸 한때를 읽을 땐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은 한적한 대낮, 밥 잘 먹고 계산서 달라고 할 타이밍에 꼬질꼬질해진 냅킨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여 가며 오열하는 커다란 여자를 바라보는 12개의 눈과 수군대는 말들이 옆통수에 날카롭게 꽂혔다. 걔들의 그런 반응을 완전히 이해한다. 확신하건대 신혼여행에 와서 남편이 바람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파혼 선언을 한 후 호텔을 뛰쳐나온 여자도 나만큼 울진 않았을 거다.
미셸의 애도보다 더 마음이 아렸던 건 결국엔 그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 채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외면할 수도, 거스를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냉혹한 순리. 내가 이 비정한 세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아주 깊게, 시시때때로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슬픔이 치밀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있지 않나? 죽음이라는 단어 옆에 그 존재의 이름을 혹은 호칭을 갖다 뒀을 때 왈칵 눈물부터 쏟아지는 사람. 내게는 그런 존재가 할머니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 옆에 그냥 산 채로 묻어줘. 할매 없는 세상에서 내가 뭣 하러 살아? 뚫린 게 콧구멍이라 그냥 숨이나 쉬고 뱉는 거지.” 진짜로 철이 없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떠들고 다녔던 얘기다.)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다녔다. 내가 할매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걸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어서. 귀에 피딱지가 얹힐 정도로 이 얘기를 자주 들은 내 친구는 한술 더 뜬 대답을 동요 없이 자동 응답기처럼 뱉곤 한다. “야. 그 얘기 이제 더 꺼내지도 마. 내가 너 묻을 때 앞장서서 첫 삽 뜰 거야.”
내가 ‘혼자’인 상태에 개의치 않는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사실 진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자나 깨나 내 건강, 내 안위, 내 기분의 좋고 나쁨을 나보다 더 자주 살피는 할머니의 사랑 덕에 외로울 틈도,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을 느낄 틈도 없어서. 바쁘고 철없고 어린 부모 대신 나를 키운, 절대적인 사랑 그 자체인 존재가 내 세계에 부재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저항과 두려움이 인다. 할머니가 없는 세계는 빌어먹을 순리처럼 다가올 텐데. 정말 그때가 되면 나는 어쩌지?
답을 찾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왔다. 내 죽음은 하도 자주 생각해서 눈물도 안 나는데(죽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진짜 편안해지는 기분, 느껴본 사람?) 할머니와 그 단어는 정말이지 엮기도 싫다. 미셸은 바스러지고 싶을 때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 피터가 옆에서 손을 잡아줬는데, 나는? 지금이라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는 사람을 찾아 헤매야 하나? 걔한테 연락해 볼까?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나을까? 나 이제 와서 왜 이래? 이렇게 나약한 애였나?
머릿속에서 나뒹구는 말 같지도 않은 잡음들을 가까스로 껐다. 그리고 그냥 매일 조금 힘들고 피곤해도 할머니 집에 간다. 그러려고 할머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에 6년째 살고 있으니까. 아주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일찍부터 또래보다 많이 치른 편인 내가 확실히 아는, 실체가 분명한 진짜 행복은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지난 주말, 할머니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조만간 당신 사진 한 장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무슨 옷을 입고 찍을까? 한여름 되면 너무 더워서 입을 게 없어. 지금이 (예쁜) 옷 입기가 제일 좋은 계절이야.”
그 ‘사진’이 당신의 장례식에 쓸 영정 사진이라는 걸 알지만 할머니도 나도 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가 그 단어에 반응하지 않으면, 슬퍼하지 않으면 할머니가 더 오래 살 것 같아서. 내 욕심이 할머니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할머니가 최선을 다해서 오래 살면 좋겠다. 지금처럼 혼자 사는 건 괜찮은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혼자는 진짜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