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날 있잖아요, 무심코 읽기 시작한 시집의 어느 페이지에 온통 휩싸이는 그런 날. 이 시를 읽은 하루가 꼬박 그랬답니다. 시 속의 화자가 “너의 이십대는 어땠어?” 이렇게 묻는 것 같았어요. 그와 날이 새는 줄 모르고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 같았어요. 몇 시간을 떠들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아득해지는 것 같았어요. 흔들리는 기억의 조각을 혼자서 어루만져보는 것 같았어요.
스물 몇 살, 그때의 저는 몇몇 친구들과 뭉쳐 다녔어요. 동전처럼 굴러다녔어요. “우리 홍도 갈까?” 그렇게 말해놓고 그날부터 우리는 ‘홍도 4인방’이 되었지요. 누구는 일을 가졌고 누구는 일을 갖지 못한 날들이었어요. 퇴근을 하면 홍도 4인방은 벌써 내 방에 들어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패를 떼고 속옷만 입고 방안을 돌아다녔어요. 우리는 배달음식으로 방바닥을 어질렀고 홍도는 가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내 방은 자꾸 우리의 방이 되어가고, 우리의 방은 밥물처럼 끓어 넘쳤어요.
홍도 4인방은 지금 각자의 집에서 살아요. 어쩌다 전화로 밥 한번 먹자를 반복하면서요. “우리 홍도 갈까?” 이제는 아무도 이 말을 하지 않아요. 우리의 아득한 젊음이 뭉클하게 묻어 있는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거예요. 마치 서로를 옛날 그 방에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요. “스물 몇 살 때 우리가 가진 거라곤 복숭앗빛 볼과 양말 뒤꿈치의 감자알 같은 구멍, 곰팡이 슨 냉동 커피, 그리고 유리창을 깨뜨릴 것 같이 가파른 호흡이었다”라는 문장에 오래 붙들려 있다 보면 보여요. 방식과 태도는 서로 다르지만 이십대 특유의 혼란과 그림자가 보여요. 이 시에는 젊음의 방황과 그 시간을 견디는 안쓰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읽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이 시집을 들고 어둑한 구석을 파고들어가보세요. 어둠의 질감, 어둠의 억양, 어둠의 굴곡, 어둠의 무덤, 어둠의 비린내, 어둠의 분비물과 한참을 뒹굴고 나면 다시 환한 곳이 그리워질 거예요. “우리는 그림자에도 심장이 있었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주욱 긋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