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칭찬, 고마움, 작은 변주 같은 것들

요즘은 글이 잘 안 써져요. 그런 때가 종종 있어요. 어느 날은 내 안에서 마구 글감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고, 메모장이나 브런치 초안으로 호로록 장문의 글을 남겨요. 그러다가 또 다른 날엔 서로 나눌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처럼 머릿속이 고요해요.


글 쓰고 싶은 마음은 원래 오르락내리락해요. 그러다가 요즘에는 저점을 찍었던 거죠. 희망적인 건 좋은 컨디션과 루틴을 만들면 등락폭이 작아진다는 거예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자고, 운동을 하고 오면 햇살이 잘 드는 날처럼 기분도 머릿속도 맑아져요. 쉽게 울고 웃고, 심각하다가도 곧 잊어버리는, 나란 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터득하고 있어요.

ch1. 공간을 채운 이야기들


오랜만에 할아버지댁에 다녀오며, 시안을 들렸다 서울로 왔어요. 가마를 가득 채운 수제 타일, 엄마가 만들고 있는 그릇과 컵들, 아빠의 오카리나 연주까지 여전히 계속 새로운 제품과 경험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투자 관점에 치우쳐서 집을 바라봤다면, 마음이 집 가격에 따라 단선적으로 움직였을 거예요. 다행히도, 가족들의 말들들 덕분에, 첫 집 매매에 다각도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음을 말랑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엄마가 시안의 제품들을 가져다 놓아 쇼룸처럼 꾸밀 거라며 집이 너무 예쁠 거라고 매일 말해요. 동생이 문을 열었을 때 타일에 햇살이 들이지는 걸 상상하며 햇살 조각을 모티프로 타일을 만들어 줬고, 아빠는 친척들만 만나면 제가 집 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아요.


그러다 보니 긴 퇴근길도 건강한 산책로로 보이고, 아무튼 긍정 필터가 조금 씌워진 상태예요.

ch2. 쉴 곳,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곳


없는 게 없다는 을지로에서 회사를 다녀요. 회사 근처 도보로 갈 수 곳에서 구실, 이라는 서점이 있어서 약속 전에 잠시 들렸어요. 언젠가 내 공간을 만들면 이런 느낌이려나 싶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저기 툭, 놓여 있었어요.


자신이 책상이란 듯이 놓여 있는 바둑판과 발판, 손그림과 천과 자수 등 손으로 만든 것,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 색감이 예쁜 조명들, 부드럽고 포근한 질감의 소파가 친근했어요. 처음 가보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어요.


책과 음악, 글을 쓸 수 있는 도구들, 몸을 따스하게 해주는 것들은 어디서든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줘요. 이런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관계 맺을까 궁금해졌어요.

ch3.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법


관점수집, 이라는 걸 해보려고요. <쓰는 사람>이라는 책을 쓴 희성 작가님의 북토크를 들었고,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 중 가장 많은 질문을 메모장에 휘갈기듯 적었어요. 저수지의 댐이 무너진 것처럼 생각의 물꼬가 트이는 경험이었어요.


스스로도 몰랐는데, 생각법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최근에 대학생 친구들에게 굿즈 기획 과제를 내줬더니, 일차원적인 아이디어만 제출했어요. 기획을 위한 생각법을 알려줘야겠다 판단했어요.


‘좋은 기획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나올까?’라고, 질문했어요. 그리고 제 답은, 시간을 들여서, 질문을 이어하는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좋은 기획과 기획의 근거가 만들어진다고 안내했어요. 그러면서 잘 전달되었을까, 좋은 창작으로 이어지는 질문이 뭘까 물음표가 한가득 생겼어요.


강의에서 기록을 단정이 아니라 질문으로 하면 뇌에서 계속 그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셨어요. 생각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요. 아예 틀린 소리를 한 건 아니구나 마음을 쓸어내렸어요.


더 나아가서, 기록으로 나와 타인의 생각을 명료하게 하며 나를 지킬 수 있다고 하셨어요. 또 관점을 수집해서 수천 개의 시선으로 과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도요.


들으면서 ‘관점’이라는 단어에 콕 방점이 찍혔어요. 올해의 키워드구나 싶었죠. (매년 한 해의 키워드를 정해 봐요. 관련한 브런치 글을 아래 첨부할게요.)

그리고 이 키워드를 정하는 행위조차 내가 지나간 시간을 바라볼 관점을 정하는 거였다고, 언어화하지 않았을 뿐 작가님과 결이 비슷한 행동과 생각들이 많이 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말맛이라는 단어는 아직 입안에서 굴리고 있어요. 집필 과정에는 말맛을 지키기 위해 책도 읽지 않는다는 말을 하셨어요. 지피티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내 말맛은 뭘까, 내가 보고 느끼고 말하는 이 고유한 감각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질문이 따라왔어요.


살면서 또 다른 시점에 들으면 새롭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올해는 추사 김정희, 팀원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 사람들부터 동경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관점을 수집하며 보내볼래요. 다음으로는 저만의 말맛도 찾고 싶어요.


꼭 그러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브런치북부터 만들었어요. 수십 개의 관점들을 모아보는 게, 올해 즐거운 프로젝트예요. 조만간 첫 글을 올려볼게요.

사인을 받으며, 듣기 전과 후가 달라지는 강의였다고 말씀드리자, 기록의 전과 후가 다르다는 걸 경험해 보라고 써주셨어요.

ch4. 느린 콘텐츠를 만들 자유


내 색을 잃지 않을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종종 질문해요. 요즘 제 콘텐츠에는 나 나름 잘 살고 있다, 는 은근한 자랑이 묻어있다고 느껴요.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콘텐츠를 만드는 거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도 자랑 콘텐츠보다는 말랑말랑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콘텐츠 전략이랄 게 없고, 그냥 내 마음이 내킬 때 일상의 생각을 엮어내요. 돈이 벌리는 행위가 아니라서, 오히려 자유롭게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요. 협찬이나 광고비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좋겠지만, 아니라서 오히려 재밌기도 해요. 무명일 땐 유명을 원하고, 유명인은 무명을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무명은 무명대로, 유명은 유명대로 즐길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ch5. 할아버지의 마음은 누가 걱정해 주지?


올해 94세인 할아버지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철두철미한 분이에요. 젊은 시절에 제련소에서 노조위원장을 하셨는데, 그 시절에는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짱짱했다고, 엄청났다고 해요.


지금도 한국의 칸트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아무튼 남다른 점이 있어요. 외숙모가 빨래를 널어놓으면 잘 마르는 각도로 고쳐 널고,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제 근황을 정확하게 알고 계세요.


매일 새벽 러닝을 하고 식사 겸 반주로 돼지고기와 소주 반 병을 매일 드세요. 이 조합은 수많은 테스트의 결과로 가장 소화가 잘되고 조화로운 것으로 찾았다고 하셨어요.


그런 할아버지는 요즘에 부쩍 울적해하시는데요. 열의가 넘치던 젊은 날이 다 지나가고, 아흔 중반이 된 나이를 살아가면서 친구들이 진작 다 세상을 떠나서 심심하다고 하세요.


그럼 걱정을 하면서도 나이 들면 원래 조금 더 외롭고 울적하고 그런 거라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촌 언니 오빠들이 할아버지를 매달 더 자주 찾아뵙고 돌아가며 날을 정해서 영상 통화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한참 어른인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봐줘야 한다고 여기고, 당연하게 그 방법을 고민하는 언니 오빠들이 멋졌어요.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에는 고요하게 쉬는 시간이 그리워져요. 그럼 약속들을 취소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요. 근데 운동 한 시간 하고 나면 바로 누구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이 금방 컨디션이 좋아져요.


좋은 컨디션을 위한 팁이 있나요? 소통하고 싶어서 주제를 던져봐요. 아래 설문에 접속해서 독자분들의 일상을 남겨주시면, 제가 감사히 잘 수집해 볼게요.

햇살, 달고나, 아이스크림, 온통 주황색의 다과까지! 좋았던 순간들 공유해요.
귤껍질 드림
essayhe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