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 애가 공부를 좀 잘했으면.
그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아이도 덜 힘들 것 같고요.
잘하니까 시험도 편하게 보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 같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옆에서 보니까 반대였어요.
혜린이는 남들 눈에는 잘하는 애예요.
책 리뷰 인스타가 2만이 넘고, 반듯하고 성실하게 뭐든 해내는 아이로 보여요.
그런데 잘하는 게 시험을 편하게 만들어주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기대가 짐이 돼요.
생각해보면 이래요.
처음엔 잘하고 싶어서 잘해요.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근데 한 번 잘하고 나면 그게 기준이 돼버려요.
다음부터는 잘하는 게 본전이에요.
잘하면 "원래 잘하는 애니까"가 되고, 못하면 "쟤가 왜 저래"가 돼요.
올라갈 자리는 없고 떨어질 자리만 남아요. 그래서 잘하는 아이는 매 시험이 더 잘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지금 위치를 안 잃으려는 싸움이 돼요.
2년 전쯤 혜린이가 이런 얘길 했어요.
시험을 보고 나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온대요.
혜린이 점수가 궁금한 거예요. 몇 개 틀렸냐고 물어봐요.
혜린이가 "이거 틀렸어" 하면 순간 공기가 묘해진대요.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안심하고.
혜린이도 틀릴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냥 한 문제 틀린 거예요.
근데 친구들이 혜린이를 틀리면 안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요.
혜린이가 틀리는 게 뉴스가 되는 거예요. "쟤도 틀리네?" 하고요.
그 시절에 혜린이가 스트레스를 꽤 받았어요.
왜 그러냐면요.
잘하는 게 곧 자기 자신이 돼버리면, 한 문제 틀리는 게 그냥 한 문제가 아니게 돼요.
내가 무너지는 일이 돼요.
이렇게 쌓은 자존감은 뿌리가 약해요.
성적이라는 기둥 하나에 나를 다 올려놓은 거라서, 나보다 잘하는 애 하나만 나타나도 흔들려요. 더 큰 무대에 가면 그런 애들이 수두룩하거든요.
그래서 잘하는 아이가 오히려 점수를 숨기기도 해요.
잘 봐놓고 "나 이번에 진짜 못 봤어"라고요. 기대를 낮춰놔야 안전하니까요.
열심히 했는데 틀린 것보다, 안 한 척하다 틀리는 게 덜 아프거든요.
잘함을 지키는 데 에너지를 다 써요. 정작 공부에 쓸 힘을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어요.
틀리면 안 된다고 믿는 아이일수록, 틀리는 걸 피하다가 정작 실력이 늘 기회를 놓쳐요.
심리학에서 이렇게 봐요.
자기를 "잘하는 애"로 정해놓은 아이는, 그 이미지가 깨질까 봐 어려운 걸 피해요.
틀릴 것 같은 일은 아예 시도를 안 해요.
틀리는 게 곧 능력 없음의 증거라고 느끼니까요.
그러니 새로운 걸 배울 기회 자체가 줄어들어요.
반대로 틀리는 걸 그냥 정보로 보는 아이가 있어요.
"아, 여기 모르는구나" 하고요. 이 아이는 어려운 걸 자꾸 건드려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이 아이가 더 잘하게 돼요.
뇌과학에서도 비슷한 게 나와요.
사람이 문제를 틀리는 순간, 뇌가 "어, 여기 틀렸네" 하고 그 지점을 알아채요.
그러면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뇌의 전기 신호가 확 강해진대요.
그리고 이 반응이 큰 아이일수록 다음 문제를 더 잘 맞혀요.
그러니까 틀리는 순간이, 뇌가 가장 많이 배우는 순간이에요.
틀리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길이 열리는 거예요.
틀려야 어디가 비었는지 보이고, 거기서 자라거든요.
근데 우리는 자꾸 아이한테 정반대로 가르쳐요. 틀리면 안 된다고요.
그럼 혜린이는 어떻게 됐냐면요.
지금은 시험 한두 개에 흔들리지 않아요.
제가 뭘 해준 건 아니에요. 둘이 정말 많이 얘기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혜린이가 공부에 걸어둔 무게를 스스로 내려놨어요.
근데 그냥 내려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점수 말고 좋아하는 걸 찾아야 그 빈자리가 채워져요.
공부가 나의 전부일 때는 한 문제에 무너지는데, 좋아하는 게 따로 있으면 공부는 그냥 내 일부가 돼요.
혜린이가 제일 혜린이다울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등수가 매겨지는 일을 할 때가 아니에요.
점수도 정답도 없는 일을 할 때예요. 좋아서 몇 시간씩 빠져 있을 때요.
그건 아무도 채점하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혹시 우리가 아이를 틀리면 안 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잘했을 때만 환하게 웃어주고, 틀렸을 때 표정이 살짝 굳고. 아이는 그걸 다 읽어요.
그러면서 배워요. 틀리면 안 되는구나.
틀려도 돼요. 틀리는 건 오히려 좋은 거예요. 거기서부터 자라니까요.
우리 아이, 틀려도 되는 사람인가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