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Season 6  vol 40. 💡2026.2.20.~2.26.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북토크
'나의 설 이야기' 모음

입주자님 안녕하세요! 플랫팀 김서영 기자입니다. 모처럼 찾아온 연휴 잘 보내셨나요?

플랫레터 이번 호는 입주자님께 보내는 초청장입니다. 올해 플랫은 출판사 김영사와 함께 입주자 이벤트, 북토크 시리즈 '읽는시간'을 진행할 예정인데요. 오는 3월 11일, 첫번째 '읽는시간'이 찾아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얼른 신청해 주세요! 

자세한 안내, 바로 이어집니다🥰👍 


플랫팀은 그동안 도서증정이벤트, 뉴스레터의 ‘플랫한 문화생활’ 코너 등을 통해서 ‘책’을 매개로 입주자님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희가 골라온 책에 좋은 피드백을 주시는 입주자님들께 감사했지만, 종종 아쉽기도 했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혹시 입주자님들도 저희가 소개한 책을 읽고 밑줄 긋고 혼자 생각하다가 그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질문들을 품고 계시지는 않을지요. 저희 역시 레터에 한 번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책들이 여럿이었고요. 어떻게 접점을 마련해볼지 고민하다가 책을 매개로 오프라인에서 만날 자리를 마련해보면 어떨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저희와 함께 책을 읽어보지 않으시겠느냐는 제안을 드려봅니다. 젠더 분야에서 좋은 책을 많이 내시는 출판사 김영사와 함께 협업을 준비했고, 올해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책을 읽고 저자와 플랫팀과 함께 이야기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로 김영사와 플랫팀이 고른 책은 교제폭력을 다룬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입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폭력이 시작되고, 강압적 통제가 어떻게 관계를 지배하며 어떤 대책이 가능할지를 묻는 내용이에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좋은 3월, 저자인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님의 이야기도 듣고 플랫팀과 입주자님들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합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참가비는 없지만 미리 책을 구입해서 읽고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플랫 X  김영사 <읽는 시간>

텍스트를 넘어, 지금의 질문을 천천히 나누는 시간
책 속에 담긴 여성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다시 읽는 북토크 시리즈

📚 첫 번째 책 ,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왜 아무도 막지 못했는가” 
친밀한 관계 폭력, 질문을 바꾸다
강압적 통제는 어떻게 관계를 지배하는가 

친밀한 관계 폭력의 원인과 실태를 들여다보고, 
실질적 대책을 찾는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  

저자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이 '강압적 통제' 이야기를 나눕니다. 
 

  • 일시 및 시간  : 2026년 3월 11일 (수) 19:00~20:00
  • 장소 : 경향신문사 7층 여다향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3)
  • 모집 인원 : 50명 (선착순 마감)
  • 참여 비용 : 무료 
  • 신청 방법 : 위 포스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해 신청 접수로 이동  




이번 호는 특별히, 플랫 입주자님들이 보내 온 명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희 집을 말씀드리자면, 할머니가 정말 작은 시골 마을에 사시는데요. 그 마을에서도 이제 명절에 차례 지내는 집이 없다고 해요. 대신 일년에 한번씩 모여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외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게 마을의 유행(?)이 되고 나서야 저희 집도 명절 차례가 없어졌습니다. 사람은 언제 바뀌는가, 또 문화와 전통은 어떻게 바뀌는가를 생각헤 보게 됐어요. 전통이란 것도 결국 피어 프레셔의 일종인 것일지... 점점 '명절'보다는 '연휴'에 가까운 의미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절과 설날에 대해 더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아래 '의견 남기기'를 통해 들려주세요!

우리집이 화목하지 않은 이유 중 명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걸 어른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요? 어릴때부터 명절이면 남자 어른들은 술마시고 숙모랑 엄마만 종종거리며 일하는 꼴이 너무 보기 싫었는데 아직도 명절에 누가 오네 누가 안오네 누구는 차례 준비 다 한 뒤에만 오네 하고 궁시렁대는 엄마아빠가 너무 짜증나서 쓰는 글... 아빠 그래서 우리집에 아무도 안 오는거야 부침개에 절하고 잔소리 듣기 싫어서!!

올해엔 친정을 설날 당일에 가게 되었다. 손꼬락이 아파 떡국 끓이기 힘들어 하는 엄마를 위해 식당에서 사먹자고 내가 크게 쏘겠다며 효녀처럼 얘기했지만 설날 당일에는 점심시간까지 식당 휴무인 곳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손꼬락 아픈 친정 엄마의 떡국을 먹어야 하는 상황 이다. 나는 끝까지 불효녀 인가 보다. 최대한 빨리 가서 우리 가족과 동생네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먹을 떡국을 손꼬락 아픈 엄마와 함께 끓여서 먹여야겠다. 보고싶은 울 엄마의 아픈 손꼬락 ~
 
엄마와 몸싸움을 했다(?) 몸무게 한 번 재보자고 강요하는 엄마와 결코 지지 않고 버티는 나.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몸무게 숫자가 엄마한테는 많이 중요한가보다. 이번 명절에는 양가 친척들에게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무게 숫자로부터 멀어진지 오래인 나는 그 이야기가 칭찬으로 들리지도 않고 그저 나를 지나가는 문장 하나일 뿐이다. 

살이 쪘다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 명절 전에 벼락치기로 운동을 하던 시기가 있다. 이제는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말이든 툭, 하고 쳐낸다. ‘그러세요 그럼’이라는 자세로 상대방의 말이 나에게 닿지 않도록. 대신 서로 즐겁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애들은 항상 '작은 밥상'에서 따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상에 어린이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성인인 사촌 언니도 저희와 함께 밥을 먹었거든요. 어릴 땐 그게 성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정말로 저희는 집안의 막내들이었고, 어른은 어른상, 아이는 작은상이라는 구분이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제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땐, 집안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명절 식사는 외식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상을 차리는 일도 사라졌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집에서 밥을 먹는 명절이 이어졌다면 지금도 전 '작은 상'에서 밥을 먹고 있었을 것 같아 씁쓸합니다. 

사실, 저희 집 명절문화는 무척 빨리 바뀐 편이예요. 명절에 외식을 한지도 20년이 넘었으니까요. 덕분에 친구들은 명절 스트레스 없는 부러워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우리집은 성평등 한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네'라고 답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평균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역시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상상이 되지 않는것 같기도 해요. 완전히 성평등한 세상을 본 적은 없어서요. 

언젠가 명절에 남자는 남자일을 하고, 여자는 여자일을 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예전엔 여자들이 따로 밥을 먹었대' 같은 이야기가 괴담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모두 즐거운 명절 되세요!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언론은 ‘차례지내는 풍경’을 여전히 명절의 정상적인 모습처럼 반복적으로 보여줘요. 뉴스에서는 차례상 물가를 전해주고 명절 특집 기사에는 차례를 준비하는 가족의 모습이 관성적으로 등장하고요. 이번 설에는 두쫀쿠를 차례상에 올리거나 AI 영정사진을 차례상에 활용한다는 내용도 ‘변화한 차례문화’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지금 현실을 반영하고 있나요? 또 옳은가요? 차례문화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성별분업으로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과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전제돼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게 보편적인 풍경도 아니에요. 찾아보니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63%나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맥락이 삭제된 채 차례가 여전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풍경처럼 전시되는 것은 너무 불편합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명절, 정상가족 바깥에서 맺은 관계의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휴식과 재충전에 집중하는 연휴 등 다양한 명절의 모습이 이미 존재해요. 언론이 이런 대안적 명절문화를 더 많이 소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플랫이 해주세요.


이번 주에는 김연서 인턴기자가 영화를 소개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한 입주자님은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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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균열이 생긴 가족이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래 전 어머니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던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카드)가 배우가 된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에게 자신의 신작 주연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며 시작됩니다. 유명 영화 감독인 동시에 가족에게 상처를 남긴 아버지. 노라에게 그의 제안은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균열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결국 노라는 분노하고 말죠.


무대 공포증이 있는 연극배우 노라는 매번 무대에 오르는 일이 고됩니다. 그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신의 문제(무대 공포증)를 언젠가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불안한 상태를 걱정하는 동생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 릴리오스)는 종종 언니 노라에게 “괜찮냐”고 묻습니다. 노라는 창백한 표정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합니다. 해맑게 웃는 그녀의 표정과 반대로 그녀는 괜찮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동생 아그네스의 노력으로 노라는 자신이 외면했던 아버지의 신작 시나리오를 읽게 됩니다. 노라가 읽게 된 시나리오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할머니의 이야기였는데요. 구스타브는 3세대가 지내온 집에서 벌어진 트라우마의 역사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자신을 위한 영화라던 아버지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닫고 노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합니다. 구스타브가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을 끝으로, 가족의 상처가 예술을 매개로 봉합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 속 ‘노라’는 연약하지만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회피하는 태도는 자칫 아버지와의 갈등을 방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라의 이런 태도는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려왔던 과거에서 기인합니다. 노라는 동생 아그네스에게 같은 유년시절을 보낸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너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이에 아그네스는 “나에게는 챙겨주는 언니가 있었어”라고 말하기도 하죠. 현재 노라가 무너진 것은 과거에 너무 많은 것을 지탱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센티멘탈 밸류>는 예술이라는 매개가 상처를 낼 수도 있지만 구원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러닝타임 2시간 14분 동안 상처와 구원 사이를 오가던 영화는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기에 알 수 있는 무언가. 가족들끼리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바로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가 아닐까 싶습니다.


🌹2월에도 플랫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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