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법정'에 끌려 나온 기사 하나
안녕하세요. 최윤정 기자입니다.
오늘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한 언론 보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광호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기소된 가장 고위급 인사입니다. 지난 3월¹부터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4월 22일 첫 공판에서 그의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많은 정보가 있었던 언론인들도 (안전사고를) 예상했던 사람이 전혀 없었다. 뉴스타파 보도를 보면 (핼러윈 관련) 기사가 133건이나 있는데, 안전사고를 우려한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안전사고 우려가 없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4월 29일 용산경찰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는 김광호 전 청장이 직접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뉴스타파라는 언론에서 모든 언론 기사를 분석한 내용이 있다. 거기 보면 한 건도 (안전사고를) 예상한 게 없고, 전부 다 축제나 마약. 제 이야기가 아니라 퍼센티지 계산해 분석한 기사가 있다."
'언론이 예상하지 못했으니,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다.
낯선 주장이 아닙니다. '이태원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주장을 폅니다. '참사 피해자들도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날 이태원에 간 것이 아니겠느냐'는 논리까지 나옵니다.
김광호 전 청장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뉴스타파 보도를 들었습니다.
그의 주장처럼, 서울경찰청장이라는 지위를 기자들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 걸까요? 서울경찰청장은 서울 전체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장인만큼 그 책임도, 권한도 중대합니다.
2022년 10월 14일, 김광호 전 청장은 핼러윈 치안과 관련된 정보부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용산경찰서 등 일선 경찰서 정보관들이 올린 정보보고서를 취합한 보고였습니다. 24일~28일에는 관광경찰대, 112치안종합상황실, 교통지도부, 수사부 등의 대책 보고도 받았습니다.
서울경찰청이 공공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경찰력,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취했어야 하는 조치 등은 언론사 또는 일반 개인들의 권한과 책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김광호 전 청장의 이런 주장이 해당 보도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견된 참사'라는 언론, 참사 전에는 핼러윈 상품 홍보와 마약에 집중] 기사는 뉴스어디 박채린 기자 등 뉴스타파 펠로우 세 사람이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박채린 기자는 기사가 분석한 내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① (핼러윈) 안전 우려 기사가 없었던 이유는, 언론이 홍보성⋅축제 띄우기 기사에만 초점을 둬서다. 언론은 안전사고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안전사고에 관심이 없었다고 볼 정황이 있고 ② 마약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둔 기사가 많았던 이유는 경찰 보도자료를 언론이 받아쓴 영향으로 볼 수 있다."
* * *
이날 법정에서는 피해자 측 변호인과 유가족, 생존자의 발언을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태원에서 딸을 잃은 김남희 씨가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재판부에 "부디 이태원 골목에서 어둠을 걷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발언 일부를 덧붙입니다.
"서울경찰청장은 우수한 경찰 조직에서도 실력이 검증된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서울경찰청장이 10만 인파에 대규모 참사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그가 참사 20일 전에 열렸던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어떻게 그리 잘 대비하고 관리했습니까? 그때는 할 수 있고 지금은 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의 날, 김광호를 무능력자로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의 상관입니까?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말함으로써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건 공무원의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중략) 김광호는 참사 당일 본인이 서울시 전체의 안전 책임자라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¹ 지난 3월 11일 공판준비절차를 거쳐 4월 22일 첫 번째 공판이 열렸습니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다음 공판은 6월 3일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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