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모론의 유혹: 삶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식

• 잘못된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 음모론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 불확실과 음모론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 💡 인사이트 더하기 - 고려대 최은수 교수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인생이란 건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여기 평범한 회사원 A씨가 있습니다. 출근길에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며칠간 야근해가며 작성한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온종일 서류에 파묻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길. 돈만 많으면 이런 직장 당장 때려치우는 건데, 하던 그의 눈에 ‘로또 판매’라는 문구가 들어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가서는, 숫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티켓을 받아듭니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 휴대폰으로 번호를 확인하면 언제나 그렇듯 티켓의 가치는 증발합니다. 분노에 가득 차 휴대폰을 던져버리려던 그는 한 광고 문구를 보고 멈칫합니다. ‘충격, 로또 번호 조작? 로또 번호 패턴 확인하기’.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광고로 향합니다.

어디엔가 분명 있을 법한 A씨. 과연 그는 로또에 당첨될 수 있을까요?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번호 예측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당첨 번호를 안다면 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직접 로또를 사겠죠. A씨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직접 번호를 고르던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음모론을 믿는 걸까요?

음모론을 믿는 핵심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통제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는 일만 있지는 않지요. 작게는 윗사람에게 혼나는 것부터 크게는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의 문제까지,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일도 겪게 됩니다.

이해 불능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고자 나름의 인과관계를 추론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이 항상 옳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는 아무런 근거가 없더라도 ‘저 사람이 잘못해서 그렇다’라는 단순한 설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곤 하지요.

실제로, 사람들이 사회가 혼란하고 불평등과 차별이 크다고 느낄수록 음모론이 창궐한다고 합니다. 음모론은 흑백논리를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 때문에,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가령 ‘운이 없어서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라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말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 추첨을 조작한 놈들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당첨되지 않아 절망한 사람들에겐 더 달콤하게 들리지요. 자신이 ‘우매한’ 대중과 달리 진실을 깨달은 특별한 존재라는 나르시시즘은 덤입니다.

즉, 음모론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제시되는 매력적인 해답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하면 된다는, 편리한 해결책이지요.

음모론을 믿으면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이야기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거짓말 위에 쌓아 올린 만족감은 단기적이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음모론자 개인의 피해만이 아니라, ‘저 악인들을 처단해야 우리가 발전한다’라는 왜곡된 사회 인식이 갈등을 부추겨 사회의 안전성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음모론은 ‘저 사악한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선량한 우리들’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상대가 실제로는 그렇게 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도) 혐오와 폭력을 합리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약자의 정당한 저항이라고 포장하게 됩니다.

👉🏼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어요. 게다가 바쁘기도 하죠. 이럴 때 우리는 손쉽게 정리되어 있는 삶의 설명서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삶에는 행복과 성공의 공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유혹적인 메세지들도 지척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삶의 여러 현상들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결국 페터 비에리가 말한 ‘자기 인식’라고 생각해요. 이 스위스 철학과 교수는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검증” (비에리, 2015)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인식의 방법론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허용한 외부의 목소리에 대항할 자기 목소리를 찾을 때, 우리는 여러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는 “존엄한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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