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만쥬입니다. 지난주에는 저의 생일이 있었습니다. 여러 친구와 가족에게 축하받았죠. 고백하자면 저는 과거에 한동안 ‘생일 축하’라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태어난 날에 축하를 받아야 하는가?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을 뿐인데 축하할 이유가 있나? 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즐겨 보던 <천재 유 교수의 생활>이라는 만화책에서 생일 축하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 안엔 저와 같은 의문을 던지는 인물이 있었고, 유 교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인간이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는 ‘영역’에 진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사소하다 해도, 60세가 되기 전에 60세를 경험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미지로 가는 위대한 첫걸음이죠!"
내년이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고 주위에 우는소리를 했었는데요, 생각을 바꿔서 유 교수의 말처럼 미지로 가는 위대한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씩씩하게 한 걸음 내디뎌보려 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도 나이를 먹으며 발견한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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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흠터레터는?
죠리퐁의 출근송 / tripleS - Generation
전사빠의 바다 건너 최애 / Billy Paul - Me and Mrs. Jones
박만쥬의 자랑합니다, 제가 한 건 아니지만. / 윤하 - 사건의 지평선
윤만세의 완전진짜너무진심 / 선수와 백수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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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이 전무할 상태에서 MV와 노래부터 전달합니다. tripleS(이하 트리플S)의 <Generation>은 ‘신인’이나 ‘데뷔’에 가까이 붙은 ‘넘치는 에너지, 쨍한 고음, 빠른 템포’ 등을 기분 좋게 배반합니다. 어깨의 힘을 빼고 느슨한 멋으로 승부수를 던져요. ‘좋아요’와 셀카가 가득한 나르시시즘의 세상에서 멤버들은 서로만을 바라보고 춤을 춥니다. 그것도 지하철이나 회사의 엘리베이터 같은 아주 친숙한 장소에서요. 자아도취적인 무대는 눈앞의 관중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숏폼을 타고 전 세계가 팬이 될 수도 있어요. 제목처럼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묶이는 새 세대가 등장한 걸까요? 낮은 목소리에 흥얼거리기 좋은 후렴을 담은 곡은 사람들의 짧은 집중력을 반영한 건지 3분도 채 되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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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설명할 근거를 몰라 장르나 기법이 궁금해졌어요. 인터넷을 뒤졌었죠. MV 공개 후 만 하루도 안 된 지라 공식 앨범 소개를 제외하곤 전문적인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검색 범위를 해외 웹으로 넓히자 짧은 아티클 몇 편과 해외 케이팝 커뮤니티의 글들이 제 앞에 떨어졌습니다. 프로듀서이자 소속사 대표인 정병기 씨의 커리어 설명과 함께 짧은 비평들이 올라와 있었어요. 바다 너머 케이팝 향유자들 덕택에 원하던 정보들을 쉽게 얻었는데요. 이미 케이팝이 전 세계에서 실시간 동기화되는 거대한 산업이란 걸 체감하기도 했어요.
트리플S는 ‘팬 참여형’ 아이돌을 표방합니다. 팬들의 투표나 영업으로 데뷔 및 활동 방향이 가닥 잡히는 게임형 덕질은 일본에서부터 유행해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데요. 게임처럼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되 과몰입을 장려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24인조인 트리플S 내 AAA(Acid Angel from Asia)란 4인 유닛이 이번에 공개된 거고, 이는 데뷔 전부터 팬들의 투표로 구성된 조합이라고 해요. 탈중앙화나 블록체인, NFT 같은 IT 용어들을 아이돌 데뷔 소식과 함께 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가볍게 노래만 듣는 입장에선 복잡한 시스템을 따라가기 벅차기도 하네요.
여자 아이돌 전성기로 길이 남을 2022년에, 작은 소속사의 독특한 신인 그룹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될까요. 모르고 지나치기엔 데뷔곡부터 무척 좋은걸요. 입소문을 타고 순위가 오르고 있어 응원을 더합니다. 수록곡까지 몽땅 듣는 것도 잊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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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Paul - Me and Mrs. Jon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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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고요. 막장 드라마, 재미있잖아요. 욕하면서도 "왜 저런대?"하며 엄마 옆에 앉아 어느새 멍하게 시청하게 되는. 미혼 시절엔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혼도 해보고 이혼도 해본 지금은 이런 금단의 사랑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몰입 가능합니다만, 역시 너무 불편한 이야기는 못 보겠어요. 심장이 물렁거려서요.
2015년, 미쳐 보던 드라마 <애인 있어요>. 외도한 남편과 기억을 잃은 아내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예요. 남편이 뼈저린 후회를 하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모습을 보는 쾌감도 쾌감이거니와, 여주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가책도 피해 갈 수 있었기에 당시 기혼인 저에게 여러모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줬더랬죠.
Billy Paul의 <Me and Mrs. Jones>도 그래요. 순한 맛 막장. 매일 같은 카페에서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그와 미시즈 존스의 이야기. 노래만으론 사실 둘이 어디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의 망상으론 어쩌다 카페에서 매일 마주치며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지만 말하지 못하고 그저 돌아서며 끝나버리는 딱 그 정도.
기혼 시절 꿈에서도 다른 남자와 신체접촉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꿈에서조차 ‘앗차 안돼!’라며, 스스로를 제어했거든요. 그랬던 제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려서 이혼으로 급발진하며 부뚜막 고양이로 등극해버렸으니, 이 정도 노래는 그저 웃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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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노래를 추천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저 또한 요즘 가장 즐겨 듣는 노래이기도 하고, 아직 이 노래가 낯선 분이 있을 것이라는 점, 마지막으로는 저희 흠터레터도 <사건의 지평선>처럼 역주행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다는 의미도 조금은 있지요.
<사건의 지평선>은 축제 직캠 영상을 통해 입소문을 탔지만 제가 처음 듣게 된 건 트위터에 여러 팬이 올려둔 편집 영상 덕분이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 - #ㅇㅇㅇㅇ - 들어보세요’ #뒤에는 각종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 등의 이름이 있었고 그들의 성장 서사와 노래가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팬이 아니어도 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단긴 시간을 보고 있자면 눈가가 시큰거리고 심장이 뜨거워졌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죠.
한번은 가사와 함께 노래를 감상하는데, 팬 무비로 보던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어요. 원곡은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않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소중히 하겠다는 이별 노래였습니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이별은 흔적도 없이 상대가 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는 노랫말에서 '*완덕’ 시점에 이 노래가 더 사무치게 다가올 것 같아요.
*만족할 만큼 충분히 좋아한 후 덕질을 끝내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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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어요. 뮤지션 백현진 씨가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 <해피니스>라는 드라마에서 비인간의 끝판왕으로 입에서 욕이 쏟아져 나오게 했던 사이코패스 의사가 바로 그 백현진 씨라는 것. 맞아요, 이게 다 제가 백현진 씨의 노래하는 목소리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알고리즘을 타고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펄떡이는 날것의 보컬에 놀라 ‘뭐지??? 이 사람 뭐지?’하고 이름만 확인했었거든요. 이런 식의 얼굴 없는 가수가 저에겐 참 많은 듯합니다만··· 아무튼, 그 가수가 이 배우라는 사실이 저를 혼란에 빠뜨렸어요.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예술가로서 무리 없이 살아가는 일 같은 것 말이에요. 저 역시 막연하게 예술가의 삶을 꿈꾸던 때가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이분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종합 예술인이더라고요. 백현진 씨가 부업인 배우로 얼굴을 알리는 바람에 오히려 ‘이 사람이 가수였다고?’ 하시는 분 계신다면, 이번 기회에 이 곡을 한 번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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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이는 기타에 피아노가 얹어지고 색소폰이 슬그머니 들어와 조명을 밝히고. 현악기, 건반악기, 관악기, 백현진 씨의 목소리도 그냥 하나의 악기로 담담하게 하나둘 쌓여 어우러지다가 힘 빼고 박수로 마무리··· 무심한 듯 시크하다는 게 이런 걸까요. ‘마음을 다해 대충대충’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렇지 않으려나요.
흥분한 나머지 백현진 씨 인터뷰까지 찾아 읽다가 ‘외부의 주문과 컨펌 없이도 자기 삶을 이어가는 게 예술가의 기본값’이라는 정의에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컨펌받는 일은 이제 안 한다고? 20년간 성과가 없는 음악을 지속했다고? 근데 창작의 고통도 없다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저 영상에서도 백현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노래하는데요. 언젠가부터 차마 눈뜨고 노래할 수 없어서 눈을 감고 노래하다 보니 습관이 됐대요. (노래하다 보면 그나마 한 명 있던 관객도 나갔다고···) 음악적 성과는 전무하다지만 부업이 잘되어 다행입니다. 이 곡을 들어보면 음악을 계속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니까요.
저도 백수 시절 스스로를 인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곤 했는데요. 백현진 씨의 인터뷰를 읽으며 마구 가슴이 뛰는 걸 보니 저는 여전히 이런 성과 없는 일들을 믿고 있나 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즐겁게 일해서 나온 결과물이니 편하게 막 가져다 쓰시라고 말 할 수 있는 선수,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 좋을대로 계속해나가는 어쩌면 백수 사이에 저도 있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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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최애를 자랑해주세요! 흠터레터가 대신 영업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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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을 거쳐 <대신 영업해드립니다>에서 정말로 대신 영업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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