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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22년 3월 6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공을 들고 어색하게 월드컵공원 풋살장에 들어섰습니다. <내일은 체력왕> 강소희 작가님으로부터 초대 받은, 마포구 여자 축구 오픈채팅방 멤버들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풋살장에 들어설 때마다 비록 인조 잔디이지만 시야가 확 트이는 상쾌한 기분이 된다  

“오늘 축구 처음이신 분?” 딱 봐도 축구를 배워본 듯한 포스가 있는 분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열서넛 남짓 모인 여자들 중 처음 온 사람은 저뿐이었고요.


축구의 룰이야 2002 월드컵 때 열심히 봐서 대강 알고 있으니(상대편 골에 공을 넣으면 이기는 게임?) 공을 어떻게 차야 하는지, 패스를 정확히 땅에 깔아서 주기 위한 연습을 30분 정도 했습니다.


바로 경기를 시작한다고 했죠. 한 경기당 대략 10분을 진행하다는 말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떻게 10분을 뛰지? 불가능해’였죠. 출근길에 지하철을 놓치더라도,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절대 안 뛰는 사람? 그게 저였습니다.


“삐이이익!”


시작 휘슬이 울리고 우리 편이 공을 패스하는 순간, 운동장에서 뛰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디에 자리를 잡고 공을 받아야 할지 모르고, 상대 팀에게 공이 가면 그저 우르르 공만 보고 몰려가는 모습이지만, 그 안에 제가 있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그림이라서 그저 신이 났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해서 3분 만에 밖에 있던 분과 교체도 해보고 다시 뛰고 하다 보니 2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요. 서로의 이름도 배경도 모른 채 닉넴으로 부르며 운동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쿨하게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100시간만 채우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SNS에 꾸준히 기록을 남겼습니다.

지난 3월 1일 축구 2시간까지 포함하니, 총 65회, 제 인생 중 125시간을 축구와 함께 보냈습니다.
아직은 뛰는 속도도 나지 않고 멋진 슈팅도 없지만 어쩌다 우당탕탕 골을 넣으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한 팀으로 뛰는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서로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운동장을 구르는(실제로 구른다. 잘 넘어진다) 시간이 쌓일수록, 뒤늦게 축구를 안 게 아쉽고 한편으로는 새롭게 매일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좋은 세계였습니다.


특히 일을 하는 세계에서의 저는 성과를 내고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었는데,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하나 더 생긴 것(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축구 전에 수영이 있습니다)이 기뻤습니다.


100시간을 넘기고 나니 경기장에 들어가 공을 터치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아무도 건들지 않아도 혼자 잘 넘어지던 사람이, 잘 안 넘어지게 되었습니다(그래도 가아끔.. 넘어집니다). 열심히 뛰는 우리 팀 쫓아서 같이 뛸 줄 알게 되고, 공을 잡고 딱 2초 동안 패스할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공만 보지 않고 고개를 드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소개했던 <아놀드 클라크컵>에서 우리나라 여자 축구 대표팀은 3전 3패를 기록했습니다.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 강한 상대들을 만나 고전했음에도, 이 경기를 준비하던 지소연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2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이 있었기에 유럽 축구 강국에서 우리나라를 초대했고, 5:0이든 6:0이든 대패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고 오는 것, 유럽 선수들과 직접 경기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요.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차근차근 한 걸음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 최선을 다해 걸어온 결과가 패배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그 뒤에 선수들이 이뤄놓은 돌탑 같은 시간들이 단단히 버티고 있기 때문일 거라 믿습니다.


작은 돌 하나를 쌓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인생에 정성을 들이는 하루를 보내요!

<리디아 포에트의 법>

넷플릭스를 기웃거리다 알고리즘 추천인지, 아무튼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의 드라마 <리디아 포에트의 법>을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드라마는 또 처음이고요. ㅎㅎㅎ


이탈리아 최초 여성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리디아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법 전공을 다 마친 뒤, 변호사협회에 가입하지만 쫓겨납니다. 여성은 가정에서의 일을 해야지, 신성한 법정에 들어서서 일을 하면 안 된다고요.


분노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 변호사인 친오빠의 곁에서 내내 기회를 엿보며 사건을 해결해갑니다. 물론 자신의 변호사 자격을 찾기 위해 상고장을 쓰는 일도 계속해나가고요. 아직 4회까지 봤는데, 이탈리아 풍경이며 아름다운 의상이며, 넋을 잃고 보게 되네요.

☞ 월간 <채널예스>와 웹진 <채널예스>에 동시에, [짓궂은 인터뷰]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 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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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출판사의 첫 책이다. 이지은 대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신인 소설가와 신입 편집자로 만나 십년 넘게 같이 작업했다. 출판계에 궁금한 게 생기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상대였다.(유유히 대표가 쓴 책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에도 내가 그에게 뭘 묻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하고 싶다. <월간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도 "유유히 출판사 응원해주세요" 하고 말씀 올린다.

☞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장강명 작가님과 김혜정 그믐 대표님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리보기)

“프롤로그에 이 책의 독자를 예비 작가, 신인 작가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 책을 읽어주실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장강명 : 모든 업계가 그 업계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노하우가 별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가 몸담았던 언론계도 출판계도 그렇고 오히려 오래 있었던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성공을 하고 있죠. 그래서 전수해줄 수 있는 건 따로 없고요. 다만 신인 작가들이나 작가 지망생들이 생각하는 미신이 몇 가지 있어요.


이렇게 해야 될 것 같다,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보여야 될 것 같다, 하는 것들 중에 제가 “그거 아니다. 그건 미신이다.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하는 부분들을 책에 적어놓았어요. 그런 부분들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같이 잘 써보아요.

☞다정.위트.센스가 사훈이라니! 입사하고 싶은 회사네요. 저라면 거기다 '염치'를 보태고 싶어요. 염치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사는 인간이라;;

_핀카나


☞베이글 베이글 베이글 맛있겠다!!!!!!!!!!! 솔직히 이게 먼저였고, 그 다음으로는 유유히의 사훈은 이미 지니고 계신 능력들이니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

_ㅇㄹㅅ


☞유유히 사훈 좋네요. 다정, 위트, 센스! 다 마음에 들지만 특히 다정이 좋네요~ 저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고 다정한 말 한 마디가 일할 때 힘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랑 통하는 부분이 있으시네요. ㅎㅎ 이번 메일도 잘 읽었습니다. 유유히 파이팅입니다!

_이은아

이번 주 유유히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레터는 위트보이님이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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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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