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주 ‘가자미마을’
VOL. 069  |  2026. 09. 09
8월 한 달 짧은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사계절이 점점 흐릿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 시간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은 정직한 만큼 힘도 셉니다. 서두르지 않고 제 몫의 역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곳까지 와 있는 나를 보게 되니까요. 문제는 시간을 버티는 일입니다. 버티는 힘은 의외로 대단한 조언이 아니라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것 같아요. 

스피커스는 지난여름 그런 관계를 살짝 엿보고 왔습니다. 오랜 시간 한 곳에서 판을 벌여온 청년들과 이들을 묵묵히 지지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통해서요. 함께 살펴보실까요?
경주시 감포읍 ‘가자미 마을’에서 지역 브랜딩과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는 ‘가자미상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이 활짝 웃고 있다. 가자미 마을은 2022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에 선정됐다. 마카모디 제공.
스피커스는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청년마을 만들기’의 사업지 중 한 곳인 경주 ‘가자미마을’에 다녀왔어요. 마을 이름을 처음 듣고는 생선 가자미를 뜻하는 걸까 싶었는데, 정말 그 가자미더라고요! 경주의 시어(市魚)가 가자미거든요. 여기에 더해 수심이 깊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감포 앞바다는 예전부터 가자미가 많이 잡혔다고 합니다. 지역에서 익숙한 가자미를 키워드로 삼아 마을 이름을 짓고 청년마을 활동을 펼친 거죠. 

가자미마을이 있는 감포는 경주역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여 가야 나오는 바닷가 동네입니다. 지금은 인구 5천여명의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일제강점기엔 경주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 감포읍이었어요.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해 감포항을 거점 삼아 동해안을 누비며 어업 활동을 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곳곳에 그들이 세운 적산가옥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25년 감포항 개항 이후 지나온 100년의 시간이 감포 골목마다 스며들어 있는 셈입니다. 

가자미마을을 만든 마카모디의 김미나 대표는 경주 토박이지만 감포가 익숙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오는 곳 정도였던 감포가 새롭게 다가온 건 2020년,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구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부터죠. 대체 어떤 풍경이었길래 그는 감포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 걸까요?
① 목욕탕이 사랑방이 되기까지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카페 ‘1925 감포’.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을 따라가면 옛 목욕탕 건물을 개조한 카페 ‘1925감포’가 나옵니다. 감포 최초의 목욕탕인 ‘신천탕’이 문을 닫고 30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김미나 대표가 이끄는 로컬 콘텐츠 회사 마카모디와 주민들이 함께 재탄생시킨 곳입니다. 마카모디라는 이름이 어딘가 이국적이라 무슨 뜻인가 했는데 ‘모두 모여라’라는 경상도 방언이더라고요. 

왜 카페였을까요? 김미나 대표는 “지역의 거점공간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방이나 공유사무실도 생각했지만,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오래 머물며 이야기 나누기엔 카페만 한 곳이 없었다고요. 감포 시내엔 지금도 다방이 많아요. 카페를 연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과연 찾아오겠냐며 반신반의했던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데 지금은 다방에서 일하는 분들도 편하게 들렀다 가는 공간이 됐다고요.

목욕탕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카페는 감포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목욕탕은 동네 사람 모두가 드나들던 곳이니까요. 명절에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들은 자녀들과 함께 카페에 들러 자연스럽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카페는 감포의 사랑방이자 이야기 창고가 됐어요. 카페가 문을 연 뒤로 입소문을 타고 여행객들이 모이면서 동네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마카모디는 카페 운영에 그치지 않고 ‘1925감포’를 거점으로 공연, 전시, 강연 등 문화행사를 열고 지역의 이야기를 모아 기록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카페가 자리 잡은 뒤, 마카모디는 2022년 ‘가자미마을’로 청년마을에 선정되어 해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첫해엔 지역 특산물인 가자미로 음식을 개발해 파는 ‘가자미 식탁·가자미 식당’을 열었고, 다음 해엔 도슨트 투어와 사운드 스케이프(소리 풍경) 투어를 결합한 ‘가자미 여행사’를 선보였죠. 지금은 감포에 정착해 빈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린 청년과 손잡고 선상 낚시나 마을 산책을 곁들인 1박2일·2박3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30년 가량 닫혀 있던 목욕탕을 주민과 청년들이 힘을 모아 공간재생을 시작했고, 목욕탕이 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간을 재해석해 2021년 10월 ‘1925 감포’를 열었다.
②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스피커스가 서삼란 해원어린이집 원장을 만난 건 우연이었어요. 따로 약속을 잡은 게 아니라서 전화로 말씀을 들으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김미나 대표의 전화 한 통에 흔쾌히 자리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별말 없이도 기꺼이 품을 내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두 분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탄탄한 것일까 가늠도 되지 않았습니다. 

감포에서 4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온 서삼란 원장은 감포를 ‘오래된 미래’라고 부릅니다. 30~40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앞이 그려지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김미나 대표를 비롯한 마카모디 청년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고요. 서 원장은 “예측 가능한 동네에서 청년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쉼표가 되기를 바랐다고요.

마카모디가 청년마을 사업을 하기 전에도 서울에서 청년들이 여럿 다녀갔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고 해요. 지원 기간이 끝나 형편이 마땅치 않으면 떠났거든요. 마을에선 지원금 받을 때만 있다 떠나가는 청년들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었죠. 그래서 마카모디도 처음엔 ‘너희는 또 뭐 먹을 게 있어서 왔냐’는 시선을 피할 순 없었어요. 
마카모디 팀원들과 주민들이 함께한 워크샵. 마카모디 제공.
하지만 다르게 움직인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서삼란 원장을 비롯한 외항어선 선주, 보리밥집 주인 등 지역주민 6명은 청년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고자 주민단체 ‘함께가는길’을 꾸렸어요. 그리고 목욕탕을 사들여 청년들에게 3년간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회원은 지금도 예닐곱을 넘지 않아요. 회원을 늘려 더 큰 일을 해보자는 권유도 있었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서 원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의견이 갈리고 초심을 잊는다”고 말해요. 크고 화려한 건 금방 사라지고 눈에 띄지 않아 버려둔 것이 결국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말처럼요. 골목을 지키자고 모였으니 그 목적에만 충실하자는 거죠.

그렇게 마련된 공간에서 청년들은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카페가 있는 골목은 낮에도 지나가기 꺼려지는 곳이었어요. 목욕탕 입구는 화재 위험 때문에 합판으로 막혀 있었고, 어두운 골목엔 쓰레기가 굴러다녔죠. 그런데 카페가 들어서며 동네가 환하게 바뀌었습니다. 서 원장은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해요. 마을주민들 역시 “청년들이 골목을, 감포를 완전히 바꿨다”고 평가했고요. 

서삼란 원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으니 청년마을 심사를 받으러 세종시에 갔던 일을 꼽았어요. 그는 “청년 사업을 왜 청년만 해야 하느냐 지역에서 펼치는 사업이니 지역주민과 함께해야 한다”며 심사 현장까지 따라갔다고 합니다. 본인은 “계획된 억지”였다며 웃었지만, 심사 현장엔 주민이 온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드문 일이었는지, 심사가 다 끝난 뒤 심사위원들이 점수와 상관없으니 멀리 오셨는데 인사라도 하고 가시라며 부를 정도였다고요. 

그의 바람은 소박했습니다. 청년들과 오래 감포에서 어울리면 좋겠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더 큰 무대로 나가도 좋다고요. 다만 감포에 있는 동안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다 해보고 갔으면 한다고 덧붙였어요.
③ 청년 정책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할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사업은 대부분 청년을 수혜자로 놓습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관계자는 언제, 어떻게 ‘독립’할 것인지를 매번 묻습니다. 하지만 청년마을을 운영하는 팀들은 이미 그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온 조직이에요. 마카모디만 해도 2014년 경주에서 프리마켓을 열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죠. 

김미나 대표가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이 여깁니다. 청년의 지역 유입과 정착을 돕는 건 본래 공공의 역할입니다. 정부가 예산을 주고 그 일을 청년마을 사업을 맡은 조직에 맡긴 셈이죠.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이들에게 일을 맡기곤 정작 대하는 방식은 초기 창업가를 보듯 합니다. 그래서 김 대표는 “가르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평가 기준도 고민거리입니다. 초기 청년마을의 목적은 청년의 지역 ‘정착’이었고 성과도 정착으로 쟀습니다. 하지만 청년기야말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자기 길을 더듬어 가는 때입니다. 한곳에 정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과한 주문일 수 있죠. 마침 관계인구·생활인구 지표가 행정안전부 사업의 평가 지표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다양한 기회를 만나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된 거죠. 

정착한 청년의 수가 아니라면 무엇을 기준으로 둬야 할까요? 김 대표는 청년마을을 경험한 이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경주만 알았던 청년들이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을 들어와 감포를 알게 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요. 가자미마을 프로젝트로 감포와 인연을 맺은 뒤 자기 고민이 무르익었을 때 스스로 이 지역을 찾아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다만 정성평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숙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할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결국 확인하기 쉬운 숫자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니까요. 

마지막은 시간입니다. 마카모디가 가자미마을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건 행정안전부 지원 3년과 경상북도의 추가 지원으로 5년을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고요. 반대로 말하면, 4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나는 사업으로는 딱 그 일곱 달만큼만 내다볼 수 있다는 거겠죠. 서삼란 원장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 곳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 곳이라도 제대로 해서 10년, 20년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요. 

‘가자미체육대회’에 참여한 참가자들. 마카모디 제공.

청년마을 누리집.  
청년마을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지역에는 청년이 만드는 변화를 통해 활력을 일으키기 위해 시작한 사업으로 올해까지 61곳의 마을이 전국 곳곳에 만들어졌습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일거리 실험과 주민 교류를 통해 청년과 지역을 연결하려는 활동이 중심이죠.

이번에 찾아간 가자미마을을 비롯해 이름만 봐도 가보고 싶은 청년마을이 잔뜩이에요. 전북 무주 무풍면에서 산골 판타지 라이프를 펼쳐볼 수 있는 ‘산타지’, 지리산의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산촌에서의 새로운 일과 삶을 만들어가는 전남 구례 ‘수숲기간’, 특산물인 포도와 와인을 매개로 지역 활성화를 모색하는 경북 영천 ‘취하리’ 등 대체 이 작명 센스는 어떻게 장착했는지 궁금할 뿐인 곳이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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