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 초록이 내 안으로 들어온 순간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계절이 압축적으로 변하는 사이, 우리 곁에는 꽃이 와르르 왔다가, 금세 사라지고, 또 다른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진 자리에는 초록초록한 잎이 돋아났습니다. 내 소유도 아닌데 왜 알록달록한 꽃들과 초록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은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난 초록은 지난해 이즈음 만난 것과 같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초록일까요? 갑자기 이런 질문이 생긴 이유는 오늘 편지 내용 때문이지요. 오늘 독자님께 보내드리는 박정은 수녀의 편지는 죽음을 뚫고 기어이 돋아난 새로운 초록,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앨러미다는 며칠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종일 바람이 불고, 창밖으로 하루하루 더해 가는 초록의 춤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책을 읽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초록을 만져 보고 싶어  떨어지지 않는 감기를 무시하고 우산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멈추지 않는 초록 바람 속을 걷다가 나뭇잎도, 아이들도, 내 차 지붕에 떡 하니 올라가 있는 까마귀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초록초록한 계절의 비는 나에게도 생명 속으로 걸어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주일 미사 후, 나는 가까운 신자들과 비가 오락가락하는 공원을 걸었다. 초록이 나를,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행복감을 온통 휘감았다. 출렁이는 초록색 호수를 보면서 싱그러운 자연처럼 우리들의 세상이 평화롭기를, 그리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출렁이기를 기도했다.


성 주간의 장엄 전례를 마치고, 우리는 활기찬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부활 시기를 보내며 부활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여전히 아픈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가 부활 시기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첫 제자들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인은 부활의 빛 속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새 길을 찾아간다. 그 의미는 뭘까? 누구든 자기 생의 불확실성을 기쁨 속에 견뎌 내는 서툰 작업을 시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복음서에서 부활 사화는 다른 부분에 비해 짧고, 또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성서학자들은 바로 이 시점, 즉 신앙 공동체가 부활의 빛 속에 낯선 삶을 시작한 이 시점이 복음서를 작성한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부활이란, 삶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했다. 그것은 신비와도, 명료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깊이 성찰했을 것이다. 성서해석학자이자 영성신학자인 산드라 슈나이더스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복음서는 부활의 체험에 기초한 상상력을 가지고 써 내려간 글이라고 해석했다. 나는 부활의 삶을 늘 신학적 동력으로 삼았던 그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기억한다.


그러니 복음이 쓰인 배경에는 부활을 경험한, 그래서 새 생명을 향해 걸어간 초대 교회 공동체의 성찰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으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던, 아름다운 시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부활 신앙을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불확실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크고 작은 일상 경험을 통해 시선을 확장해 가는 호기심 깃든, 그래서 약간은 고달픈 작업일 것이다. 그러니 부활은 어떤 고정관념이나 습관이 된 교리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생과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길어 내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부활의 빛 안에서 세상을 본다면, 그 빛깔은 초록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삶의 협소함을 부수는 새로운 방식을 향해 열려 가는 길. 그 길은 내 마음의 길이며 동시에 하늘을 만나러 가는 길. ⓒ박정은

이 글을 쓰는 시간, 지인이 보내 준 신경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다가온다.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 신경림, 「길」 중


부활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란, 결국 주님의 길이 내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밖의 길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 생은 어떤 낡은 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온통 새로운 초록 세상이 될 것 같다. 


요즘 미사에서 사도행전을 들으며, 불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매일을 함께 살아간 공동체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삶을 나누면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 갔다. 그분께서 당신의 상처를 보여 주시며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어떤 길을 함께 가자 하시면 나는 그 새로움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선뜻 나서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인다. 


부활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초록의 싱그러움과 함께 벗들과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과 진정 어린 염려들이 먼저 마음에 들어온다. 그래서 또 위안을 얻는다. 부활 신앙을 사는 교회 전통 안에서 새로움을 함께 찾아간다면, 외롭지 않아서 좋을 것 같다. 함께 가다가 힘들면 함께 쉬어 갈 테니. 그러니 부활 시기는 무엇보다 먼저 벗들과 함께, 초록초록한 들판에 나가 “알렐루야 노래하자 기쁜 때가 왔도다”를 외치며 매일매일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일이다. 설사 전쟁과 폭력으로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오브》에 세 번째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두 개에요! 🎉)

  •  "현실에 불만한 여성의 얼굴들을 저는 참 좋아해요.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할 것이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것은 여성의 분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만과 분노는 어느 순간부터 쭉 제 안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바다였어요. 그나마 날이 좋을 때는 얕은 일렁임이 일었고 날씨가 궂을 때는 거센 파도가 저를 삼켜버릴 것처럼 요동쳤어요. 이 불만과 분노의 바다가 요즘에는 좀 미웠어요. 왜 내 안에는 이런 바다가 있을까 싶어 자괴감도 들었고요. 그런데 오브에서 온 메일을 읽다가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안도감이 들고 위로를 받았어요. 불만과 분노에 차있는 여성의 얼굴을 불온하게 치부하는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를 다잡아도 휘청일 때가 참 많은데 오브를 통해 귀한 글을 보고 나니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휘청이곤 하는 게 저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 답장에 저도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함께 휘청이며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해요. 💚
  • 안녕하세요 ^^ 제가 알던 발리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네요. 타자화된 여성들~ 이를 형상화한 미술작품들 ㅠ 요시모토 나라의 얼굴그림을 여성의 분노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는데 알게 해주셔서 수녀님께 감사합니다 ♡ → 감사히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어딜 가도 새로운 시선을 갖도록 잘 살펴봐야겠어요. 


다음 《오브》는 4월 29일에 발행됩니다. 《오브》 3호 어떻게 읽으셨나요? 답장을 남겨주신다면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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