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다섯 번째 감각》, 아작, 2022
12년 만에 복간되는 소설집. 데뷔작이자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대상을 받은 〈촉각의 경험〉에서부터 한국 SF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될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까지, 한국 SF에서 오래도록 빛나고 있었던 김보영의 초기 걸작들을 다시 만난다.
💜💜💜💜💜 - 도모🐳's pick!
한줄평: 긴 잠에서 깨어난 내 다섯 번째의 감각
저는 4년 넘게 한 독서모임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편집자로 취직하기 전, 편집자 교육을 같이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시작한 모임이었는데요. 각 개인의 독서 취향에 갇히지 말고, 최대한 다양하고 자유롭게 책을 선정해서 읽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책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그 독서모임에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바로 이번에 소개해드릴 《다섯 번째 감각》입니다.
한국 SF를 대표하며 이젠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중단편의 신"! 김보영 작가님의 12년 전 소설집을 복간한 책입니다. 김보영 작가님의 초기작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SF작가들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죠. 김보영 작가님은 한국 SF가 지금처럼 많은 사랑을 받기 전부터 꾸준히 SF를 쓰시며 SF팬들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아온 작가님입니다.
'다섯 번째 감각'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은 어쩐지 의아했습니다. 소설이라면, 특히 SF라면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육감', 여섯 번째 감각이라거나, 더 나아가서 (NCT127이 노래했듯) '일곱 번째 감각' 정도는 되어야 뭔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섯 번째 감각》에 실린 단편들은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그래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감각'들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게 만드는 작품들이었거든요.
SF의 묘미 중 하나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걸 이 소설집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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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을 독서모임에서처럼 마구 늘어놓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조심하며 내용보다는 저의 감상에 초점을 맞춰서 풀어보겠습니다.
표제작인 〈다섯 번째 감각〉은 역시 무척 좋았어요.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독자가 작품을 읽어나갈 때 인식조차 못하지만 당연하게 상정했던 조건을 깨트리는데요. 그 반전이 어떤 충격적인 한 장면이 아니라 '읽기'의 과정에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저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떠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읽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끌렸던 작품은 〈땅 밑에〉였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이라고 해야 할지, '집착'이나 '광기'라고 해야 할지 모를 주인공의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몰입해 읽은 작품입니다. 저 우주 너머가 아니라 끊임없이 밑으로 파내려가는, 하강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어요. 그 어둠과 외로움으로 가득한 하강 끝에 펼쳐지는 세계의 풍경 또한 저의 감각을 다시금 뒤흔들어놓았습니다.
이 외에도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역전시킨 〈마지막 늑대〉, 온라인게임 속 세계에 대한 이야기인 〈스크립터〉 등 흥미로운 감상과 생각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 새해가 된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제겐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아직 못 읽으신 분들에겐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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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도 작품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모임을 하는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어요. 열띤 토론을 했던 저희 독서모임 멤버들이 남긴 한줄평을 살짝 공개하며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
🐳 익숙한 감각을 뒤흔드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들
✍️ 새로운 감각의 체험! (익숙해진 세계에 대한 낯선 감각)
✍️ 의식하지도 못했던 감각이 증폭되는 경험. 뒷맛이 개운하지 않아 더 의미 있었다.
✍️ 조금 오래됐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 일상을 트는 실력이 좋아 뇌리에 남는다. 단편마다 색이 달라 호불호가 클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