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테토 | 이분법 | 나이트우드 ‘에겐녀‘, ‘테토녀‘, ‘에겐남‘, ‘테토남‘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에겐-테토’ 담론은 성별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에 빗대어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하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소비하는 수많은 소셜 미디어와 광고 콘텐츠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죠.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정말 우리의 정체성을 단순히 둘로 나눌 수 있을까요? 이번 레터에서는 ‘에겐-테토’ 담론이 드러내는 성 역할 고정관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해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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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 구월, ‘에겐녀’, ‘테토녀’ 들어봤나요?
구월 네 그럼요. 광고홍보를 전공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주로 안 좋은 쪽으로요 (하하). 저는 보통 트렌드를 일단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비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머는 처음 접했을 때 어떻게 느꼈나요?
서머 저는 일단 MBTI 같은 다른 진단 콘텐츠에 비해 별로 궁금하지가 않았어요. 보통은 테스트들을 재미로 해보는데, 이건 해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결과가 뭐든, 둘 다 제가 아닌 것 같달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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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이해돼요. 일단 사람 유형을 4등분 하는 거잖아요. 16가지 유형인 MBTI도 사람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4가지 유형만으로 유형화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져요.
서머 분류하는 기준 자체가 ‘여자다운 여자냐, 남자다운 여자냐’여서 싫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원이 호르몬이잖아요? 그래서 ‘여자답다, 남자답다’ 이상으로 거부감이 들 때도 있어요. 콘텐츠에 등장할 때는 그냥 가볍게 소비할 때도 있지만, 절대로 제 입으로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은 길티플레저 같아요. 호르몬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그대로 사회적으로 수행되는 젠더로 등치시키는 것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요.
구월 맞아요. 저는 여성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성이 ‘에겐남-테토남을 꼬시기 위해서’ 혹은 ‘테토녀·에겐녀가 되기 위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옷차림, 메이크업, 소품 등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남성을 타겟으로 ‘테토남이 되기 위한’, ‘에겐녀를 꼬시기 위한’ 콘텐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서머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저는 에겐-테토를 처음 본 게 인스타에서 ‘에겐남-테토남 꼬시기’ 같은 콘텐츠였는데, 처음엔 그냥 웃기다 생각하고 넘겼지만 에겐-테토 콘텐츠를 점점 많이 접하게 되면서 생각해 보니 전부 이성애를 전제로 생산되고 소비되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에겐남-테토녀라고 해도 크게 전복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고요.
구월 오히려 성 역할을 강화하는 것 같아요.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강박을 더 심화시키죠. 고등학생인 동생과 에겐테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제 동생은 여고에 다니고, 운동을 좋아하는데 "나는 에겐녀이고 싶은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임? 선천적으로 에겐녀일 수 있는 거야?" 하고 묻더라고요.
서머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에겐-테토 유행이 정체성 탐구에 있어서 하나의 압박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 같아요.
구월 본인을 ‘00한 사람’으로 라벨링하고 보여주려는 욕구는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생물학적 차이라는 낙인으로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겪은 여성으로서, 호르몬으로 사람을 정의하는 일을 단순히 무해한 ‘트렌드’ 정도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요. 스스로에 대한 탐구에 게으를 뿐더러, 그런 이분법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마니까요.
서머 “나는 에겐녀일까 테토녀일까?”로 고민의 폭을 좁히다 보면 “나는 충분히 여성스러운, 혹은 남성스러운 사람일까?”라는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하게 되죠. ‘에겐남’, ‘테토녀’ 같은 라벨을 사용함으로써 생물학적인 이분법이 실은 허상임을 지적하기는 하더라도 그 이분법 이상을 제안하지는 않잖아요.
구월 사람들이 에겐-테토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뭘까요? 제가 공부하는 마케팅과 광고의 세계에서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서, 불편한 점이 있어도 유행을 무시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유행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결국 소비자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즐거움에 맞는지도 함께 고민하면서 트렌드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서머 맞아요. ‘유행’이나 ‘재미’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많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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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숲 속 부랑자들
-오늘의 콘텐츠 | 책 나이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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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어렸을 때 별자리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고 궁합을 맞춰보던 것 기억하나요? 이제는 자기소개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MBTI도, 요즘 유행하는 "에겐테토" 테스트도 모두 나를 이해 가능한 범주로 분류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위치를 가늠하는 도구들이죠. 누구나 이해받고 소속되길 원하니까요. 그런데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이방인과 성소수자의 바람은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곤 해요. 오늘은 혼란의 1930년대 유럽의 거리와 밤의 숲을 방황하는 소설 『 나이트우드』 속 인물들을 통해 욕망과 어둠, 결핍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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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유대인 펠릭스 폴크바인은 자신이 기울어가는 오스트리아 가문의 남작이라고 굳게 주장해요. 펠릭스의 아버지도 존재한 적 없는 명망 높은 귀족 가문의 족보를 꾸며내고, 직접 디자인한 가문의 문장으로 꾸민 저택에 부모님의 가짜 초상화를 걸어두는 사람이었거든요. 나름 번듯한 직업도 있고 7개 국어를 구사하지만, ‘구유럽’의 낡은 가치를 숭상하고 어떤 순간에도 격식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항상 절반은 정장, 절반은 평상복을 입는 펠릭스는 “남부끄러운 자”로 묘사돼요. 그래선지 그는 우스꽝스럽게 귀족과 왕족 행세를 하는 서커스의 곡예사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어울려 다니지요. 그 과정에서 괴짜 의사 매슈를 만나고, 알 수 없는 여인 로빈을 사랑하게 되어요.
실체 없는 귀족 혈통에 집착하고,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줄 여성을 원하는 펠릭스의 모습은 지금은 물론이고 작품이 쓰여진 1930년대에도 이미 구시대적이죠. 그러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공공연히 차별당하던 당시 유대인의 삶을 생각해보면, 펠릭스의 과장된 귀족 수행은 어떤 생존 전략이자 자긍심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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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빈은 펠릭스와 결혼하여 ‘남작 부인’이 되었지만, 아기 키우기에 싫증을 느끼고 어느 날 훌쩍 떠나버려요. 소설 속 로빈은 자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우리는 다른 인물에 의해 설명되는 로빈의 모습만 알 수 있죠. 아름다우면서도 “정글 한복판에 누운 듯한” “야생 짐승” 같고, “소년의 몸을 지닌, 키가 큰 소녀의 모습”을 한 인물로요. 밤의 거리와 숲을 헤메는 몽유병 환자이기도 하고요. 1923년, 뉴욕의 서커스장에서 로빈은 노라라는 여인을 만나고, 서로에게 ‘홀린’ 두 여성은 함께 유럽을 여행해요. 머지 않아 함께 거처를 구해 두 사람의 사랑과 추억이 깃든 물건으로 집을 채우지요.
그러나 행복도 잠시, 로빈은 또다시 연인을 떠나 이번에는 제니라는 중년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요. 제니는 네 명의 남편과 사별한 이력이 있고, 물건도, 사랑도 어느 하나 스스로 쌓아올린 것 없이 남의 것을 차지해버리는 사람이에요. 마찬가지로 제니는 노라로부터 로빈을 빼앗는 데 성공하지만, 끝까지 로빈을 이해하지는 못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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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매슈는 갑자기 호텔에서 쓰러진 로빈을 펠릭스와 만나게 해준 인물이자, 오래 전 노라의 탄생을 도운 무면허 산과 의사이고, 어느순간 제니와 로빈과 함께 마차에 타있기도 해요. 연인이나 부부 관계로 연결된 다른 인물들과 동떨어져 있지만, 사랑에 대한 이들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해괴한 장광설로 나름의 조언을 해주기도 하죠. 『나이트우드』의 절반이 매슈의 난해한 독백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울며 왼손으로 기도대를 내리쳐도 타이니 오툴 녀석, 내내 까무러쳐 있더군요. 나는 말했어요. ‘구하고자 거듭 노력했건만 어찌된 게 난 찾기만 하는걸요.’ 또 말했어요. ‘저예요, 주님. 나 같은 영구한 실수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기 마련임을 아는 저요. 하지만 그런 저라도 주님의 도움 없이는 마냥 영속할 수 없지요. 오, <은폐의 서>여! 날 뒤엎는 것은 쾌락일지니!” (186-187쪽)
다른 인물들이 원하는 게 사회적 지위 그리고 로빈의 사랑이라면, 매슈는 남편을 위해 아이를 낳고 요리를 하는 여느 여성과 같은 삶을 원하는 젠더퀴어 인물이에요. 밤마다 여성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한 채, 여성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그는 자신의 남성 신체를 경멸하고, 교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자위하며 신의 “영구한 실수”로 태어난 자신에게도 아름다움이 있다며 신을 향해 울부짖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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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우드』는 세계 1차대전의 절망과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탄생한 이상한 소설이에요. 인물들은 난데없이 등장했다 또다시 사라지고, 기승전결 없이 조각난 서사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토해내듯이 흘러가요. 유럽 귀족이 되고 싶은 유대인, 종잡을 수 없는 여자의 사랑을 원하는 여성 동성애자들, 여성의 삶을 원하는 남자 산과 의사 모두 비극적이고 비루하기까지 한 이질적 존재들이에요. ‘밤’은 로빈이 남성복을 입고, 매슈가 여성복을 입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욕망과 의문이 표출되는 무의식의 시공간을 나타내고요. 이방인과 퀴어가 펼치는 슬픈 밤의 서커스는 상식을 넘나드는 이들도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과 연결되길 원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위드, 우리의 욕망도 이처럼 다채롭고도 엇비슷하겠죠. 학자들의 말마따나 인간은 “결핍의 존재”이고, 원하는 바를 달성하며 행복하게 살고자 하니까요. 그런데 욕망에도 계급과 특권이 있어요. 명문 대학과 대기업, 이성 배우자와의 결혼이라는 목표는 적극 권장되지만, 예술인의 꿈이나 동성혼 법제화, 성별 정정을 위한 노력은 웃음거리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남의 꿈을 따라 꾸기가 차라리 쉬울 수 있어요. 『나이트우드』는 어떤 욕망이 다른 욕망보다 특별히 순수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세계를 상상해요. 오늘만큼은 위드도 한 구석에 접어뒀던 욕망과 결핍을 꺼내어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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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성과 남미새’ 레터에 위드가 보내주신 피드백을 살펴보았어요.
- 작가님과 인터뷰 속에서 드러나는 솔직함이 참 좋았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역설적인 고민이 잘 드러나서 공감하면서 큭큭대면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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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함께 만든 사람들 👪
구월🍁 러련🪁 모닥🕯 밍이🥨
산우☂️ 서머☀️ 올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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