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얘기를 더 해볼까 합니다. 저는 무명의 일개 블로거이지만, '글'을 대하는 철학까지 없는 건 아닙니다. 개똥에도 철학이 허용되는데, 저는 왜 아니겠습니까.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불편'을 감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글을 읽는 이유 또한 '불편'을 감각하기 위해서입니다. 타인의 어휘를 제가 이미 가진 어휘들과 조화시키기 위해선 불편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진귀한 소수의 활자 중독자분들은 예외에 해당합니다. 글을 오래 읽는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써티랩 뉴스레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글'을 통해 감각하곤 합니다. 그런 경험 한 번씩은 다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던 어휘들이 오늘날에는 부자연스러운 어휘가 되어버린 경험. 제철을 놓친 부자연스러운 어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때론 과격하게 적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을 '말'로 다그쳐도 쉽게 변화를 추동 시키기 어려운데, 제 진단은 '글'을 통한 긴 호흡의 사유와 여유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은 불편을 감각하기에 좋은 도구인 것입니다.

한편, 저는 독서모임 예찬론자 그룹에 속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최근 10년 동안 읽는 모임에 참여하는 일을 쉬지 않았더군요.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일은 글을 함께 읽고 생각하는 작업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어휘를 점검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 어휘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건 나 자신을 더 적당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불편과 불편이 만나도록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게 바로 독서모임인 것이지요. 타인의 "이의 있습니다"는 제게 약이 됩니다. 이의는 불편하지만 불편하기에 자세를 고칠 수 있습니다. 약은 쓴 법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로 알려진 문구는 이 상황에 가장 정확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독서는 박식한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그리고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저는 이 문구에 제 철학을 멋대로 덧붙이고 싶습니다. "독서는 나 스스로 불편하게 함으로써 박식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토론은 나로 하여금 타인의 불편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며, 글쓰기는 불편을 짚어내어 기록하게 함으로써 나를 더 정확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베이컨은 불편의 진가를 왜 빼먹었을까요, 불편은 가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변호하고자 합니다. 저는 죽기 전까지 글을 읽고 쓸 생각입니다. 수많은 불편을 만들어내고 감수하겠지요. 불편을 토로하고, 불편을 발견하여 기록해 둘 생각입니다. 저는 불편이야말로 (편리를 추구한 인류의 역사, 즉 세탁기나 건조기의 발견, 엘리베이터의 발명, 에어컨 문명의 발전 사례와 같이) 우리 사회를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와 같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에게 관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여 큰 불편을 막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불편을 당부드립니다. 오늘도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4년 전 첫 직장을 잡고 들떠있는 저에게 친오빠는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일이 힘든 건 참아도 널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 건 참지 마." 그 말을 들은 사회 초년생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알았다며 당차게 대답했었죠. 하지만 얼마 전 대표님으로부터 불편함, 아니 모멸감을 느끼고도 그 감정에 대해 선뜻 말하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날 퇴근길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이 불편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버려진 꽃으로 천연 염색을 하는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강사님이 말씀하시던 '꽃 쓰레기'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생소하더군요. 낯선 단어를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도 보잘것없이 버려진 생명에 작은 희망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듯했죠.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회사에서 있었던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제 불편엔 부자유, 불안, 분노, 답답함이라는 단어만 존재했습니다. 긍정의 언어는 찾아볼 수 없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편이라는 감정에 긍정의 언어를 더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용기와 희망 같은 것들이요. '불편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면 그것은 모두의 희망이 된다.' 정도의 조합이 될 수 있을까요.

개인의 감정은 때론 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저 개인 간의 불편이 아닌 공동체, 도시, 사회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불편일 수 있죠. 대표님에게 불편한 감정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회사의 곪아있는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을 넘어 조직의 불편한 문제였기에 내 한 마디로 과연 회사 시스템이 바뀔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뒷걸음쳤던 거죠. 그 후 대표님으로부터 뒤늦은 사과를 받고 답변 끄트머리에 이런 말을 남겨두었습니다. 주먹구구식의 일은 참아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요.

우리는 기어이 불편을 말하고 함께 개선하려는 움직임 즉 '불편을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불편이 우리의 불편이 된다면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은 회사에서 어떤 불편을 느끼고 있나요? 그 불편에 어떤 긍정의 언어를 붙여 우리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얼마 동안 서울의 지하철은 불편의 얼굴들로 가득 찬 출근길이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지하철 시위로 지하철이 멈춰 서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갖가지 불편을 드러냈습니다. 회사에 지각할까 봐,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저마다의 사연이 불편감을 숨기지 못하고 튀어나오지요. 누구나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 ‘불편’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법안 원문 읽기 모임’이라는 이름부터 불편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잘 모르고 게워내는 분노들이 공감과 이해로 치환되길 바라며, 무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었달까요. 이번 주제로 교통약자 이동권을 공부하며 휠체어를 타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을 모셔 두 사람이 매일 같이 겪어야 하는 불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시절엔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어요.", "장애인에게 이동의 권리는 결국 교육의 문제이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생존과 생업의 문제입니다."

평생 약자이기만 한 사람도 강자이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가 나이 듦을 피해 갈 수 없다면, 모든 인간은 100%의 확률로 ‘교통약자’가 되는 셈이지요. 불편이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불편해하며 살다가는 우리도 언젠가 얼굴 찡그리며 큰코다칠지도 몰라요.

어떤 불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까지의 사연을 조금만 더 들을 수 있는 인내를 갖는다면, 그 외침을 나를 괴롭히는 소음이 아닌 고통 속에 발견된 신음으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효율과 편리의 체제 속, 우리가 정말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되물으며 이런 기도를 해봅니다. “쉬운 대답과 피상적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불편함으로 복 주시길. 그래서 마음속 깊이 사랑을 추구할 수 있길. 정말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충분히 어리석기를.”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 입니다. '성 인권'이라는 낯선 단어를 설명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의 핵심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성 인지 감수성을 키우자는 내용이죠. 독서를 하면서 제 안에 박혀 있던 고정관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약한 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죠. 약한 자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고 배워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건 명백히도 잘못된 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다. 밤 열 시가 넘어 혼자 집에 들어가는 여성은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다라는 잘못된 생각들이었죠.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네, '해'준 겁니다. 장애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 나이가 든 사람들, 아직은 멋모르는 어린이들, 조심할 것이 많은 여성. 제 머릿속에 사회적 약자들은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사회적 약자를 나보다 못한 처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오만하고도 자만한 고정관념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의 삶을 안쓰럽고도 불쌍히 그리고 불행하게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요? 제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의 끝이 아무래도 이 모양새였을 것 같습니다. 불편한 이들의 삶을 보호하고, 도와주면서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만족하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요. 치를 떨 만큼 정말 너무 불편했습니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 - 헬렌 켈러

우리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몸이 불편해도, 나이가 들어도, 나이가 어려도,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런데, 이들의 불편을 불행으로 여기는 사회가 그들의 일상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있진 않았는지 생각해 봤는데요. 불편하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일까요? 그런 사회 자체가 오히려 불편하고, 불행하다 느껴집니다. 우리는 건강에 따라, 나이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모두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편하면 불행할 것이라 지레짐작하는데요. 불편함이 결코 불행을 불러오진 않습니다. 다만, 불편함으로 인한 차별과 불공정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쩌면 불편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앞서 소개한 책에서 성 인지 감수성을 갖는다는 건 '일상적 감각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그리고 노약자로서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불편한 일들이 어떠한 권력이나 힘에 의한 것인가?'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우리는 함께 행복하기 위해 마땅히 불편해야 합니다. 불편하다고 불행한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