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년 동안 겨우 열두 개의 (나의) 마음들이 해준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름 없는 마음들이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입니다. 이 고단하고 지난한 치유의 과정을 지속하기 위해 용기의 근육을 다짐처럼 키우고 있는 나날입니다.”
사진. 정해민
2020년 <관상식물>로 첫 개인전을 가졌던 민정화 작가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이 이번에도 팩토리2에서 열립니다. 어릴 때 이야기책을 탐독했던 어린이는 십 대에 막 접어들어 마주한 세상과 일상이 그리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다잡습니다. 조금은 시시한 세상을 자신이 상상했던 이야기로 채워보기로요. 그리고 결심합니다. 여생 동안 열여섯 개의 이야기를 만들겠다고요. 열여섯 개의 플롯도 이미 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각각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마련한 작가만의 서랍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채우며 정리가 되는 대로 하나씩 세상에 내놓으면 되는 것이지요.
베를린에서 생활했던 시절을 지나 시골로 생활공간을 옮기면서 작가의 일상과 마음에는 여러 변화가 생겼습니다. 현재 독일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사는 민정화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면 도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동네를 돌며 달리기로 몸을 데우는 동시에 이곳저곳 가득한 식물을 비롯한 자연을 마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일상을 채우면서요. 그러면서 첫 번째 이야기를 공개하기로 합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이야기를 자신 내면 깊은 곳에서 그동안 모른 척했거나 돌보아주지 않은 것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이는 것으로요. 각각의 마음은 긴 문장에서 시작해, 돌보고 다듬을수록 계속 덜어내어 마치 하나의 시가 되어 작가의 마음에, 그리고 지면에 열두 개의 이야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진. Axel Lambrette
상처 입은 마음을 위한 지붕.

시원한 바람, 고약한 소문, 보드라운 저녁 빛도
처음 겪은 배신처럼 아픈 마음에는

아름다운 거짓말도 막아줄
가림막이 필요하다.

민정화, 그림책 <움직이는 마음들> 중 <마음 #9> p. 56.

2020년부터 <움직이는 마음들> 연작을 시작해온 민정화 작가는 자신 내면의 이야기를 그 어느 때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마주한 여러 마음을 만나고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그림과 글로 천천히 풀어내었습니다. 이번 <움직이는 마음들>에서는 열두 가지 마음의 각 이야기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많은 마음, 그리고 마음이 떠돌던 검은 풍경을 그림과 책 그리고 도자기의 형태로 전시합니다.
사진. 정해민
<움직이는 마음들>은 작가 내면에 존재하지만 잊었거나, 숨겨져 있거나 혹은 스스로 방치해 놓았던 마음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연작입니다. 마음에 번호를 붙이고, 그들의 상태를 세심히 살핀 뒤, 적절한 보존 방법을 기록하는 작업 과정은 아주 개인적인 하바리움(Herbarium, 식물표본실)을 만드는 채집의 과정과 흡사합니다.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흙과 돌에서 나온 안료를 주재료로 선택했습니다. 형태도 색도 질감도 알 수 없는 마음들이 그들과 매우 닮았기 때문입니다. 고요한 흙과 돌의 색과 질감은 상상하던 마음을 끄집어내는 데 적합했고 또한 색의 출처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작업의 기쁨 또한 컸습니다.
사진. 정해민
흙을 사용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가가 직접 도자기로 만든 오브제 작업도 선보입니다.
또한 가구 디자이너 이담과 공동으로 작업한 촛대 시리즈, 그리고 프린팅 에이전시 SAA와 함께 흙 안료를 사용한 실크스크린 프린트 에디션도 함께 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토록
토로록

마음 하나 멀리서
깨지는 슬픈 소리.

톡.

민정화, 그림책 <움직이는 마음들> 중 <마음 #9> p. 56.

"지난 2-3년은 -아마 모두가 그랬듯이- 낯선 두려움과 고립으로 절망감과 출구 없는 막막함을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치닫는 감정의 바닥에서 톡 톡 깨지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나날들은 길었고, 그 시간 동안에는 깨져서 바람에 휩쓸리는 마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상자 속에 깊이 넣어두고 잊고 싶어 했거나, 방치하였거나, 영원히 버리고자 했던 마음들을 다시 들추어 마주 보고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외로운 풍경에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사진. 정해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민정화는 회화, 그림책, 프린팅 그리고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업합니다. 2006년부터 독일에 기반을 둔 작가는 베를린에서 가까운 시골 동네에 살며 작업하고 서울에 오가며 활동합니다.
가내 수공업 형태의 리소 인쇄로 만들어온 그림책과 프린팅을 주로 작업하던 작가는 2018년부터 <관상식물> 회화 시리즈로 베를린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20년부터 회화, 그림책, 도자기 오브제들로 작업해 온 <움직이는 마음들>로 2022년 팩토리2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전시명  움직이는 마음들
작가  민정화
장소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기간  2022. 11. 11.(금)-12. 11.(일)
오프닝  2022. 11. 11. 오후 6시
관람 시간  화-일요일, 11-19시(월요일 휴관)
아티스트 토크  2022.12.3.(토) 오후 3시

기획  팩토리2 (factory2)
진행  김보경, 이경희, 이지연
그래픽 디자인  김보경
설치도움  손정민
주최  팩토리2 (factory2)
후원 STIFTUNG KUNSTFONDS, NEUSTART KULTUR

예술을 한두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이번 민정화 작가의 작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힘을요. 오는 12월 11일까지 팩토리2에서 마련한 <움직이는 마음들>의 전시에 온 관객 여러분 또한 그러한 힘을 느끼길 바랍니다.
기획 팩토리2 
진행 김보경, 이지연
디자인 유나킴씨
에디터 뫄리아
디렉터 홍보라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factory2.seoul@gmail.com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02-733-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