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시장 안녕하세요! 하이바입니다. 벌써 2021년의 절반에 다다랐다니, 믿기지 않아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부녀자들을 구독해 주시고, 메일을 읽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6월에는 제 생일이 있어 기다려지기도, 이상하게 긴장되기도 하는 달인데요. 제 생일이 다가오면 동네 시장에 내려가셔서 미역이랑 소고기를 사 오시던 엄마가 보고 싶은 요즘, 지난 주에 이어 '시장'을 주제로 한 글 두 편을 실어 보낼게요. 더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기 전에 선수 칠게요. 제 더위 다 사가세요~!! 😁 TODAY'S PREVIEW 💭 하나, 하이바 💨 의 <스피릿만큼은 제법 장인급> : 어쩐지 수박이 너무 맛있더라... 둘, 까마귀🐚의 <시네마리아> : 죽을 때까지 시장에 안 와도 될 만큼 좋았어요. 하이바 💨 의 <스피릿만큼은 제법 장인급> : 어쩐지 수박이 너무 맛있더라 ▲ 문제의 수박 화채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이어 또 우간다 얘기를 들고 찾아온 하이바입니다. 제가 살았던 우간다의 ‘불렌가
(Bulenga)’ 라는 지역은 우리나라의 용인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곳이었어요. 수도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깡시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높은 건물과 편의 시설들이 즐비한 도시 또한 아니었죠. 하지만 차로 이십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시내’라고 불릴만 한 번화가가 있었습니다. 저희 집 바로 앞에는 아주 조그마한
시장이 있어서 야채와 과일, 달걀 같은 식료품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맨
처음 이사를 마치고 저희 팀은 동네 구경도 할 겸, 그날 먹은 저녁을 만들 겸 다같이 집앞의 시장에
내려가 야채와 과일들을 샀어요. 우간다에서 구할 수 있는 양파는
99.9%가 적양파이고, 우간다의 아보카도 크기는 웬만한 성인 남자의 주먹보다 크다는 사실도
그날 알게 되었죠. 저희 팀은 토마토와 양파, 아보카도를
이용해 과카몰리를 만들어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 후, 저희 팀은 파견 후 처음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생활비를 걷은 지 얼마나 됐다고 ‘엥꼬’가 난
것입니다. 저희 팀은 한 달에 한 번 돈을 걷어 장을 보거나 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다같이 사용했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생활비를 일정 부분 걷어 만든 공금이다 보니 정산이 정확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공금을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오만 실링 (만 육천 원 정도의
금액)이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거예요. 팀원
모두가 머리를 꽁꽁 싸매고 하루 동안의 지출을 계산하고 또 계산해 봐도 엥꼬가 난 돈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숫자와 산수에 약한 저는 혹시라도 제가 야채를 사 왔을 때 실수했을까 봐 계산기를 몇 번이나 두드렸죠. 우간다에서는 아주 큰 대형 마트가 아니면 영수증을 받기도 쉽지 않아서, 영수증을
가지고 금액을 일일히 대조하는 정산 방법도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냥
없는 돈인 셈 치고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계산 실수한 사람을 잡아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생활비 관리를 담당하던 팀원 한 명이 조용히 얘기를 꺼냈습니다. 본인이 아까 수박을 살 때 금액을
착각해서 돈을 잘못 낸 것 같다고요. 원래 수박 한 통의 가격은 오천 실링 (한화 천육백 원 정도) 였는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오만 실링 (한화 만육천 원 정도) 를 내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오만 실링이면 수도에서 고급 요리랑 커피, 젤라또를 삼 층 쌓은 아이스크림까지 먹을 수 있는 금액인데. 그
돈을 주고 수박 한 통을 산 건가? 헷갈릴 것이 따로 있지.’ 하고
화도 났다가, ‘얼마나 헷갈렸으면 그런 실수를 했겠냐. 어쩔
수 없다.’ 하고 체념도 했다가,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오만 실링을 홀랑 받은 과일 가게 아저씨는 뭐야?’ 하고 다시 열이 끓었습니다. 보통
우리 나라에서는 실수로 돈을 잘못 내면 돌려받는 경우가 대다수잖아요.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과자를 만
원 주고 사서 가게 문을 나서면 ‘저기요! 거스름돈 받아가세요!’ 하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에서 만 원 하는 수박을 실수로 십만
원 주고 사먹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사실 눈 뜨면 코 베이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우간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이미 준 돈을 어떻게 돌려달라고 하겠습니까. 내일 날 밝는 대로 과일 가게 아저씨에게 따진다 한들 어깨를 으쓱 하며 기억이 안 난다고 할 게 뻔했어요. 충격에
빠져 팀원 모두가 침묵에 빠진 것도 잠시, 팀원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어쩐지 수박이 너무 맛있더라...’ 그 말을 들으니까 하루 종일
긴장해 뻣뻣하던 몸과 마음이 한순가에 풀리더라고요. 그날 낮에 냉장고에 넣어 둔 수박을 잘라 사이다를
붓고 멋진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수박이 금값을 주고 사 온 수박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모두 ‘맛있다!’를 연발했었던 것이었어요. 그날의
실수 이후로 저를 포함한 팀원들은 돈을 주고 뭔가를 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물건을 살 때에도 옆에 있는 팀원들이 돈을 똑바로 냈는지, 거스름돈은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해 줬구요. 저희 팀은 파견 중반에 적게는 백만 원 단위의 프로젝트부터 크게는 천만
원 예산의 프로젝트도 진행했는데, ‘수박 해프닝’ 덕분에
프로젝트 진행 중에는 큰 문제 없이 정산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 마트와 슈퍼마켓에 들어오기 시작한 수박이 보이기 시작하면 유난히 달고 맛있었던 그날의
수박 화채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들은 눈 뜨고 코 베여 보신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주 어이없는 실수를 해 웃음부터 나왔던 적은요? 아래 피드백 남기기 버튼을 클릭해
구독자님들의 사연을 알려 주세요. 여러분들의 ‘십만 원짜리
수박’ 얘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까마귀 _ <시네마리아> 🐚 할머니의 장바구니 누구나 마음속에 더럽히고
싶지 않은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내게 그런 추억을
간직한 장소가 시장이다. 산책하다 시장을 발견하면 둘러서 길을 가게 된다. 시장에 관한 더 이상의 기억을 덧붙이는 게, 추억을 흐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시장을
좋아하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다. 장을 보러
가는 날이면 할머니가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교실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할머니의 화려한 꽃무늬 장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가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봄이 아니어도 봄 꽃이 핀 것 같고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가장 행복한 곳으로 향한다. 할머니의
온기가 금방 내 손에
전달된다.
할머니가 장을 보는 동안, 나는 개구리나 미꾸라지 같은 것들을 구경한다. 이름을 아는
채소도 괜히 만지작거려보고, 모르는 아줌마의 말에도 귀 기울여 본다.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꽃무늬 장바구니가 멀어지는 것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할머니가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던 시장에도 끝이 보인다. 시장의 출구를 통과한다는 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먹고 싶은 게 생겼다며 할머니의 손을 잡아끈다. 구워지는 호떡을 보며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할머니, 우리 뭐 흘리고 온 건 없겠죠? 할머니가 호떡을 손에 쥐여준다. 할머니의 온기가 호떡으로 대신 채워진다. 우리 다음 주에 또 시장 와요? 할머니가 손에 흐른 설탕을 닦아준다. 그럼. 만약 할머니가 약속이 생겨서 못 오게 되면, 이제 혼자 올 수 있잖아. 호떡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내게 할머니가 말했다. 평상에 앉아 숨을 고른다. 할머니가 내 손을 잡더니 다시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출구에서 입구까지 천천히 손을 잡고 걷는다. 출구로 변한 입구에서 할머니가 집으로 향할지 묻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죽을 때까지 시장에 안 와도 될 만큼 좋았어요. 속으로 생각한다. 천천히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부엌에 짐을 올려두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으로, 나는 나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혹시 남긴 피드백이 부녀자들 뉴스레터 답변란에 기재되지 않길 원하시나요? 그럴 땐, 피드백 마지막 줄에 꼭 비밀이라고 남겨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