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쥬입니다. 얼마 전 몇달 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어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었는데, 제 주위에 많은 친구가 이 영화를 보고 호평을 남겼습니다. 특히 사랑으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는 인물 표현에 다들 감탄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참 신기하더라고요. 삶의 궤적이 달라도 같은 예술 작품을 보고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많이 닮았다고 느낍니다. 취향은 달라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편지도 그래요. 각자 선호하는 음악이 이렇게까지 다르구나, 하고 놀랐거든요. 이번 주말엔 친구들이 추천해준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볼래요.
오늘의 흠터레터는?
죠리퐁의 출근송 / SCRUBB - ทุกอย่าง(Everything)
전사빠의 바다 건너 최애 / Megan Thee Stallion & Dua Lipa - Sweetest Pie
박만쥬의 자랑합니다, 제가 한 건 아니지만. /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윤만세의 완전진짜너무진심 / 기묘한 음악의 기묘한 역주행
SCRUBB - ทุกอย่าง(Everything)
행복에 대해 빈번히 고민하는 7월의 마지막 주에 편지를 씁니다. 요즈음 저는 별일 아닌 일에도 감탄을 입 안에서 굴려요.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들로 일주일을 채웁니다.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날이 개거나 무궁화와 신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쉽게 하늘에 닿아요. 그리고 동시에 행복해서 불안해요. 지금의 만족과 평온이 연유 없이 주어진 거라면 육하원칙 없이 불행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고진감래보단 새옹지마란 말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같은걸요. 잔잔한 불행에 마라 맛을 입혀주거나 낙담의 수위를 높여줄 장치인, 짧은 행복 주간에 들어선 걸까 봐 두려워요. 늘 첫째 소원은 행복이었으면서 막상 그 언저리가 만져지자 허위 매물이라 의심하는 꼴이에요.

행복은 끊겨가면서도 계속되는 것이랍니다.’(Spica), ‘구깃구깃한 행복을 좇아가고’(복숭아). 행복에 대한 선인의 지혜를 지식iN 대신 노래에서 구했습니다. 좋아하는 밴드인 스핏츠(Spitz)에다가 ‘행복, 가사’를 덧붙여 검색하니 이런 구절들이 걸렸습니다. 끊겨가도 행복이 지속되는 거라면, 번듯하지 않은 모양새의 행복이라도 따라간다면, 뭐든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유 없이 기쁜 이번 7월은 저의 한 시절의 에센셜이기도 해요. 그 기억을 유자청으로 재워서 감정의 월동준비를 하겠어요. 외롭거나 서러운 겨울에는 행복을 집약한 이 유자청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마시겠습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처럼요. 도토리 같은 소담한 행복도 계속 줍고요.


이번 주의 출근송은 태국의 듀오 SCRUBB<ทุกอย่าง(Everything)>입니다. 누구나 들으면 고개 까닥일 편하고 낙관적인 곡들을 불러요. 위에 잠시 언급한 스핏츠와도 비슷하답니다. 언어의 국경 차이에도 스크럽을 들으면 단박에 기분이 좋아져요. 감정이 태도가 되려고 할 때 서둘러 재생하는 ‘기분상쾌송’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요. 곡을 명료히 따라부를 순 없지만,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나면 행복의 방향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마법 같은 듀오입니다. 행복의 빈자리가 사무치는 날에는 유자차를 우려 마시고 스크럽을 들으면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참, 여러분의 기분상쾌송도 궁금하네요. 피드백 코너에 남겨주시겠어요?


뱀발로 스핏츠와 스크럽의 공통점을 엮자면, 미대생들의 청춘을 그린 애니메이션 <허니와 클로버>가 스핏츠의 음악들과 뗄 수 없듯이 태국의 BL 드라마<2gether The Series>도 스크럽과 연이 깊어요. 원작 소설가가 스크럽의 팬이라 드라마 주요 장면에 스크럽의 음악이 나오고 극 중 주인공도 팬이에요. 두 원작자 모두 다 성덕(성공한 덕후)인데요. 마침 드라마와 스크럽 모두를 영업할 수 있는 영상을 발견해 함께 소개합니다.

Megan Thee Stallion & Dua Lipa - Sweetest Pie

지난주 만쥬의 레터에서 환경친화적으로 원단을 아낀 문빈의 의상을 보고 저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꼈습니다. 바로, 바로, 내 최애도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소개하고 싶다는 욕망을요. 그리하여 요즘 뮤지션 중 저의 최애 그녀, Megan Thee Stallion. 메건이 두아 리파(Dua Lipa)와 함께한 <Sweetest Pie>를 여러분께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마녀라는 단어를 들으시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커다란 빗자루에 험악한 얼굴을 떠올리셨다면 이 두 마녀는 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메건은 뱀 마녀, 두아 리파는 거미 마녀로 환상적 팀워크를 발휘합니다. 두아 리파의 노래와 메건의 랩핑이 이렇게 잘 섞일지 몰랐어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조합의 디저트를 맛보기 전, 호기심과 함께 전혀 알지 못하는 맛을 앞두고 약간 걱정도 앞서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맛있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기쁨은 더 배가 돼요. 메건과 두아 리파가 내놓은 파이도 그런 부류의 놀라움을 우리의 혀, 아니 고막에 선사하죠.


혹시 아시나요. 바다 건너 그곳에선 파이가 성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너무 신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그 파이를 감히 맛보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뮤비를 보다 보면 알 수 있으니까. 괜히 마녀의 파이가 아니죠.


이런 마녀라면 어떤가요. 저는 기꺼이 되고 싶을 것 같아요. 기왕이면 문어 마녀가 돼서 뮤비 속 커다란 냄비를 여러 개의 팔로 휘휘 젓는 내 모습, 싫지 않네요. 여러분은 어떤 마녀가 되고 싶은가요.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의 아이돌 데뷔곡이 있나요? 보통은 이런 질문을 듣기 전에는 굳이 어떤 음악을 꼽아서 ‘이게 최고의 데뷔곡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를 듣고 나서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최고의 아이돌 데뷔곡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기준에서요. 멤버가 5명인 것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최근 들어 데뷔하는 아이돌 자체도 늘었지만 아이돌 멤버 수도 늘어나서 이름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도중에 5명이라는 숫자는 반갑고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보았던 후뢰시맨도 5명, 제일 처음 좋아했던 아이돌 NRG도 5명이었던 탓이죠.


데뷔곡답게 청량하고 상큼한 10대의 에너지를 듬뿍 뿜어내는 이 노래는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춘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를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이 담겨있어요. 10대일 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그 나이대의 가수가 불러주니 훨씬 의미 전달이 잘 됩니다. 거기에다 반짝거리는 멤버들의 외모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저는 언제나 쉽게 그룹에서 최애를 고르는 편이었는데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큼은 모두 매력이 있어서 어렵더라고요. 춤, 노래, 외모 모두 완벽한 연준, 이국적인 외모에 강아지 같은 성격이 사랑스러운 휴닝카이, 노력파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인 태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외모의 범규, 순하고 말랑한 토끼형 리더 수빈. 이렇게 멤버 모두가 좋았던 적은 처음이에요!


요즘같이 습도가 높은 날에 청량한 노래는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 거예요. 특히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처럼 에너지 가득한 아이돌 데뷔곡이라면 더더욱이요.


(주황색 글씨를 클릭하면 영상을 볼 수 있어요.)
기묘한 음악의 기묘한 역주행

<기묘한 이야기> 시즌 4가 얼마 전 공개되었습니다. 초기 넷플릭스를 먹여 살렸다고도 평가받는 유명한 시리즈인데 사실 저는 보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케이트 부시 때문입니다. 1985년에 발표된 그의 곡 <Running Up That Hill>이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36년 만에 차트 정상에 다시 올랐거든요.


‘케이트 부시’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조금 기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대학교 때, 정확히는 휴학을 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하던 때, 만난 클라이언트 중에 좀 독특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귀국한 아저씨였어요. 한국에서도 브랜드와의 협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팸플릿 같은 소소한 편집물을 만들어야 했기에 디자인과 학생인 저를 고용한 거였죠. 많은 클라이언트가 그렇듯 그도 작업자 옆에 붙어서 자신의 의견을 바로 반영하기를 원했어요. 학생이었던 저도 혼자 작업하는 게 영 불안했던 터라 그러기로 했죠.


오피스텔에 차린 그의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책에서나 봤던 디자인 가구와 소품이 잔뜩 있었거든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공간이었어요. 의자가 불필요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편집숍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던 시기에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곳이 얼마나 신세계였을지 짐작이 되나요? 그곳에 드나드는 동안 모든 의자에 다 앉아봤다니까요. 그러면서도 너무 티 내거나 감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술, 디자인 운운하며 이래라저래라하는 게 왠지 얄미웠던 이 아저씨가 더 잘난 척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곳에서는 항상 애플 해파리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렀는데요. 어느 날인가 생전 처음 듣는 기묘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훅 들어오는 낯섦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죠. “이게 뭐냐? 이 사람 누구냐?” 물었고, 그는 CD 케이스를 건네주었습니다. KATE BUSH. 그날 그 음반을 빌려 퇴근했고, 집에 와서 CD를 구웠고, 매일같이 들고 다니면서 CD 플레이어가 뜨거워질 때까지 들었습니다.

돈도 없고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잘못했어요···

제가 들은 건 무려 1978년에 발표된 데뷔 음반이더군요. 당시의 기준으로도 수십 년 전 음악이었던 거죠.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케이트 부시가 아티스트 사이에서만 유명한 인디 뮤지션인 줄 알았어요. 이건 어디서 구할 수도 없는 앨범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믿고 있었죠. 어쩌면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그의 감각을 은근히 신뢰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는 사람만 아는 인디 뮤지션인 줄로만 알았던 케이트 부시는 11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여성의 자작곡'을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린 인물이었어요. 게다가 직접 구성한 현대무용을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무선 마이크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해요. 모든 댄스 가수가, 모든 아이돌이 사용하는 그 무선 마이크를 무대에서 처음 착용한 가수가 케이트 부시라니.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 아닌가요? 이제서야 케이트 부시의 정체를 알게 되다니요.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케이트 부시를 알게 된 분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케이트 부시의 첫 데뷔싱글 <Wuthering Heights>도 실은 못지않게 역사적인 곡이니 꼭 들어봐야 한다고요. 무려 36년을 거슬러 돌아온 대세라니. 올드하다는 말을 듣는 저의 취향이지만 오늘만큼은 자랑스러워해도 되겠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 음악 칼럼에 딱 맞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좋은 음악은 죽지 않는다. 보석처럼 조용히 묻혀 기약 없는 발굴을 기다릴 뿐.


흠터레터에서 여러분의 최애를 대신 영업합니다
흠터레터에서 여러분들의 최애 자랑 사연을 모집합니다.
흠터레터의 새로운 코너 <대신 영업해드립니다>에서 보내주신 사연을 바탕으로 최애를 영업해드려요. 연예인, 노래, 콘텐츠 등등 무엇이든 좋아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최애를 저희에게 그리고 구독자님들에게 자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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