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NDERLESS,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STYLING BOX

vol.67

GENDERLESS STYLING

EDITOR'S LETTER

‘젠더리스’, ‘젠더 뉴트럴’ 등 성별 카테고리를 없애는 몇 가지 키워드들이 있죠. 매니시한 수트를 입은 여성들이 당연해진 것처럼, 이제는 이런 키워드들도 진부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트렌드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남녀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도, 매거진들도 굳이 ‘젠더리스’라고 콕 집어서 칭하지 않을 정도이죠.

‘성별의 경계를 부순다’, ‘중성적이다’라는 말은 패션계에서는 이미 무의미하고 구시대적인 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두 개의 성을 이분법적으로 논하기보다는 아예 그런 논쟁에서 탈피하여 ‘제3의 성’으로 나아가는 양상을 띠고 있죠. 반바지든, 치마든, 하이힐이든, 특정 성별이 입어야 하는 옷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저 ‘나‘의 개성을 잘 표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굳이 이름하여) 젠더리스’.

남성복이나 여성복으로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편협하고 촌스러운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선뜻 편견 없이 옷 입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아티스트들, 그런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젠더리스한 그들의 스타일링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젠더리스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반가운 콘텐츠가 될 것!

남자가 페미닌한 착장을 입거나 여자가 보이시한 옷을 입는 것. 이것이 젠더리스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는 건 1차원적인 발상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진짜 젠더리스’는 통상적인 성별에 대한 모든 벽을 허물고 순수의 상태에서 스타일링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남자 아이템, 여자 아이템을 구별하는 사고 자체가 젠더리스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죠.

하얀 백지의 상태, 즉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스타일링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습니다. 도화지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듯 스타일링하다 보면, 비로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어요. 진정한 패션의 본질,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에 가까워질지도. 많은 분들이 젠더리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면 옷을 만드는 사람도, 입는 사람도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 있나요. 저는 ‘젠더리스’를 성별은 물론 인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합니다. 샤넬 트위드 자켓을 입은 GD의 스타일링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럽고도 모호한 아름다움.

젠더리스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경계 없는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거죠. 특히나 근래에 와서는 남성들이 과거 ‘여성복’이라고 불리던 아이템 범주에 도전하고는 하는데요. 좀 더 다채로운 스타일링이 가능해지고, 섹시하고 쿨한 무드를 더할 수 있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

음, ‘유돈초이’와 ‘톰브라운’이 생각나는데요. 먼저 유돈초이의 중성적인 룩들은 제가 평소 너무 사랑하는 분위기 그 자체입니다. 움직임에 제약을 주지 않는 와이드한 핏. 이들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다독여주는 은근한 섹시함까지, 처음 본 순간 젠더리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죠.

배우 봉태규가 톰 브라운의 치마를 입은 일화도 제게 영감을 줬는데요. 왜 치마를 입으시냐는 질문에, "아들이 올해 7살이 되면서 파란 옷만 입고 로봇 장난감만 가지고 논다. 교육상 아빠로서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성별이 결코 중요하지 않음을 교육하고 싶었다고 해요. 남성 또한 핑크컬러를 입을 수 있고, 특정 성별을 위해 만들어진 옷 따위는 없다는 것. 제게도 어린 시절에 이 사실을 알려줬던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더 멋지게 자랄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답니다.

릭오웬스(Rick Owens) 맨즈웨어, FW 20/21. 컬러감, 실루엣, 아이템 활용 등이 눈에 띕니다. 번개 맞은 듯 뻗친 헤어와 스킨헤드 스타일에 바디 실루엣이 드러나는 과감한 스타일, 여러 겹의 레이어드와 컬러 조합이 시선을 사로잡죠.

오롯이 룩의 밸런스와 완벽도를 위한 스타일링에 집중한 그 모습에 반했습니다. 모든 통념을 깨뜨리고 브랜드가 가진 색깔만을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물론 저는 정말 오래전부터 젠더리스 스타일을 좋아하긴 했다만. 릭오웬스 컬렉션 덕분에 젠더리스에 단단히 매료당한 건 사실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바라간(BARRAGÁN)과 바퀘라(VAQUERA)! 지금 가장 섹슈얼한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신체의 일부분의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거나 오간자, 쉬폰 등의 소재로 시스루를 통해 관능미를 드러내죠. 자세히 보면 체스트 쪽에 슬릿이 들어가는 디테일들, 크롭한 기장감, 그리고 퍼프와 진주가 들어가는 블라우스나 하이힐 등. 젠더리스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조화롭게 녹여내는 모습이 황홀할 지경입니다.

하나씩 도전해 보는 재미.

런웨이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나이, 성별, 연령의 모델들. 젠더리스는 이미 트렌드가 아닌 시대정신의 반영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상화되는 데 까지는 아마도 조금의 시간이 걸리겠지요. 이에 대해 이고진 패션 아티스트들은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공평한 것. 지금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